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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중립 화장실, 화장실의 권리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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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은 한번 상상해보길 바란다. 집을 나와서 다른 곳으로 장시간 이동하는데 화장실을 갈 수 없다면, 그리고 도착한 장소에서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없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집 밖을 나가기 전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밖에서는 물을 안 먹는 등의 방식으로 대처를 할 것이다. 나아가서는 집 밖을 나서는 것 자체에 두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인터섹스 등 성별 이분법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실제로 겪는 상황이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41.1%가 차별에 대한 두려움으로 화장실 이용을 포기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미국의 조사에서는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21.5%가 화장실 문제로 공공 행사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누군가에는 너무도 당연한 화장실 이용이 누군가에게는 고심 끝에 도전해야 하거나 결국에는 포기해야 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화장실 이용의 어려움이 발생하는 것은 대부분의 화장실이 남/여 성별에 따라 분리되어 이분법적 성별에 맞지 않는 사람은 갈 곳을 잃기 때문이다. 현행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은 공중화장실을 성별에 따라 구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민간 화장실의 경우에도 기존의 남녀공용 화장실이 갖는 여러 문제로 인해 성별 분리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은 화장실의 성별 분리에 대한 문제제기가 단지 표지판의 성별 구분을 없애기만 하면 된다거나 기존의 남녀공용 화장실을 그대로 두자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화장실에서 누군가가 배제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 앞에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은 예로 든 트랜스젠더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존재한다. 가령 아동이나 노인 등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보호자와 함께 화장실에 가는 경우,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성별이 다를 때 어느 화장실로 가야 할지 난감하다. 다른 성별의 활동보조인을 동반한 장애인의 경우도 장애인과 활동보조인 중 누구의 성별에 맞추어 화장실을 이용할지 고민을 겪는다.

그렇기에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두’와 ‘성중립’이라는 두 가지 용어이다. 성중립(gender netural)이라는 말처럼 이러한 화장실은 성별 구분을 전제로 한 채 단지 구조상 구분만 하지 않은 남녀공용 화장실과는 다른 개념이다. 그보다는 기존의 이분법적인 성별이 갖는 문제를 인식하고, 성별에 대한 전제 없이 개별 수요에 따라 편안하고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말한다. 한편으로는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처럼 이런 화장실은 특정 집단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이 아닌 성별, 장애, 연령, 동반자 유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고 또 이용하는 시설이 되어야한다.

뭔가 복잡해 보이지만 실제 이러한 화장실의 구조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간단히는 각자의 집에 있는 화장실이 단독 내지는 여러 칸 이어진 구조를 생각하면 된다. 그렇기에 어떤 면에서 보면, 모두를 위한 성중립 화장실을 위해 구조적, 제도적 고민은 핵심이 아닐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화장실이 과연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화장실이 단지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을 넘어, 인간의 기본적 권리로서의 공간이며 나아가 성별, 장애, 연령 등을 둘러싼 정치의 공간이기도 하다는 점, 이러한 공간에서 누군가가 배제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실 ‘모두를 위한’이라는 말을 별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화장실이 포착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기에 언젠가는 단지 ‘화장실’이 존재하기를 바란다. 누구도 문 앞에서 고민할 필요 없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그런 ‘화장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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