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막례│① 세상을 바꾼 여자

2019.06.04
박막례 할머니는 무엇이든 한다. 그의 유튜브 채널 ‘박막례 할머니 Korea Grandma’에는 여행, 메이크업, ASMR, 리뷰, 패러디, 요리, 노래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다른 채널에서도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 주제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도전하는 사람이 1947년생의 70대 여성이라는 점은 기존의 유튜브 콘텐츠들과 다른 맥락을 만들어낸다. 게임 중계로 유명해진 대도서관이나 키즈 크리에이터로 알려진 헤이지니처럼 대부분의 유튜버들은 한 분야에 특화된 콘텐츠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반면 박막례 할머니의 채널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보다 ‘누가’ 그것을 하는지가 핵심이 된다. 그는 캐릭터 모양의 초콜릿이나 딸기 찹쌀떡을 만들다 실패하고, 엉뚱한 발음으로 최신 가요를 따라하다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결과물의 완성도는 그의 ‘편’들(박막례 할머니의 팬덤을 이르는 말)에게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무엇을 하든 자신의 ‘편’인 89만 명의 응원을 받는 유튜브 스타는 드물다.

처음부터 박막례 할머니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튜브를 하기 이전까지 그는 하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포기해야 하는 삶을 살았다. 20살에 이른 결혼을 했지만 남편은 가정을 책임지지 않았다. 차비라도 아껴서 아이들에게 쓰기 위해 매일 반포동에서 사당동까지 걸어 일을 나갔고, 태어날 때부터 꾸미는 것을 좋아했지만 돈이 없어 사고 싶은 것을 참고 살아야 했다(‘코스모폴리탄’). 그러나 그는 패러글라이딩을 탈 수 있겠냐는 손녀 김유라 씨의 걱정어린 말에 “나 탈 수 있어”라 대답하며 패러글라이딩을 두려움 없이 즐기고, 술빵을 서투르게 만들면서도 “성공이 중요한거여? 도전이 중요한거여”라 말한다. 10대의 메이크업을 흉내내거나 도깨비에게 물건을 찾아달라고 비는 것처럼 다소 낯선 콘텐츠도 거부감 없이 보여준다. 무엇이든 해보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의 태도는 아무나 보여줄 수 없다.

“예능 드라마나 영화나 보면 남자가 다 요리사다. 여자는 밤낮 남자를 따라다니면서 마늘이나 까주고 양파나 까준다.” 박막례 할머니는 영화 ‘라따뚜이’의 리뷰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처럼 기성 미디어가 주류였던 시대에는 여성의 서사가 중심에 놓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특히 전문 엔터테이너가 아닌 70대 여성의 삶이 나올 만한 프로그램은 KBS의 ‘인간극장’ 정도고, 이마저도 여성의 주도적인 삶을 보여주거나 출연만으로 스타가 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유튜브를 비롯한 1인 미디어의 활성화는 박막례 할머니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시대를 만들었다. 수능을 앞둔 구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말하는 대로’ 세로라이브에서 그가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맞춰 노래를 부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야 유튜브가 수능 있냐? 수능 없잖아. 그니까 아무치도(아무 걱정) 말고 마음 푹 놓고 봐잉. 알았지?”라며 그만이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위로를 건넨다. 40년 넘게 식당을 운영했던 그의 비빔국수 레시피는 조회수 432만 회, 간장 비빔국수 레시피는 조회수 209만 회를 돌파할 만큼 인기를 끌기도 했다. 소외된 삶을 살아왔던 70대 여성이 스타로서 타인을 위로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한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가능해진 일이다.

한국 드라마의 특징과 선별법을 이야기하는 영상에서 박막례 할머니는 “막장이 없는 좋은 드라마도 많지만은 진짜 우리(노인들)한테는 진짜 스트레스 풀어지고 진짜 재밌어”라 말한다. 이 과정에서 저퀄리티라 비난받는 ‘막장 드라마’가 노인들에게는 소중한 볼거리라는 점이 드러난다. 또한 그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으며 교육에서 배제됐던 어린 시절에 대한 서러움을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70대 여성 노인으로서 약자의 삶을 살아온 그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의 결말에 대해 “동성연애를 하는 두 인물의 결혼이 그려지지 않아 아쉽다”라고 말하는 모습은 상징적이다. 박막례 할머니는 유튜브를 통해 주류가 됐지만 여성이자 노인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목소리를 내며, 기성 세대이면서도 다른 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고 존중한다.

지난 4월 유튜브 CEO 수잔 보이치키는 박막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구글 CEO 순다 피차이는 ‘2019 구글 I/O’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따로 시간을 내고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얘기는 유튜브가 없었다면 전해질 수 없었을 이야기의 예시다.” 수잔 보이치키의 말은 왜 이들이 박막례 할머니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지를 설명한다. 70대 여성 노인이 유튜브를 통해 인플루언서로 거듭난 서사는 분명 얼마나 유튜브가 민주적이며 소수자 친화적인 플랫폼인지를 강조하기 좋은 사례다. 오랫동안 자신의 삶에 성실했기 때문에 “더 다리 아프기 전에 도전도 더 힘나게 해보고 놀러도 신나게 다닐 것”이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82살에 구글에 입사할 것”이라는 꿈을 내려놓지 않는 한 사람의 삶이 만들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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