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캅스’의 개봉전 벌어진 일들

2019.05.13

* 영화 ‘걸캅스’의 내용이 있습니다. 

개봉 전, 영화 ‘걸캅스’에 대해 ‘‘걸캅스’ 스포일러’라는 글이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 일제히 게시됐다. “육아에 치이고 여자란 이유로 승진까지 막힌 ‘여경’이 비공식 수사로 활약해 특진한다”라는 게 대충 그 내용이다. 이성경이 ‘아가씨’라고 부르는 남자의 중요 부위를 걷어찰 거라는 둥, 라미란이 “여편네는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말에 이단옆차기를 할 거라는 둥, “여경이 아니라 경찰이거든?”이라는 대사가 꼭 있을 거라는 둥, 디테일도 빠뜨리지 않는다. 댓글로는 "벌써 다 봐서 아무도 돈 내고 안볼 듯”, “그분들이 몰려온다”, “나 일반인인데 여경이랑 삼대일로 ‘맞짱’ 떠도 이긴다”느니, 열화와 같은 비아냥 경진대회가 열렸다.

그 게시글에서 낄낄댄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그게 대관절 뭐 어쨌다는 건가? 시리즈물인 ‘투캅스’(1993)부터 시작해 ‘와일드카드’, ‘체포왕’, ‘부당거래’, ‘공조’, ‘탐정’, ‘청년경찰’ 등등 가지각색 남형사 영화가 수십 년간 발에 채이게 쏟아질 때, 한국 영화는 형사 없으면 못 찍는다는 우스갯소리마저 있을 때, 거기서 여성들은 바가지 긁는 마누라거나 지켜 줘야 할 딸, 여동생, 연인으로만 등장할 때, 당신은 그걸 ‘뻔하다’고 표현했던가? 놀랍게도 ‘걸캅스’는 이제 겨우 첫 여성 형사 버디물이다. ‘페미코인’을 노린 영화라 뻔하다고? ‘걸캅스’는 페미니즘 이슈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르기 전부터 기획된 영화다. 아니, 그전에 이런 걸 왜 항변해야 하나? 시류와 잘 맞는 게 뭐 어떻다는 건가? 작품이 동시대의 시류를 잘 반영한 것은 시의성이 있다고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 아니었나?

우습게도 이 일련의 ‘‘걸캅스’ 스포일러’ 글들은 뒷걸음치다 쥐를 잡은 격이다. 맞다. 그런 악플들을 단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여자란 이유로 승진이 막히고, 종종 직함 대신 ‘아가씨’나 ‘아줌마’로 불리고, 고된 노동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육아에 치이고, 정작 중요한 일에선 배제돼 뭘 시도할 수조차 없다는 걸. 그렇게 소외된 그들이 비공식 수사를 하자며 머리를 맞대야만 거기서부터 ‘영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걸. ‘걸캅스’가 '뻔하다'며 조롱하기 위해 쓴 글 자체가 그들이 이미 여성의 현실을 ‘뻔히’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렇게 익히 아는 보편적인 이야기가 이제야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게 놀라울 마당에, 그들은 보지 않았고 보지도 않을 콘텐츠를 이미 다 봤다며 떠들고 있다.

‘걸캅스’를 보고 나자, 개봉 전 잡음들에 대해 더욱 황당해졌다. 영화 속 여성들이 놓이는 상황은 익히 아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걸 여성 형사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라미란과 이성경, 그리고 수영의 캐릭터 연기는 번뜩였다. 세 배우가 난투하듯 비속어가 난무하는 대사를 치고받을 땐 이런 걸 어떻게 감추고들 있었나 싶을 정도로 스파크가 튄다. 영화 속 남형사들이 ‘씨발’ 없인 단 한 단어도 전진시킬수 없던 것처럼 ‘좆’이 섞인 비속어를 많이도 찾는데, 그 언어 구사가 그렇게 탄력적일 수가 없다. 이걸 두고 누군가는 “남성성에 그저 여성의 외피만 입힌 것 같다”라고 평했는데, 아마 그는 여자들의 일상 대화를 제대로 들어본 적 없었을 것이다. (욕을 적게 하는 게 여성성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구강 액션뿐 아니다. 전직 레슬링 선수로 등장하는 라미란과 이성경은 몸을 던져 ‘개싸움’ 액션을 보여주는데, 남자를 일방적으로 쥐어 패기만 하는 게 아니라 흠씬 맞기도 한다. 판타지와 현실이 뒤섞여 있어서 더 처절하다.

‘걸캅스’의 두 여성 형사가 추적하는 범죄는 약물 강간과 불법촬영 범죄다. “이런 사이트 수 만 개가 있어요. 어차피 잡지도 못해요”라고 말하는 남성 경찰들을 뒤로 하고, 박미영(라미란)과 조지혜(이성경)는 일당을 잡아 불법촬영물을 파기하려 달린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고통받고 두려워하고 있을 피해 여성들을 구하기 위해 뛴다. 코미디지만 범죄의 심각성과 무거움을 외면하지 않는다. 웃기지만 결국 울게 된다. 어처구니없게도, 조롱하기 위해 쓴 ‘스포일러’가 실제 영화보다 더 현실과 닮은 점이 있다. 여성 경찰을 배제하던 남성 경찰들이 악의 축으로 드러날 거라던 댓글. 그런데 ‘버닝썬 사태’의 끝은 강남서 남성 경찰과 성범죄자 간의 우정 어린 유착이었으니, 하이퍼리얼리즘적 예상이었다. 하지만 ‘걸캅스’는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오히려 때로 남성들을 조력자로 활용하고, 가끔 변화도 시킨다. 좀 모자라고 걸리적거리지만 귀여운 아이캔디로도 나온다. 귀여운 막내 남형사에게 “그냥 누나라고 해,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라고 하는 대사 등 익히 봐온 어떤 장면들을 뒤집는 쾌감도 있다.

48편의 필모그라피, 20년 연기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연 배우를 맡은 라미란은 ‘스타 라이브토크’ 시사회에서 “이런 기분인가 봐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요”라고 목이 메는 듯 말했고, 개봉을 앞두고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설친다는 이성경은 “최근의 뉴스들을 보며 진심을 담아 연기했어요. 그건 완전히 진심이었어요”라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관객과의 대화에선 한 모로코 여성이 손을 들어 마이크를 잡아 서툴지만 정확히 말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 여성이라서, 좋습니다. 마지막에 여성을 구한 게 여성들이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누가 개봉 전부터, 이 환호에 초를 칠 권리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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