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세계 자위의 달

2019.05.20
5월은 ‘세계 자위의 달’이다. 세계인들이 다 함께 자위라도 하면서 이 아름다운 봄날을 만끽하자는 뜻일까. 아니면 일 년 동안 할 자위를 5월 한 달에 몰아서 하자는 뜻일까. 어쩌다가 5월은 ‘세계 자위의 달’이 되어버렸을지 궁금해진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1993년 조이슬린 앨더스 박사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의해 미국 공중위생국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앨더스는 낙태, 자위, 성교육 등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을 아끼지 않았으나 매번 논란이 되었다. 본래의 취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회자되곤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방송에서 낙태율의 증가를 줄이기 위해서 콘돔 사용법 등 피임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으나, 사람들은 다섯 살짜리 아이들에게 콘돔을 주라는 거냐며 비아냥거렸다. UN 세계 에이즈의 날 컨퍼런스에서는 자위를 성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가 구설수에 올랐고 결국 자리에서 해임되었다.

앨더스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아마 그는 많은 이들이 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동의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편집하기 바빴고 그 결과 앨더스는 그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앨더스가 예비 학생 및 유치원 아동들에게까지 콘돔을 나눠주고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가짜 뉴스가 퍼졌다. 어떤 사람들은 콘돔, 자위 등 섹스와 관련된 단어가 등장하면 갑자기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힘들어지는 모양이다. 앨더스의 해임 이후 한 섹스토이 업체에서 분노를 표하고 자위의 중요성을 드러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5월 7일 ‘전국 자위의 날’이었다. 그 후 자위의 날은 규모가 점점 커져 ‘세계 자위의 달’로 발전했다. 앨더스가 단순하게 ‘자위’를 말했기 때문에 해임을 당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흑인’이자 ‘여성’이라는 그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 사랑과 재생산의 영역이 아닌 섹스 즉 ‘비정상’적인 영역의 섹스인 낙태와 자위를 언급했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해임이라는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어찌됐건 부당하다.

‘정상’에서 살짝이라도 벗어나면 ‘섹스’는 부도덕하고 더러워진다. 정상은 종종 사랑이라는 모호한 개념과 동의어가 된다. 사랑은 섹스를 나눌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된다. 사랑으로 맺어진 가정 안에서 부부의 섹스는 ‘부부관계’라는 단어로 존재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섹스는 온갖 사회 문제의 원인이다. 동성 간의 섹스도 이러한 맥락 안에서 ‘사회 문제’가 되곤 한다. 이러한 정상적인 섹스라는 개념은 사랑의 결실을 가져다주지 않는 ‘자위’에도 온갖 낙인을 찍는다. 자위를 통해서는 사랑도 아이도 얻을수 없으니 얼마나 쓸모없게 보이겠는가. 임신을 하기 위해서 섹스를 하는 사람이 있지만, 모든 섹스가 임신을 위한 것인 사람은 드문데 말이다. 내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만나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혹시 몰라 드물다고 썼다.

얼마 전 한 고등학교에 강의를 갔다가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삽입이 더 좋아요, 클리토리스 자극이 더 좋아요?” 우리는 유기적이고 복합적인 삶을 살아간다. 한 가지만 먹거나 한 가지만 입거나 한 사람만 만나며 살아가지 않는다.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기 어려워 짬뽕과 짜장면을 동시에 먹기도 하고, 오늘은 꽃무늬 티셔츠를 입었다가 내일은 노란색 블라우스를 입기도 한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굳이 한 가지에 머물 필요가 없다. 잠자기 전 몸의 이완을 위해서 섹스토이를 이용해 자위를 할 수도 있고, 파트너와의 섹스를 더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성기를 만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오늘 즐겁게 삽입 섹스를 했더라도 내일은 문지르는 섹스를 할 수도 있다. 오늘은 손가락 한 개만 넣고 싶지만 내일은 두툼한 딜도를 넣고 싶을 수도 있다. 우리의 몸은 매일매일 달라진다. 자위를 하는 이유는 수만 가지다. 자위를 하지 않는 이유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하지만 자위를 시도해보지 못하는 이유가 자위에 대한 편견 때문이라면, 5월 ‘세계 자위의 달’을 맞이해 그 편견을 살짝 내려놓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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