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틴2│①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사소함에 대하여

2019.05.14
“그렇게 되고 싶었다. 흔해 빠진 여러 명의 ‘조연’이 아닌 단 ‘하나’의 주연.” V오리지널 웹드라마 ‘에이틴’에서 ‘김조연’으로 살던 과거를 회상하는 김하나(이나은)의 독백 장면은 이 이야기의 방향성을 압축한 것과도 같다. 존재감 없는 중학교 생활을 하던 김조연은 우연히 학원 특강에서 항상 당당하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도하나(신예은)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그를 따라 이름을 ‘김하나’로 개명한다. 그림에 재능이 있는 도하나를 의식해 미술학원에 다니는 척하고, 단지 도하나가 짝사랑하는 대상이기에 하민(김동희)과 의도적으로 가깝게 지낸다. 독립적인 자아를 갖기 위한 욕망에서 출발한 행동이었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인간 ‘김하나’가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김하나가 도하나의 자리를 대신해 ‘에이틴 2’ 주인공이 되었다는 점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에이틴’ 시리즈는 삶의 주연으로서 ‘하나’뿐인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10대들의 고민에 대한 이야기다.

이 고민은 김하나만의 몫이 아니다. 일찍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음에도 “하고 싶은 게 없다”라고 말하던 도하나는 미술학원에 다니는 김하나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미술로 진로를 결정한다. 도하나와 김하나의 단짝친구 여보람(김수현)은 프로게이머를 꿈꾸지만 이는 보수적인 가족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재능이다. 남시우(신승호) 역시 농구선수로 활동했으면서도 밝혀지지 않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경기를 기피한다. 그러나 ‘에이틴’에서 학생들이 겪는 진로 문제는 자아 갈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입시는 이들이 겪는 갈등의 핵심이 아니다. 열여덟이었던 ‘에이틴’ 속 인물들이 ‘에이틴 2’에서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드라마는 이전보다 조용해진 교실 분위기를 짧게 묘사하는 데 그친다.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하민이나 김하나가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거나 떡볶이를 배달시켜 먹는 장면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JTBC ‘SKY 캐슬’이 극단적인 사교육과 학부모들의 과열된 경쟁으로 대한민국의 입시 제도를 묘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에이틴2’의 세계는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김하나가 전교 1등을 차지할 수 있을 만큼 평화롭고 이상적이다. 이처럼 현실과 대치된 풍경 속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민하는 10대의 평범한 고민은 오히려 더 맑고 선명하게 드러난다.

‘에이틴’ 시리즈의 시청자라 밝힌 덕수고등학교 1학년 안수연(가명) 학생은 ‘에이틴’이 실제 고등학교 생활과 비슷한지 묻는 질문에 대해 “고2, 고3이면 공부를 해야 하는 나이인데 항상 노는 것만 보여주는 것이 비슷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라고 답했다. 같은 학급의 다른 학생들 역시 “너무 미화됐다”, “이렇게 잘생기고 예쁜 학생들은 주변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더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에이틴’을 보는 이유에 대해 “배우들의 외모가 좋아서”(10명), 혹은 “공감이 되어서”(6명)라 밝혔다. 실제로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진 도하나와 김하나를 연기한 배우 신예은과 이나은의 외모는 ‘도하나병’, ‘김하나병’이라는 신조어를 낳을 정도로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도하나가 할 말은 하는 강단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김하나는 사근사근한 성격의 모범생으로 또다른 매력을 가졌다. ‘에이틴’은 상반되는 캐릭터를 한 작품에서 보여주며 각기 다른 판타지를 제시하되, 10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아 탐색이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10대에게 친근한 학교라는 배경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소재로서 사용된다. 그 결과 실제 학교 생활과의 유사성과는 별개로, ‘에이틴’은 10대의 판타지와 공감을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작품이 된다.

‘에이틴’은 종종 인물들의 갈등을 불완전하게 봉합하거나, 인물의 디테일한 심경 변화를 15분의 짧은 시간에 담아내는 데에 실패하기도 한다. 도하나를 의식하고 질투하는 것을 넘어 오히려 그가 자신을 따라했다고 매도한 김하나의 행동은 두 사람의 화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일부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과외 선생님을 짝사랑하던 하민이 김하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되는 과정은 ‘에이틴 2’에서 중요한 변수임에도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한계는 인물들의 결함을 10대의 개성으로 활용하는 드라마의 시선을 통해 채워진다. ‘에이틴’에서 다소 극단적으로 보였던 김하나의 어두운 과거는 이제 ‘에이틴 2’에서 그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는 서사를 부여하는 원동력이 됐다. 또한 모두에게 다정한 태도를 취해 ‘어장관리’라는 비난을 받던 하민이 김하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것은 진심을 보일 줄 모르던 그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에이틴’의 인물들은 판타지처럼 평온하게만 보이는 세계 속에서도 현실적인 결함을 내보이며, 이는 그들의 갈등과 성장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늘 평범했지만 정작 평범한 건 단 ‘하나’도 없던 내 열여덟의 어느 날.’ ‘에이틴’ 첫 회에 등장한 도하나의 내레이션은 평범한 일상을 결코 평범하게 생각할 수 없는 10대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다만 나의 열여덟에 네가 있길 바랐을 뿐’이라며 하민과의 만남을 간절하게 원하던 도하나의 바람은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열여덟에 남시우라는 다른 선물이 찾아오듯, 시간은 무겁게만 느껴지던 문제를 금세 사소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에이틴’은 그 시간이 오기 전까지 10대들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를 오롯이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그리고 사소하게만 치부되던 순간들이 결국 하나의 고유한 삶을 만들어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에이틴’은 10대의 판타지를 얄팍하게 다루거나 교육 시스템의 부조리에 집중하지 않는다. 단지 학교 시스템과 입시라는 명분에 가려졌을 10대들의 내면을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들여다볼 뿐이다. 항상 10대의 현실이라 불리던 거대한 것들을 치우자, 1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들의 또다른 세계가 드러났다. 이것은 결코 평범하거나 사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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