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최우식의 얼굴

2019.06.05
* ‘기생충’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기생충’은 최우식의 얼굴에서 시작해 그의 얼굴로 끝나는 영화다. 그가 연기한 기택(송강호)네 집 장남 기우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족 중 제일 먼저 부유한 박사장(이선균)네 집에 침투하고, 현실감 없고 열등감에 찌든 그가 계급 상승의 욕망을 가지면서 본격적인 사건이 진행되며, 산수경석으로 상징되는 부에 대한 열망은 클라이맥스의 불씨가 된다. 엔딩은 관객에게 기우의 미래를 넌지시 묻는다. 그리고 ‘결핍’을 체화한 듯한 최우식의 비주얼은 ‘기생충’의 핵심적 이미지라 할 수 있는 ‘가난의 냄새’로 감각을 확장시킨다. 변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을 때 더 부각되는 깡마른 사지, 과외 면접을 보러 가는 걸음걸이마저 어딘가 처연하고 폭우에 옹송그린 뒷모습은 기택이나 동생 기정(박소담)과 비교해도 유독 위축돼 있다. 하얀 얼굴은 다크서클의 황폐한 존재감까지 키운다. 그냥 가만히 서 있어도 안쓰러운 최우식의 이미지에 대해 시나리오 단계부터 그를 염두에 뒀다는 봉준호 감독은 “밥을 잘 먹은 직후에도 왠지 영양이 부족한 거 같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최우식이 20대 시절 해왔던 일의 연장선상이자, 완벽한 결론이다. 스스로 '마르고 평범하게 생겼다'는 것을 배우로서 강점으로 꼽는 그는 소위 ‘요즘 남자애’였다. 심지어 이름은 ‘최우식’. 성까지 붙여서 딱딱하게 부르기보다 왠지 ‘우식이’라고 부르고 싶은 친근한 이름. 빵셔틀이자 팬픽 작가로 은밀히 활약하는 고등학생(KBS ‘닥치고 패밀리’)부터 눈치 빠르고 싹싹한 내관(SBS ‘옥탑방 왕세자’)까지, 주변에 있을 법한 까불까불한 청년을 연기하며 눈도장을 찍던 최우식은 ‘거인’에서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했다. ‘거인’의 잦은 클로즈업 쇼트는 그의 일상적인 매력에 숨어있던 측은한 표정을 채집해냈다. 무책임한 부모를 떠나 보호시설에서 자란 ‘거인’의 영재는 식칼을 들고 자해 및 살해 협박을 하는 순간에도 어린 아이처럼 우는 소년이다. 그 가여운 얼굴에서 이 시대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그것을 연상한 봉준호 감독은 “1종 면허는 있는데 4대 보험은 없는” ‘옥자’의 씬 스틸러 김군으로 그를 호출했고, ‘기생충’의 기우에 이르기까지 최우식의 평범한 얼굴을 빌린 청춘들은 영화가 포착한 사회 문제에 현실감을 더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연기하는 청년들이 대체로 무결하기보다 은밀한 욕망을 내비친다는 점이다. 그의 작고 가느다란 눈은 각도에 따라 비릿한 악의를 뿜어낸다. ‘거인’의 영재는 상습적으로 보호 시설의 운동화를 훔치고 생존을 위해 친구까지 모함하던 소년이었고, ‘기생충’의 기우가 앞장서 사기를 주도하는 초반 시퀀스에서는 야비한 눈빛마저어린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 기우가 품는 극단적인 감정은 또 어떤가. 그렇게 최우식이 연기하는 남자들은 윤리적 딜레마까지 아우르는 복잡다단한 내면을 갖고 있지만, (‘기생충’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쩐지 선을 넘지 않는다. 불쾌함으로 거리를 두게 하는 대신, 인간을 향한 기본적인 연민을 상기케 한 후 청춘의 어떤 복합적인 속성을 천천히 곱씹게 만든다. 이는 명백히 배우 특유의 친근함과 안쓰러운 이미지에 빚진 바가 크다. 그렇게 최우식이 연기한 아픈 청춘들은 아름답기보다 징글징글하게 리얼하고, 밑바닥까지 보여주는데도 외면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있다. ‘기생충’에서 최우식이 송강호의 아들을 연기한 것은 이 맥락에서 또 다른 의미를 입는다. 한국 사회를 세밀히 스크린에 옮겨왔던 봉준호 감독의 세계에게 송강호는 이 시대 중년 남성의 평균값이었다. (그리고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는 2살 차이다.) 사실상 ‘기생충’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우식은 아들 세대를 이해하는 가교다.

‘기생충’은 1990년생인 최우식이 20대의 마지막 해에 촬영한 작품이다. 올해 서른 살이 된 그는 “주변에 있는 삼십 대들의 사고방식을 빌려서 앞으로 연기해야 할 텐데, 솔직히 좀 무섭다. 난 아직도 스스로가 이십 대 초반 같다”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지금 배우로서 가진 고민은, 스펙 쌓고 취업 준비하다 보니 덜컥 30대가 된 요즘 청년들의 보편적인 불안감과 멀지 않다. ‘기생충’은 계급 상승의 기회가 박탈된 ‘기우 세대’의 열패감을 들추고, 지하철 타는 사람들로 그 범주를 대폭 넓히고는, 엔딩 이후를 독하게 묻는 영화다. 봉준호 감독이 눈여겨봤던 요즘 청춘의 얼굴, 최우식 역시 함께 나이를 먹으며 이 세대의 미래를 바짝 붙어 기록할 것이다. ‘기생충’ 이후로도 쭉 이 배우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쫓아가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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