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① 가족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2019.06.11
*영화 ‘기생충’의 내용이 있습니다.

“이것 참 상징적이네.” ‘기생충’ 2회차 관람에서 유독 마음에 남았던 건 기우(최우식)의 대사다. 장수생인 그는 아직 이룬 것도 가진 것도 없지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우연을 기회로 받아들이는 야심만만한 청년이다. 그런 기우에게 ’상징’은 세계의 보이지 않는 힘이 그에게 보내는 긍정의 신호다. 집안에 복을 불러온다는 산수경석을 친구가 그냥 선물로 줬을 리 없고, 가족들이 아버지의 운전 기사 취업을 논하던 자리가 하필이면 기사식당인 건 우연이 아닐 거라고 기우는 믿는다.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에 더 좋은 일들이 가득할 거라는 믿음과 기대는 실제로 기우와 가족들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 변기가 계단 위에 위치한 반지하집의 화장실에서 천장 위로 휴대폰을 높게 들어 남의 집 와이파이를 잡거나, 노상방뇨를 시도하는 취객과 다투는 게 일상이던 기택의 가족들은 기우의 운과 기세, 동생 기정(박소담)의 계획에 의해 멋진 정원이 한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대저택에 스며든다. 그렇다면 기우는 세계가 그에게 보낸 신호를 제대로 읽는 데 성공했을까? 영화의 말미에 이르러서야 관객은 그 답을 알게 된다.

‘기생충’ 이전에 ‘데칼코마니’란 가제로 알려졌던 봉준호 감독의 일곱 번째 장편영화는 그 제목이 암시하듯 아빠, 엄마, 아들, 딸로 이루어진 두 쌍의 가족을 영화의 중심에 놓는다. 구성원은 비슷하나 주어진 조건과 환경은 판이하게 다른 두 가족의 동선이 우연히 겹치게 되었을 때 그려지는 기묘한 풍경을 영화는 다루고 있다. 가족 전원이 백수인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장남 기우의 친구가 제안한 부잣집 영어 과외에 사활을 건다. 포토샵에 재능이 있는 동생 기정은 오빠에게 명문대 위조 재학 증명서를 만들어준다. 그 위조 문서를 들고 글로벌 IT 기업 CEO 박 사장(이선균)의 집에 간 기우는 안주인 연교(조여정)와 그의 첫째 딸 다혜(정지소)의 마음을 사로잡고, 단번에 과외를 따낸다. 과외를 하며 박 사장 가족의 집안 사정을 잘 알게 된 기우는 급기야 동생 기정까지 박 사장의 막내 아들 다송(정현준)의 미술 과외 선생으로 취직시키려 한다.

기우를 시작으로 박 사장의 집에 차례로 취직하게 된 기택의 가족은 마치 환경에 따라 자신의 형태를 유연하게 바꾸는 연체동물처럼 박 사장 가족의 풍경 속으로 빠르게 침투한다. 마치 배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요령있게 수행해나가는 기택의 가족들은 지나치게 그럴듯해 보여 웃음을 유발한다. 반면 본의 아니게 기택 가족의 숙주가 된 박 사장의 가족들은 순진해 보인다. 박 사장의 아내 연교는 아무나 못 믿겠다고 말하면서도 아는 사람을 의심할 생각은 하지 못한다. 사회적 계급의 격차를 조명한 영화로서 ‘기생충’이 흥미로운 까닭은 이 두 가족이 삶 속에서 보여주는 기민함과 순진함 또한 계급의 격차가 빚어낸 차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교는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점을 깨닫는 즉시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다. 기택의 가족 또한 연교에겐 그 새로운 선택지 중 하나였을 뿐이다. 반면 기택의 가족에게 순간의 실수는 곧 생존의 위협으로 직결된다. “돈이 다리미야. (마음의) 주름살을 쫙 펴줘”라는 기택의 아내 충숙(장혜진)의 말은 ‘기생충’이 보여주고자 하는 계급 격차의 정서적 양상을 보다 분명한 표현으로 명시하고 있다.

‘기생충’이 보여주는 계급 간의 차이는 ‘계단’이라는 공간을 통해 시각적으로 더욱 명확해진다. 백수에서 부잣집 과외 선생님으로 한 계단 올라선 기우와 그의 가족들은 박 사장의 가족들이 위치한 계단 위를 올려다보며 언젠가 그곳으로 그들도 올라갈 수 있길 꿈꾼다. 하지만 누군가 계단을 올라가려면, 누군가는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영화의 주요 공간으로 계단을 즐겨 사용했던 김기영 감독의 영향이 명백하게 느껴지는 이 작품은 계단에서 일어나는 상승과 하강 운동을 적극적으로 포착해 등장인물이 경험하는 사회적 지위의 변화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영화의 후반 20분에 이르러 ‘계단’은 근사한 장르적 공간으로 변모해 관객의 숨통을 죈다. ‘설국열차'의 기차 정도를 제외하면 봉준호 감독이 계단과도 같은 지극히 인공적이고 통제된 세트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했던 경우는 드물기에, 이번 영화는 마치 박찬욱 감독풍의 세트를 차용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특히 이 영화는 절제된 공간 안에서 완벽하게 설계된 동선을 통해 디테일하고 정교한 세계를 펼쳐보이는 봉준호 감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한다.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전작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어딘가 달라보이는 느낌을 주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는 건 줄곧 약자의 위치에 존재하던 기택의 가족이 그들이 밀어낸 누군가의 존재를 인식하면서부터다. 한때는 같은 위치에 존재했었으나 이제는 더 깊고 낮은 곳으로 추락해버린 또다른 가족의 존재는 기택의 가족에게는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심연이며 결코 비슷해져서도 안 될 기피의 대상이다. 자리를 뺏길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상생보다 배제의 방식을 택한 기택 가족의 선택은 극의 서스펜스와 긴장감을 높이며 영화에 스릴러와 호러의 색채를 덧입힌다.

하지만 ‘기생충’을 보고 나면 영화가 감추고 있는 어둠 속 존재보다도, 이야기를 클라이막스로 향하게 하는 트리거인 ’냄새’에 관한 에피소드가 더욱 무시무시하게 다가온다. 본인은 자각하기 어렵지만 타인은 금세 인지할 수 있는 그것, 아무리 노력해보아도 환경이 변하기 전에는 바뀌지 않을 그것. 봉준호 감독은 예의를 갖춘 관계라면 도무지 상상하기 힘든 타인의 체취에 대한 언급을 적나라하게 꺼냄으로써 등장인물이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본다. 흥미로운 점은 누군가의 체취에 불편함을 느끼는 부자들의 후각 또한 주관적이라는 점이다. 박 사장의 아들 다송은 이미 기택 가족의 체취가 모두 같음을 이야기했지만, 박 사장과 연교 부부는 첫째 딸 다혜와 다송의 과외를 맡은 기우와 기정 그리고 집사 충숙의 냄새가 아닌, 오직 기택의 냄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불편함을 표출한다. 집 내부를 자유롭게 오가는 고용인과 주로 집 밖이나 차고에 머무르는 고용인 간의 계급과 그들에 대한 대우마저 구분하는 ‘기생충’의 디테일은 지나치게 정밀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면 ‘기생충’은 온전한 가족 구성원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봉준호 감독의 첫 영화다. 아버지가 부재했던 ‘마더’의 가족이나 어머니가 없었던 ‘괴물’의 가족, 할아버지와 손녀만 남은 ‘옥자’의 가족처럼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는 늘 누군가의 빈자리가 확연히 보이는 인물들이 등장했었다. 그러나 가족의 붕괴를 다루는 영화라는 점에 있어서는 ‘기생충’도 예외가 아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단란했던 가족이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어 사랑했던 누군가를 잃고 가족의 붕괴를 경험하게 되는 모습을 영화는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기생충’의 개봉 직후에는 각 가족 구성원의 붕괴를 상징하는 희생자가 모두 여성이라는 점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중 가장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유능했던 그들이 가장 무참하고 신속하게 희생되었다는 점이야말로 이 영화가 묘사하고 있는 암담한 현실을 더욱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만약 기정이 살아남았다면, 기택은 여전히 구출되지 못한 채 박 사장의 저택에 남게 될까? 근세(박명훈) 대신 문광이 살아남았다면, 이 모든 비극은 발생했을까? ‘기생충’은 맛있는 음식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려던 여성들 대신 돌을 든 남성을 지하로 내려보냄으로써 파국의 방아쇠를 당긴다.

이 영화의 에필로그는 유능한 중재자이자 해결사였던 가족 구성원을 잃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닥친 불가피한 비극으로도 읽힌다. 세계가 보내는 모든 신호로부터 ’상징’을 읽길 좋아했던 아들은 아버지가 모스부호를 통해 보내는 신호를 분명히 읽고도 답하지 않는다. 그 모든 여정을 거쳐 아들이 당도한 곳은 상징 따위에 희망을 걸 여력조차 없는 비정하고 험난한 세계다. 계획을 줄곧 잘 세워 아버지를 감탄하게 만들었던 아들은 오늘도 계획을 세워보지만 더이상 섣부른 희망을 가지진 못한다. 이 서늘하고도 잔인한 진실 속에서 살아가려면, 엔딩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노래(정재일 음악감독 작곡, 봉준호 감독 작사, 최우식 배우 노래)의 제목처럼 ‘소주 한잔’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이토록 상징적으로 재미있고 씁쓸하며 무섭고 슬픈 한국영화를 근래에 보지 못했다. ‘기생충’은 21세기 한국 사회라는 정글로부터 탄생한, 가장 강력한 2019년의 한국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목록

SPECIAL

image 여성의 이직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