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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미란, 주인공에게 보내는 박수

2019.05.08
“영화 48편, 나이는 마흔다섯. 연기 시작한 지 20년이 조금 넘었는데 첫 주연을 맡게 된 라미란입니다.” 라미란은 영화 ‘걸캅스’ 기자 간담회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가 다음 말을 고르며 숨을 들이마시는 사이 객석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그러자 라미란이 말했다. “자신 있게 하려고요, 뭐든.” 주인공 라미란으로의 도약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라미란은 오랜 시간 그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친구였으며 아내이자 엄마였다. 서울예대 동문인 류승룡, 김명민, 이종혁, 김수로 등이 주인공을 맡아 활약하던 때, 라미란은 연극 무대에 오르며 1년에 20만원을 버는 시간을 견뎠다. 결혼과 출산으로 2년간 무대를 떠난 뒤 단절된 경력을 잇기 위해 직접 제작사에 찾아가 프로필을 돌렸고, 돌쯤 된 아이를 안고서 오디션을 전전했다. 라미란의 첫 영화는 데뷔 10년 만에 찍은 ‘친절한 금자씨’였다. 성적 학대를 당하던 중 자신을 구해준 금자(이영애)의 복수를 돕는 감방 동기 오수희로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지만, 그는 다시 무명(無名)으로 채워진 10년을 보냈다. ‘괴물’의 ‘발동동 아줌마’, ‘헬로우 고스트’에서 차태현을 훔쳐보는 ‘옆집 아줌마', 심지어 ‘소원’으로 청룡영화제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도 그의 이름은 ‘영석모(母)’였다. MBC ‘라디오스타’의 ‘거지, 내시, 몸종 그리고 변태’ 특집에 출연했을 때는 ‘몸종 전담 배우’로 소개됐다. 당시 라미란은 "저희 같은 사람들은 많이 나오면 (관객들이) 불편해하시는 것 같다"라며 출연 분량이 적은 이유를 설명했지만, 정작 '많이 나와서 안 된 작품이 뭐냐'는 MC의 물음에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많이 나와 본 적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라미란은 이 시기에 대해 “영화를 시작한 이후의 10년은 이미 지난 10년을 겪었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었다(‘엘르’)”라고 말한다. 다작배우라 불리며 바쁘고 고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겹치지 않게, 질리지 않게, 다르게 보이게” 연구하고 노력했다. 그렇게 데뷔 20년차가 됐을 때, 그에게 tvN ‘응답하라 1988’이 찾아왔다. 남편과 뒤늦게 결혼식을 올리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자식을 바라보며 하릴없이 가슴을 치고, 완경 때문에 혼란을 겪기도 하는 ‘라미란’은 현실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누구나 될 수 있는, ‘아줌마’라는 단어 하나로는 전부 정의할 수 없는 중년 여성이었다. 그 결과 처음 방문하는 가게마다 “전에 왔었죠?”라며 반가운 인사를 들을 정도로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배우가 됐다. 그리고 “어느 작품이든 있는 듯 없는 듯 묻어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라며 가늘고 길게 연기하고 싶어 했던 배우는 영화의 주연을 맡으며 24년 만에 “뭐든 자신 있게 하기로” 결심했다. 주인공 라미란의 삶이, 이제 겨우 첫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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