‘아스달 연대기’, 반쪽의 영웅 신화

2019.06.14
tvN ‘아스달 연대기’는 태고의 땅 ‘아스’를 배경으로 한 신화적 영웅담이다. 아스달 연맹장의 장남 타곤(장동건), 뇌안탈과 사람의 혼혈인 이그트 은섬(송중기), 와한족의 씨족어머니 후계자 탄야(김지원), 해족 어라하의 딸 태알하(김옥빈), 네 영웅이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제작발표회 당시 김영현 작가는 작품에 대해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상 네 인물이 싸우는 이야기’로 요약 설명했고, 박상연 작가는 ‘간단하게 말하면 엄청난 권력을 지닌 타곤과 태알하, 그리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은섬과 탄야, 두 진영의 대결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 속에서 이같은 영웅담이 네 주인공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지는 않는다. ‘아스달 연대기’ 영웅신화의 정점에는 아스달 연맹의 창시자이자 신의 아들인 아라문 해슬라의 전설이 있다. 그는 “두 개의 얼굴과 두 개의 목소리”를 지닌 존재로 설명된다. 드라마는 첫 회 아사혼(추자현)의 꿈에서 아라문 해슬라가 어린 은섬과 어린 탄야의 얼굴로 현현하는 장면을 통해 둘이 아라문의 운명을 나눠가진 것처럼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라문 해슬라가 탔다는 전설의 말 칸모르를 두 사람이 함께 길들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둘은 ‘푸른 객성이 나타난 날 태어난 아이는 재앙을 몰고 온다’는 예언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설정과 달리, 정작 드라마가 본격적인 영웅신화의 플롯을 부여하는 인물들은 은섬과 타곤이다. 태어나자마자 죽음의 위기를 넘기고, 자신의 정체도 모른 채 자라다가 와한족과 탄야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비밀의 근원”인 아스달로 향하는 은섬의 운명적 여정은 전형적인 영웅서사를 따른다. 부친 살해와 부족 파멸이라는 저주의 예언 때문에 오랫동안 타지의 전장터를 떠돌다가 아스달 연맹 최고의 영웅이 되어 귀환하는 타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스달 연대기’는 결국 아라문 해슬라의 진정한 후예 자리를 놓고 대결하는 두 남성 영웅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이에 비해 탄야와 태알하의 서사는 빈약하기 짝이 없다. 네 인물의 첫 등장신만 비교해봐도 명확하게 나타난다. 예컨대 은섬이 뱀과 맞서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강렬하게 등장한 것과 달리, 탄야는 위기에 빠진 은섬을 구하는 와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 거의 눈에 띄지 않게 모습을 처음 드러낸다. ‘우리에겐 타곤이 있었다’는 내레이션과 함께 등장해 뇌안탈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소년 타곤과 성인이 된 그를 지켜보는 모습으로 나타난 태알하의 등장신도 대조적이긴 마찬가지다. 요컨대 은섬과 타곤이 어린 시절부터 신화적 영웅의 아우라에 감싸여 비범하게 등장할 때, 탄야와 태알하는 단독 전사도 없이 은섬, 타곤과 연관된 이야기의 일부로 평범하게 등장한다.

이러한 차이는 서사 뿐 아니라 스펙터클에서도 엿보인다. ‘아스달 연대기’가 CG를 활용해 보여주려는 역동적이고 스케일이 큰 스펙터클은 오로지 은섬과 타곤의 영웅 판타지를 강화하는 데 동원된다. 타곤이 뇌안탈 종족을 사냥하는 대규모 전투신, 은섬이 칸모르의 후예인 도우리를 타고 대칸 전사들을 따돌리는 추격신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여성 인물들이 담당하는 스펙터클은 탄야의 정령을 부르는 춤처럼 미적인 기능에 치우쳐 있다. 특히 4회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한 아사무(박지원)의 신탁 춤 장면은 서사적으로 그 어떤 기능도 하지 못한채 볼거리로만 소비된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아사론(이도경)의 해석”이다.

십년 전, 김영현과 박성연 작가는 MBC ‘선덕여왕’에서 한국드라마 속 여성영웅신화의 정점을 보여준 바 있다. 주인공 덕만(이요원)은 “왕에게서 쌍둥이가 태어나면 왕족 남자의 씨가 마른다”는 남성 중심적 예언 때문에 살해당할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자신의 신분과 사명을 깨달은 뒤 한민족 최초의 여왕이 된다. 그를 보면서 황후의 목표를 수정하고 왕의 꿈을 꾸다가 좌절한 미실(고현정)의 서사까지 고대 그리스 비극같은 비장미를 갖춘 영웅담이었다. ‘선덕여왕’에 비해 서사의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태고의 판타지에서 오히려 남성 중심적 영웅담의 한계에 갇힌 것이야말로, ‘아스달 연대기’의 제일 큰 아쉬움이다. 아직 꿈을 만나지 못한 탄야가 꿈을 꾸기 시작하면 조금 희망이 보일까. 지금으로선 “날 이용했구나”라던 아사혼의 한탄이 이 작품에 대한 심정에 가장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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