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는 남자에게만 자격을 준다

2019.05.08
“그런 건 네가 얘기해 줘. 우리는 (남자가 귀여운 거) 몰라”. JTBC ‘슈퍼밴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악동뮤지션 이수현이 한 참가자에 대해 “호감형으로 생기셨다”고 말하자 윤종신이 한 발언이다. 보컬, 키보드, 기타,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참가자들이 모여 밴드를 구성한다는 콘셉트의 이 프로그램에서 윤종신, 윤상, 그룹 넬의 김종완과 린킨파크의 조한 등 다른 심사위원들의 평균 연령은 약 45세다. 반면 이수현은 만 19세로 2014년에 첫 앨범을 발매했다. 타 심사위원에 비하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유독 낮은 연령과 짧은 음악 경력이다. 심사위원과 참가자를 통틀어 이 프로그램에서 유일한 여성이기도 한 그가 뮤지션이지만 팬으로서의 시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윤종신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마치 당연한 일처럼 그려진다.

이수현은 심사위원으로서 평가기준을 ‘최애’ 혹은 ‘덕질하고 싶은 사람’이라 설명했다. 그가 팬으로서의 시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청자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 한 가지 기준이다. Mnet ‘프로듀스 101’ 시리즈처럼 시청자의 선택만으로 아이돌 그룹이 결성되고, SBS ‘더 팬’처럼 음악적인 전문가들이 ‘팬심’을 평가 기준으로 내세우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등장했다. 그러나 ‘슈퍼밴드’는 심사위원의 참여를 통해 전문가들이 평가하는 음악성을 심사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그룹 자우림의 김윤아처럼 다른 남자 심사위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경력을 가진 여성 뮤지션이 함께 출연했다면 이수현의 역할도 다양한 관점이라는 측면에서 긍정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슈퍼밴드’는 유일한 여성 심사위원에게 전문적인 역할을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이수현이 특정 참가자에게 손으로 하트를 그리거나 “저의 최애가 될 것 같은 느낌”이라 발언하는 모습 등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킨다. 여성은 뮤지션으로서, 심사위원으로서의 자격을 제대로 부여받지 못한 채 오직 출연자들의 무대를 보고 환호하는 역할에 그친다.

‘슈퍼밴드’가 출연 자격을 오직 남자로 제한했다는 점은 왜 이수현이 심사위원이 아닌 ‘팬심’을 보여주는 역할을 부여 받았는지 보여준다. 여자는 이 프로그램에서 환호를 보내는 것 외에는 어떤 역할도 부여받지 못한다. 물론 ‘프로듀스 101’도 시즌에 따라 걸그룹과 보이그룹을 따로 뽑는다. TV조선 ‘미스트롯’도 여성 출연자들만 나온다. 하지만 ‘프로듀스 101’은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상업적으로 사실상 다른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양 쪽 모두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트로트 역시 남자 트로트 가수들도 활발하게 활동한다. ‘미스트롯’은 ‘제 2의 장윤정’을 모토로 한다면서 장윤정에게 심사위원 전체를 끌고 가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두 프로그램은 각자 많은 문제를 가졌지만, ‘슈퍼밴드’처럼 특정 성별을 아예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하지 않았고,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이 아니라도 다른 선택지가 있을 만큼 해당 장르에 대한 시장도 일정 규모 이상 존재한다.

반면 ‘슈퍼밴드’는 애초에 쉽게 유명세를 얻기 힘든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 특히 연주자들이 출연한다. 또한 아이돌이나 트로트처럼 상업적으로 통하는 기준이 어느 정도 있는 장르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여러 장르를 하는 뮤지션을 조합하기 위해 밴드라는 형식을 취했을 뿐이다. 팀 미션에서 바이올린, 첼로, 클래식 기타 등 클래식 악기로만 밴드를 구성한 임근주 팀은 들국화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에 바흐의 무반주 첼로 프렐류드를 배경으로 삽입한 무대를 보여줬다. 디폴이나 얘네바라 듀오처럼 전자음악에 전문성을 가진 참가자들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슈퍼밴드’는 지금 한국 대중음악 산업 안에서 상업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장르들을, 출연자들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여자 뮤지션은 완전하게 배제한다. 심사위원마저 팬의 시선을 대변하는 역할만 강조한다.

‘슈퍼밴드’를 연출한 김형중 PD는 "기획 의도는 마룬파이브(Maroon5) 같은 글로벌 팝 밴드를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반 시즌은 지향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남성 위주로 갔다"(‘연합뉴스’)고 밝혔다. 이 말대로라면, 그는 남자들의 밴드여야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편견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 밴드의 경우 남자들로 구성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전세계적으로 마룬파이브만큼의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팀들 자체가 극소수다. 한국이라면 그 가능성은 더더욱 낮아진다. 국내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으로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은 아이돌 그룹 워너원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또한 현재 빌보드 차트를 이끄는 뮤지션 중 상당수는 아리아나 그란데,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등 여성들이다. ‘슈퍼밴드’는 이런 세계 음악의 경향은 무시한 채 희박한 확률에 의지한 모호한 기획을 바탕으로 음악적 주체로서의 여성을 배제하고 왜곡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차별이라고 한다.

‘슈퍼밴드’에 출연한 독일 유학파 첼리스트인 홍진호는 “클래식 음악이 소위 말하는 특권계층만을 위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다”고 밝히면서, “‘악기 연주자를 위한 오디션은 왜 없을까?’를 고민하던 찰나에 ‘슈퍼밴드’에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클래식 첼리스트나 퍼커션, 혹은 일렉트로닉 DJ 등 다양한 분야의 뮤지션들이 독립된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쉽지 않다. 또한 밴드라는 프로그램의 형식을 빌려 클래식과 일렉트로닉, 포크나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새로운 음악적 조합을 시도하고 이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 역시 유의미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슈퍼밴드’에서 이 기회는 모두 남자에게만 주어진다. 밴드 음악을 하는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을 알릴 다른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다. ‘슈퍼밴드’ PD가 생각하는 밴드와 밴드음악이란 대체 무엇일까. 남자들이 모여서 여자 팬의 인기를 얻는 것이 밴드의 전부라고 생각했다면, 2019년에는 참 부족한 상상력이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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