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이 당길 때

2019.05.31
내추럴 와인은 술을 양조하는 과정에서, 특히 포도밭뿐만 아니라 발효와 숙성을 거치는 과정에서까지, 이산화황을 비롯한 화학적인 간섭을 최소화한 와인을 일컫는다. 특정 스타일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나라나 품종으로 한정 짓는 것도 아니다보니, 당연히 내추럴 와인이라는 카테고리를 특정하는 ‘맛’을 추려 내기란 어렵다. 그래서 내추럴 와인에 속하는 와인들은 제각각의 개성으로 빛나고, 내추럴 와인을 찾는 상황 역시 사람마다 제각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와인이 어쩐지 탈출하고 싶은 미로처럼 어렵게 느껴지는 이들에겐 내추럴 와인이야 말로 쉽고 명쾌한 답처럼 보일 것이다. 와인 숙취로 호되게 고생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나마 두통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내추럴 와인을 찾는다. 새콤하고 가벼운 맛을 즐기는 이들에겐 내추럴 와인의 산화된 풍미가 확실한 매력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저 세상 힙’으로 가는 독특한 와인 레이블을 즐기는 이들에겐 내추럴 와인만큼 분방한 즐거움을 주는 술도 없다. 최소한의 간섭으로, 가장 자연스러운 술을 만든다는 내추럴 와인 양조자들의 철학에 매료된 이들은 내추럴 와인의 세계를 깊고 넓게 알고 싶은 욕심이 샘솟을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시시때때로 찾아와 내추럴 와인에 자꾸만 눈길과 손길이 모두 가는 경우다. 어두운 방에서 모니터 불빛에 의지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은, 짜릿하게 새콤한 스타일의 내추럴 와인이 당긴다. 이 문장을 쓰면서는 어금니 뒤쪽에서 침까지 스윽 고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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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네스타렉 아임 낫 어 빅 와
내추럴 와인을 처음 접하기 시작할 때 마셔본 와인인데,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로 새콤한 맛에 한순간에 반해버린 기억이 난다. 밀란 네스타렉은 체코의 내추럴 와인 생산자로 서울 시내 내추럴 와인을 취급하는 바에 가면 이 라벨을 꽤 자주 볼 수 있다. 치즈를 잔뜩 넣은 샌드위치를 곁들였을 때 가장 좋았다. 샤르도네로만 만든 와인으로 병의 앞면엔 ‘아임 낫 어 빅 와인’, 뒷면엔 ‘아이 엠 샤르도네, 노멀 사이즈’라고 쓰여 있는, 귀여운 반어법의 와인이다.

샤토 드 벨 아브니르 부르고뉴 블랑 제로 에스오투
와인 만들기 어렵다는 습하디 습한 부르고뉴에서 이산화황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정도로 안정적인 맛을 낸다는 건, 이 와이너리가 와인을 정말 잘 만든다는 반증일 테다. ‘아름다운 미래’라는 뜻을 가진 ‘벨 아브니르’의 이 와인은 단정한 셔츠를 입은 사람처럼 말끔한 느낌이 든다. 샤르도네의 구운 견과류의 향이 별다른 꾸밈없이 바삭하고 담백한 전해지는 와인이다. 무심하게 부쳐낸 배추전과도 잘 어울린다.

패트릭 설리반 레인
호주 멜버른의 어느 핫한 레스토랑에 방문했을 때 마셔본 호주의 내추럴 와인으로, 국내에도 소량이나마 수입이 되고 있다. 피노누아와 피노그리 등 레드 품종과 화이트 품종을 섞어 엷은 복분자주 같은 색깔을 띤다. 화이트 와인처럼 차갑게 온도를 낮춰서 가볍게 마시는 편이 훨씬 맛있다. 입 안에서 짝짝 붙는 듯한 감칠맛이 매력이라 이 와인의 수입사가 진행한 국내 시음회에선 ‘동치미 같은 맛’이라는 시음평도 나온 적이 있다.

알렉산드로 비올라 신포니오 디 그릴로
고급 올리브오일 병처럼 생긴 와인 보틀의 모양이 눈에 띄어 관심을 가지게 된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의 내추럴 와인이다. 이탈리아 토착품종인 그릴로로 만든 화이트 와인이며 오렌지 향 살구 향이 고소한 맛과 쫀쫀하게 어우러진다. 발효한 음식에서 나는 새콤하면서도 쿰쿰한 향이 슬쩍 스치는 것도 매력이다. 마냥 가볍기만한 와인은 아니라서 별다른 안주없이 이 자체로만 즐기기에도 충분하다.

필립 장봉 윈 트랑슈 메이드 인 슈나스
프랑스 부르고뉴 보졸레 지역의 이름난 내추럴 와인 메이커 필립 장봉의 와인이다. 프랑스어를 조금 하는 사람이라면, 혹은 프랑스 샌드위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메이커의 이름 ‘장봉’은 프랑스어로 햄을 뜻한다. 레이블에 귀여운 돼지를 그려 넣은 것이 단번에 이해되면서 안주고민까지 단번에 날아가는 와인이다. 가메 품종으로 만들었고 내추럴 와인 특유의 마구간 향이 강하지 않으며 과실 향이 풍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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