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션’, 넷플릭스의 컬트

2019.06.13
*영화 ‘퍼펙션’의 내용이 있습니다.

온라인 시대에 영화 개봉일이나 극장 시간표가 무의미하다지만 영화의 공개 시점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일과 쉼이라는 삶의 운동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쉼표가 되어 줄 영화로 선택받으려면 언제 나타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넷플릭스와 같은 플랫폼이라면 더더욱 영리하게 출고 시점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지난 5월 마지막 월요일은 미국의 공식 휴일인 메모리얼 데이였다. 넷플릭스는 주말을 끼고 월요일까지 이어지는 황금 휴일에 한발 앞서 오리지널 영화 한 편을 금요일에 공개했다. 쉴 틈 없는 스릴러, 알 듯 모를 듯한 퀴어 드라마, 신체 절단의 고어 이미지로 눈을 뗄 수 없는 영화 ‘퍼펙션’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연휴 내내 온라인 상에서 ‘퍼펙션’은 화제였다.

영화는 어머니 병간호로 꿈을 접어야 했던 샬럿(앨리슨 윌리엄즈 분)이 비로소 혼자된 후에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세계 영재 소녀들이 모여 첼로 연주에 몰두하는 배코프 아카데미 출신인 그는 음악계에서 큰 영향력을 쥔 스승 앤턴(스티븐 웨버)의 총애를 받는 첼리스트였다. 샬럿은 아카데미를 떠나던 날 계단에서 마주쳤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녀를 기억한다. 샬럿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반면, 위로 향하던 그때 그 소녀는 세계를 무대로 하는 천재 첼리스트 리지 웰스(로건 브라우닝)로 성장했다. 앤턴에게 돌아가겠다고 알린 샬럿은 상하이에서 열린 아카데미 장학생 선발 자리에서 리지와 재회하고, 그와 성적 긴장 관계에 놓인다. 하룻밤을 같이 보낸 두 사람은 버스를 타고 중국 오지 여행을 시작한다.

샬럿은 리지를 꺾으려는 복심을 숨긴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는 첫 씬에서 먼지처럼 고요하게 앉아있는 샬럿을 보여주다가 갑자기 어린 샬럿이 비명 지르는 모습을 비선형적으로 충돌시킨다. 메두사의 비명을 목도하기라도 한 듯 섬짓한 이미지는 이후에도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며 불안을 떨치기 어렵게 만든다. 숙취를 회복하기 위해 샬럿이 건넨 알약을 먹은 리지가 버스에서 구토할 때 그 불안은 현실화하는 듯하다. 토사물에서 벌레가 우글거리는 모습을 본 리지는 차창에 스스로 머리를 세게 박는 이상 행동까지 보인다. 모바일 액정, 텔레비전, 모니터 등 무엇이 됐든 스크린이라는 절대적인 안전거리가 깨지는 느낌마저 든다. 창을 깨부수는 건 영화가 빠르게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방법 중 하나로 미스테리나 스릴러 장르에서 불안과 공포를 고양시키는 역할을 해왔다. 가까운 예로 ‘버드박스’는 임산부가 머리로 창을 깨고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으로 미스테리를 시작한다. 또 데이비드 린치가 감독한 ‘트윈픽스’는 이마에 피를 흘린 채 거울을 깨는 카일 맥라클란의 빙의 연기로 유명하다.

여기까지만 보면 꿈이 꺾인 샬럿이 리지에게 뒤틀린 폭력을 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화는 고어로 장르를 바꾼 뒤 스승인 남성 앤턴에게 폭력을 가한다. 신화 속 메두사는 포세이돈 신에게 강간당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메두사는 신전을 더럽혔다며 괴물이 되는 벌을 받는다. 많은 화가들이 피해자임에도 벌받은 여인 메두사를 그렸는데 뱀 머리카락에 튀어나올 듯한 눈을 가졌으며 목이 잘린 채 비명을 지르는 이미지가 대표적이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운 기묘한 메두사의 이미지는 여성을 향한 오랜 백래시와 폭력을 상징하는데 ‘퍼펙션’은 그런 고어의 이미지를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돌려주는 시도를 꾀한다.

‘퍼펙션’의 잔인한 이미지와 파괴적인 스토리는 ‘무언가를 먹으면서 보지 말 것’을 당부하는 감상 후기를 낳았고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 모았다. 미국 영화 비평 매체 인디와이어는 ‘퍼펙션’을 ‘버드박스’ 이후 또 한 번의 소셜미디어를 통한 성공작으로 꼽았으며, 넷플릭스만의 컬트 세계를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퍼펙션’은 리처드 셰퍼드 감독이 밝힌 대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큰 영향을 받아 형식적 유사성을 띠며 4개의 장으로 분절돼있다. 퀴어 드라마를 원하는 관객이라면 1장까지, 스릴러를 원한다면 2장까지만 봐도 좋을 것이다. 언제든 시청을 중단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는 점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그러나 쉽지 않다. ‘퍼펙션’은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종류의 영화다. 더구나 ‘겟 아웃’으로 유명한 윌리엄스가 드라마 ‘걸스’ 이후 리처드 셰퍼드 감독과 재회해 손바닥 뒤집듯 선악을 반전시키는 연기를 훌륭하게 펼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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