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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범 사건: 알고 있던 것, 알게 된 것, 알아야 하는 것

2019.06.03
리가 알고 있는 것
피해자 K씨. 최대한 익명 표기를 해보려고 해도, 그가 누구이며 이것이 어떤 사건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다들 알고 있다. 지난 5월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고 한참이나 깨어나지 못했다는 것까지도. 물론 사람들이 그 선택의 이유까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한국의 여성연예인은 ‘극한직업’이니 그를 괴롭게 한 것이 한두 가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스레 작년 9월 가해자 최종범의 폭행 및 성적 촬영물 유포 협박 사건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K씨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그의 심리상태까지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가해자 최종범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최종범은 언론에서 K씨의 ‘전남친’, 헤어 디자이너, ‘청담동 유아인’ 정도로 언급된다. 그를 쓰레기로 기억하고 최종범죄자로 호명하는 사람조차, 사실 피해자에 대해서처럼 그를 잘 알지는 못한다. 연예인과 비연예인의 차이라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그 옛날 ‘루저녀’의 근황은 비교적 최근까지도 집요하게 공유됐다는 점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중요한 점은 가해자의 상태와 일상이 궁금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해자에 비해서는 더더욱.

최종범이 알고 있던 것-왜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지난 4월 최종범은 SNS에 본인의 사업장 개업 소식을 올렸다. 또 그는 같은 글에서 친구, 지인, 자신을 좋아하고 아껴준 사람, 동료, 자신을 지지해준 사람, 가족에게 사과했다. 어디 영화제에서 상이라도 탔나 싶은 긴 인사이지만 정작 피해자에 대한 사과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3일 뒤 SNS에 '오픈 파티'라는 텍스트를 입힌 동영상 등 총 6개의 영상을 공개했다. 피해자의 상황과는 반대로 여유로워 보인다.

그가 ‘너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고 K씨를 협박했을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잘 알고 있던 것이 있다. 이 사회에서 성과 관련된 일은 소비할 수 있는 ‘이슈’가 된다. 물론 소비되는 것은 여성이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의 지원가들은 남성이 자기 얼굴에 모자이크를 하지 않고 피해 영상을 유포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여성만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한, 여성은 범죄에서조차 피해자가 아니라 성적 대상으로 환원된다. 구제받아야 하는 피해는 자연스레 숨겨야 하는 치부로 변한다.

한사성 활동가들은 모니터링 중에 포르노 사이트에서 아직도 피해자의 이름이 검색 키워드로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 동영상’을 볼 수 있으면 얼마까지 낼 수 있느냐며 자기들끼리 경매에 부치는 댓글들을, 부럽다는 사람들을 본다. 최종범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거대한,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듯한, ‘세상의 이치’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이 남성사회가 그에게는 얼마나 믿음직스러웠을까. 그야말로 누군가의 ‘경찰총장’보다도 든든한 뒷배이다.

피해자가 알고 있던 것-왜 그럴 수밖에 없었나?
최종범이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한 뒤, K씨는 순식간에 가해자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가 이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발표한 입장문에는 그의 담담하고 처절한 고백이 있었다. “디스패치에 제보했을까. 친구들과 공유했을까. 연예인 인생은? 여자로서의 삶은……. 복잡했습니다.”

피해자는 이 사건이 대중에게 흘러나간 뒤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K씨뿐 아니라 여자로 십수 년을, 혹은 기십년을 산 이들은 모두 K씨에게 닥친 일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주변에서, 또 자신의 일상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보아 왔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의 성적 촬영물이나 그와 관련한 음담패설을 즐겁게 공유하는 남자들, 자신의 이야기가 도는 것에 괴로워하고 그룹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는 여자들의 모습은 익숙한 것이다. 연예계 가십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형태와 규모만 달리했을 뿐 이런 일은 항상 반복되어 왔다.

이렇게 반복되는 상황들은 당장 피해자가 된 여성뿐 아니라 ‘아직’ 피해자가 아닌 여성들에게도 말을 건다. 여자인 이상 너 역시 언제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그때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노라고. 그러니 최종범 사건에 대해 양비론을 펼치거나 기계적으로 중립(이걸 기계적으로라도 중립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스러우나)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은 비겁하다. 당신들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 아닌가.

최종범이 몰랐던 것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다. 여성들은 지금까지 꼼짝없이 당했던 불안과 고통의 정체가 무엇인지 해부하고 그것과 직면하는 중이다. 이 범죄는 오래 자행되어 왔고, 명백한 잘못이며,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다’.

불법촬영과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혜화역 시위가 뜨겁게 진행되는 중에 최종범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양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혹자는 이렇게 화를 내도 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말하자면 이는 우리가 아는 것을 그는 ‘모르는’ 데서 기인한 문제이다. 수십만 명들의 여자가 바로 그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이야기해 정신을 못 차린 것이다.

실제로 최종범 사건이 보도된 이후 10월 6일에 열린 5차 시위에서는 태풍을 뚫고 온 1만 명의 여성들이 최종범 사건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가해자 최종범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대로 자신의 승리를 믿었겠지만, 이것은 지는 싸움이다. 이제는 가해자가 자신했던 대로, 피해자가 두려워했던 대로 되지 않는다.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글의 개연성을 다소 해치더라도 말미에 꼭 달고 싶은 말이 있었다. 최종범 사건의 피해자 K씨, 그리고 또다른 수많은 사건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이미 필자가 말한 것들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이 있음을 당신은 분명히 알고 있다. 이 폭력적이고 미개한 시대는 죽음을 맞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강한 여자들이 힘주어 버텨냈기 때문이라는 것, 당신이 바로 그 증거이다. 귀한 존재인 당신의 회복을 언제나 바라고, 응원하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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