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의 커피를 판단할 수 있는 몇가지 키워드

2019.05.16
성수동 뚝섬역의 블루보틀 한국 1호점이 오픈했다. 몰려드는 손님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가며 커피를 마시는데다 음료 주문은 입장 시 1회 밖에 할 수 없다는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일반 고객이 한국의 블루보틀과 미국이나 일본 블루보틀과의 차이, 여러 메뉴의 맛 등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기는 쉽지 않을 듯 하다. 라떼와 지브롤터, 드립과 뉴올리언스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블루보틀을 방문하고 느낀 소감과 평가를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블루보틀 인스타그램
지브롤

한국 대중들에게는 블루보틀은 라떼 맛집으로 알려져 있지만,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지브롤터라는 메뉴가 더 유명하다. 우유가 적게 들어가고 농도가 진한 라떼인데, 사실 잘못 주문한 어중간한 사이즈의 작은 유리잔을 에스프레소 테스트 용도로 사용하다 우연히 만들어진 메뉴로, 메뉴 이름을 묻는 손님에게 바리스타가 즉석에서 지브롤터라는 이름을 지어 답변했던 데 유래한다. 지브롤터는 해당 유리잔이 들어있던 박스 겉면에 써있던 단어로, 미국 리비 글라스(Libbey Glass)의 텀블러(손잡이가 없는 잔) 제품군에 붙여진 등록명이다. 카푸치노 잔보다 약간 작은 사이즈의 유리잔에 에스프레소를 담아 온도가 낮고 조밀한 밀크폼을 올려서 주는데, 카푸치노와 커다란 차이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블루보틀의 카푸치노 잔은 좀 예쁘지 않게 느껴지는 반면에, 지브롤터 잔은 잡으면 폼이 난달까. 라떼도 지브롤터도 맛있었지만 맛이 다르지는 않았고 단지 농도의 차이만이 느껴졌다. 커피맛을 좀 더 강하게 느끼고 싶다면 지브롤터를 추천한다. 블루보틀에는 에스프레소 샷추가가 없으니까.

상하목장 우유
블루보틀은 맛있는 라떼를 만들기 위해 (고가의) 엄선된 우유를 사용한다. 시럽, 설탕 등이 놓여진 셀프바에도 상하목장 우유가 비치되어 있으니 마셔보면 우유의 품질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블루보틀의 라떼가 맛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커피가 맛있기 때문이다. 100년 묵은 씨간장으로 밥을 비비더라도 타고 설익은 3층밥으로는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 수 없는 법이다.


블루보틀에서 타 커피 브랜드와 차별화된 메뉴로 내세우는 것은 드립 커피다.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빨리빨리 뽑는 커피 문화가 대중화된 미국에서, 손으로 시간을 들여 내리는 싱글오리진드립 커피를 알리는 데 일조했다는 것인데, 사실 지금에 와서는 차별화된 메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맛에서는 확실히 차별화된 훌륭함을 보여줬다. 정말 깔끔하면서 좋은 단맛과 다채로운 향미가 아주 우아하고 매끈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뉴올언스
콜드브루 커피에 우유와 구운 치커리를 넣어 우리고 비정제당을 섞어서 만드는 메뉴로, 블루보틀의 시그니처 메뉴로 알려져 있고 성수점에서도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맛을 분석해보면, 밝고 부드러운 맛의 콜드브루 커피에 우유를 넣어 약해진 바디와 뉘앙스를 치커리의 그것으로 대체·보완하고 설탕을 넣어 먹을 만하게 만든 음료라고 생각된다. 치커리의 쓰고 떫은 맛이 과하게 태운 강배전 커피의 부정적인 맛을 연상케 하는데, 실제 커피의 그것에 비해서 부정적인 맛이 매우 마일드하기는 하다. 그렇다보니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익숙해진 입맛이라면 이 메뉴가 맛있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블루보틀의 커피는 산미가 있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모든 원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헤이즈 벨리 블렌드와 자이언트 스텝스 블렌드는 산미가 없고, 벨라 도노반 블렌드와 쓰리 아프리카스 블렌드, 그 외 싱글오리진 원두들은 산미가 있다. 하지만 과하거나 자극적인 산미가 아닌 부드럽고 달콤하게 표현된 산미이기 때문에, 산미 있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싱글오리진 보다는 블렌드 쪽이 산미가 살짝 더 도드라지는 느낌인데, 산미 헤이터들에게는 큰 차이로 느껴질 수도 있으니 참고하시길. 반면 산미가 없는 블렌드인 헤이즈 벨리와 자이언트 스텝스는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가 약간 어렵지 않을까 싶은데, 이유는 블루보틀에서 사용하는 로스터기의 (강배전이 더 난이도가 높은) 특성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 블루보틀의 경우 현지인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미국과는 다르게 로스팅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배전도가 미국/한국에 비해 더 강한 편이다.

로스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원두를 사용한다고 하는 방침이 유명하지만, 실은 이것은 과거에 사용한 선전 문구이고 지금은 방침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블루보틀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최고의 맛을 낼 수 있는 날짜에 커피를 제공한다고 되어 있는데 예를 들어 헤이즈 벨리 블렌드는 로스팅 후 4일~7일 사이의 것을 사용한다고 한다. 더불어 구입한 원두는 로스팅 날짜로부터 2주 이내에 마시는 것이 좋다는 안내도 하고 있다. 실제 성수동 매장에서 5월 6일에 판매하던 원두의 로스팅 날짜는 4월 29일이었다. 현재는 판매용 원두를 팔고 있지 않은데 5월 넷째 주 이후에나 다시 판매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저트
방배동의 유명 디저트 매장 메종엠오에서 블루보틀의 디저트를 담당하는데, 실로 이상적인 커피와 디저트의 어울림을 체험할 수 있었다. 서로의 맛을 갉아먹지 않으면서 각자의 장점과 포인트를 느낄 수 있었고, 때로는 커피의 일부 좋지 않은 뉘앙스를 디저트가 가려주어 좋은 맛만 느끼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스페셜티 등급의 생두로 만드는 스페셜티 커피는 이런 맛을 내야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깔끔하고 달고 다채로운 맛과 향이 느껴지며 지속력도 있다. 맛으로 블루보틀과 경쟁할 수 있는 한국 스페셜티 매장은 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가 않다. 실로 한국 스페셜티 커피 업계에 등장한 타노스라고 할 수 있다. 이 맛을 유지할 수 있을지가 문제겠지만,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업계인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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