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로 살기│① 왜 방송작가들 중에는 여자가 많을까

2019.05.07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고, 방탄소년단 정국을 좋아해서 같이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올해 수능시험을 치르는 고등학교 3학년 이하람(가명) 학생은 꿈이 예능 프로그램 작가다. 이하람 학생은 교내외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이력도 있다. 글을 쓰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와 함께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이유다. 이하람 학생에게 “왜 방송작가가 되면 연예인들하고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냐”라고 물었더니, 단순하고 확신에 찬 대답이 돌아왔다. “‘무한도전’ 보면 연예인들이 작가들이랑 서로 놀리는 게 나오잖아요.”

하지만 13년차 예능 프로그램 작가 A씨는 이하람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씁쓸하게 웃었다. A씨는 현재 한 케이블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는 6명이 넘는 작가가 있다. 13년차인 A씨는 이중 셋째 작가다.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있어서 방송작가를 양성하는 아카데미에도 다녔고, 여섯째 정도에 해당하는 막내 작가 생활도 오래 했다. 그러나 요즘은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이 일을 하면서 과연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을지 의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싶지만, 지금 메인 작가 자리에 오른 사람들 중에는 20년이 넘는 연차의 작가들이 많다. “일을 오래하다 보니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하는데, 이름도 알리기 어렵다는 사실때문에 힘들다."라는 그의 말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방송작가들이 당면한 현실이다.

모든 작가들이 MBC ‘무한도전’이나 KBS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비춰 유명인이 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을 알릴 기회조차 없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10년차 예능 프로그램 작가 B씨는 “연말 ‘연예대상’이 아니면 작가들은 자기 이름 한 번 불리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라며 “심지어 tvN 같은 곳은 예능 프로그램은 많은데 시상식도 없지 않냐”라고 말했다. 게다가 10년차 정도는 ‘연예대상’에서 작가로서 상을 받기도 어렵다. 보통 상을 받는 것은 메인 작가고, 나머지 작가들은 메인 작가 선배의 입에서 자신들의 이름이 나오기 전에는 객석에서 플래카드를 흔들거나 무대에 꽃다발을 들고 올라가는 역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어려움을 호소하는 예능 프로그램 작가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이에 대해 B씨는 “작가를 뽑을 때도 선배들이 일부러 여자만 뽑기도 한다.”라며 “여성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일과 잘 맞아서 그런 건가 싶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30년차 방송작가 C씨는 “예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시사 및 교양, 라디오 작가 등 대부분이 이런 상황”이라며 “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C씨는 “내가 처음에 작가 생활을 시작했던 1990년대만 해도 유명한 작가 선배들, 특히 원로 작가들은 대부분 남성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서 예능 프로그램 작가가 받는 대우와 관련이 있다. 1990년대 이후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장하면서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런데 예능 프로그램 작가는 지금도 PD가 작가들에게 책정한 기획비를 메인 작가부터 막내 작가까지 나눠 갖는 구조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사는 작가 수를 늘렸지만 그들에게 주는 돈은 그만큼 늘리지 않았다.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작가가 7~8명까지도 붙는다. 출연자도 많고 현장답사도 끊임없이 해야하며, 출연자들이 데리고 나오는 동물과 같이 세세하게 챙겨야 하는 아이템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여는 좀처럼 늘지 않는다. 작가 수가 많아지는 만큼 양질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도 줄어든다. 또한 작가들은 한 프로그램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프리랜서들이다.

예능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하는 여성 작가들은 작가들이 적은 돈으로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산업 구조를 지탱해왔다. C씨는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가장의 역할을 해야 하는 남성들은 작가 일을 오래 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성 역시 작가들도 혼자 가정을 꾸리거나 가족들을 부양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이는 남성 작가들은 작가를 그만 둔 뒤 여성에 비해 안정적이고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직업을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가에 대한 예능 프로그램의 처우가 크게 변하지 않는 사이, 그 자리는 열악한 처우와 작업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감내하는 다수의 여성 작가들로 채워졌다. 방송작가 A씨와 B씨는 ‘최악으로 꼽는 선배’는 “우리 때는 돈도 안 받고 일했으니까 참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반복되면서 방송작가들은 어느새 낮은 급여와 불안정한 고용 환경에 고통받는다. 그럼에도 이것을 작가로 성공하기 위한 당연한 과정처럼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문제를 겪는 작가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②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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