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안84│② 네이버 웹툰의 책임

2019.05.28
“성별, 장애, 특정 직업군 등 캐릭터 묘사에 있어 많은 지적을 받았습니다.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캐릭터를 잘못된 방향으로 과장하고 묘사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더 신중하겠습니다.” 기안84는 지난 10일 웹툰 ‘복학왕’ 248화 ‘세미나 1’ 일부를 수정하고 하단에 이와 같은 사과문을 추가했다. 논란이 된 건 작중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 주시은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3일 전 네이버웹툰에 공개된 연재분에서 주시은은 “닥코티 하나 얼마에오?”라고 말하고 ‘딘따 먹고 딥엤는데’라고 생각했다. 청각장애인이 표면적으로 발화하는 말과 내면으로 생각하는 내용까지 어눌하게 묘사한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페이스북을 통해 “청각장애인이 말을 제대로 못할 것이라는 편견을 고취하고 청각장애인을 별개의 사람인 것처럼 차별하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의한 법률’ 제4조에 해당하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 행위다”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기안84가 주시은의 대사를 “닭꼬치 하나 얼마예요?”, ‘진짜 먹고 싶었는데’로 수정하고 사과한 이후 해당 게시물을 삭제했다.

현행 제도상 사회적으로 문제시되는 웹툰에 대한 규제나 재발 방지 대책 수립은 웹툰업계 자체의 몫이다. 웹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를 받는 TV, 라디오, 영화, 광고 등과 달리, 한국만화가협회와 주요 플랫폼이 협력해 출범한 단체인 웹툰자율규제위원회의 자율규제를 받는다. 방심위는 민원이 들어온 사안에 대해 웹툰자율규제위에 심의를 의뢰한다. 심의 결과에 따라 서비스 종료, 청소년 접근제한 조치, 성인인증 권고, 연령등급 조정 등의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조치가 내려진 이후에도 한국만화가협회에서 별도 조치가 필요하다고 회신할 경우에는 방심위가 심의를 진행하지만, 2012년 협약 이후 현재까지 방심위가 심의를 진행한 사례는 전무하다. 웹툰자율규제위가 심의를 주관하는 이유는 방심위와 한국만화가협회가 2012년 4월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고 예술적 표현물에 대한 검열을 방지하기 위해 MOU를 체결했기 때문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문화적 발전을 위해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창작 의욕을 꺾어버릴 우려가 있는 공적 규제보다는 만화가협회나 플랫폼의 자정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라고 전했다.

이에 따른 네이버웹툰의 조치는 기안84 개인의 사과였다. 한 관계자는 웹툰 제작 및 수정 과정에 대해 “작가님이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담당 편집자와 함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마감 이후에도 수시로 세부 의견을 나누고 있다”라고 밝혔다. 기안84의 웹툰은 기안84 혼자 만들어낸 창작물이 아니라, 플랫폼인 네이버웹툰 측과 상호 소통한 결과라는 의미다. 그러나 네이버웹툰은 기안84 개인의 사과문을 기존 연재분에 추가했을 뿐, 플랫폼 차원에서 공식적인 사과문을 게재하거나 팝업창을 띄우는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관계자는 “안건에 따라 플랫폼 차원에서 사과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번 사안은 작가님이 사과문을 보내주셨기 때문에 이를 신속하게 게재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라고 말했다. 재발 방지를 위한 내부 규정 마련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작가님께 의견을 드리는 정도”라며 “하나의 잣대를 정해놓고 검열 또는 수정한다면 문화의 다양성을 저해하는 일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창작자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플랫폼 차원에서의 심의와 책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박석환 한국영상대학교 만화콘텐츠과 교수는 자율규제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플랫폼이 뒤로 물러나 있는 방식은 오히려 창작자들을 보호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창작자는 자유롭게 표현하되 이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심의 주체가 되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박석환 교수는 현행 방식은 작가와 업체가 자율적으로 심의하고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기구에서 결정하겠다는 것이라며 작가에게 부담스러운 역할을 떠안게 해서 오히려 창작 활동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저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작가의 작품을 상품화하여 유통하고 돈을 번 것은 플랫폼이기 때문에 유통에 따라 발생한 문제는 플랫폼에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표현을 한 작가에게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플랫폼이 단순한 매개체마냥 뒤로 물러나있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했다.

‘복학왕’을 둘러싼 소동은 작가 개인의 사과를 끝으로 ‘표현의 자유와 규제’에 관한 의제를 남긴 채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사과 이후에도 지적된 부분은 개선되지 않았다. 250화 ‘세미나 3’에서 주시은은 "그만해~ 개못하는구만"을 “그마해~ 게이 모타는 구만”으로 발음한다. 네이버웹툰 관계자에게 논란이 불거진 뒤에도 해당 표현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를 묻자, “논란이 일었을 때의 포인트는 ‘청각장애인이 생각까지 어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연출적 표현은 남겼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청각장애인의 생각은 제대로 표기하되, 대화는 연출적 의도 하에 비정상적으로 표기했다는 주장이었다. ‘세미나 1’에서는 주시은의 생각뿐 아니라 발화하는 대사도 정상적으로 표기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관계자는 “당시는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반적인 수정이 이뤄진 것”이라며 “이후 작가님과 편집부가 상의한 결과, 해당 캐릭터가 일회성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예정이기 때문에 전개상 필요한 최소한의 표현은 남겨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연재된 224화 ‘주시은 1’~226화 ‘주시은 3’만 해도, 주시은의 대화와 생각은 모두 정확한 발음대로 표기되어 있다. 잘 듣지 못해 주변인과 오해를 빚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다 실수를 하는 모습이 그려지긴 했으나 말 자체를 부정확하게 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시은은 기안84의 사과문에 적힌 것처럼 “작품을 재미있게 만들려고”, 네이버웹툰에 따르면 “최소한의 연출적 표현”에 따라, 비정상적인 발음으로 말하게 됐다. 네이버웹툰에서 2017년 완결된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는 라일라 작가가 청각장애인으로서 겪는 일상을 다룬 작품이다. 이 웹툰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인물들의 대사나 생각은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 없이 표기된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네이버웹툰은 ‘복학왕’이 보여주는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전개상 필요한 최소한의 표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외국인노동자 비하 논란이 불거진 장면도 그대로였다. 태국인 노동자 프라묵은 유창한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종종 말끝에 ‘캅’을 붙이고 웃을 때에도 ‘캅캅캅’ 소리를 낸다. ‘캅’은 태국어에서 존대의 의미가 담긴 종결어미로, 우리말로는 ‘-요’와 쓰임새가 유사하다. 해외에서 제작한 콘텐츠에서 한국인으로 설정된 캐릭터가 ‘요요요’하고 웃는 셈이다. ‘복학왕’ 내 외국인 캐릭터는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한 노동자, 즉 사회적 약자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런 묘사는 캐릭터 등장 당시부터 사과문 추가 이후 연재분인 ‘세미나 2’, ‘세미나 3’까지 유지되고 있다.

‘복학왕’은 국내 최대 플랫폼인 네이버웹툰에서 수요웹툰 조회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기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7 만화 산업 백서’에 따르면, 국내 웹툰 이용자 중 네이버웹툰을 주 이용 서비스로 뽑은 응답자는 전체의 76.9%였다. 또한 네이버가 2017년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공개한 웹툰 포함 콘텐츠 서비스 부분 매출은 267억 원(2017년 3분기 기준)이었다. 당시 네이버웹툰의 월 실질이용자 수는 4000만 명 정도로, 올해 1분기 월 실질이용자 수는 이보다 30%이상 증가한 5500만 명에 달한다. “문제의식을 갖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문화적 파급력이 큰 곳에서 이렇게 사회에서 차별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희화화하는 것은 하나의 권력 남용이라고 생각한다.” 한 장애여성인권단체 관계자가 ‘복학왕’ 논란을 접하고서 전한 말이다. 그러나 기안84와 네이버웹툰은 아직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파울로 코엘료의 어록 중 하나를 전하고 싶다.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실수가 아니다.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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