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로 살기│② 작가들은 넷플릭스로 간다

2019.05.07
방송사와 계약서를 써야 하는 경우, 일부 젊은 작가들은 3개월, 6개월이라는 계약 단위가 불안하기 때문에 6개월, 1년 등으로 늘려주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미 오래 전부터 자리를 잡고 메인 작가나 둘째 작가 자리 정도에 있는 선배들은 일자리와 임금이 어느 정도 보장되지만, 연차가 낮은 작가들은 함께 기획을 하고도 돈을 못 받는 경우도 많다.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 주는 불안은 현재 20대, 30대 초반의 작가들이 일을 시작하던 시절부터 늘 겪어왔던 일이기도 하다. 30대 A씨는 “그나마 우리는 원래 그러려니 하는 부분도 있지만, 20대 작가들 중에는 돈도 못 받고 다음 프로그램도 못 찾아서 괴로워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반대로 C씨는 “프리랜서인 게 좋다.”라며 방송작가들을 “정규직화 하는 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계약을 하거나 특정 방송사와 계약을 하면 그 기간 동안에는 내가 다른 프로그램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지만 프리랜서로 일하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의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C씨에게 중요한 것은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다. 작가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방송국에서 그들을 낮은 임금으로 쓸 생각을 할 게 아니라, 작가들만이 할 수 있는 업무가 있으니 그에 대해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면 된다는 의미다.

최근 방송작가들은 스스로 보다 상식적인 환경에서 일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2018년에는 SBS 시사 프로그램 ‘뉴스토리’의 작가들이 SBS에 부당 해고를 주장하며 “프로그램 개편에 따라 불가피하게 계약을 종료하게 됐다.”라고 주장하는 SBS 보도본부 측에 맞섰고,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들끼리 자신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나영석 PD와 여러 작품을 함께했고, tvN ‘응답하라’ 시리즈로 유명한 이우정 작가의 예가 관심을 모은다. 20년이 넘는 방송작가 경력을 지닌 D씨는 “이우정 작가 사단은 CJ에서 이우정 작가와 장기 계약을 하면서 안정적으로 작가들을 고용하고 임금을 지급하는 긍정적인 예”라고 말한다. C씨처럼 선배 작가의 입장에 있는 방송작가는 “메인 작가가 PD와 잘 싸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배가 누구인지에 따라 후배 작가들이 어떻게 대우를 받는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유명 방송작가의 경우에는 “작가들에게 일정 금액 이상을 주지 않으면 당신과 작품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면서 후배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작가 개개인의 힘만으로 현실을 바꾸기엔 한계가 있다. D씨는 “영향력 있는 메인 작가 아래에 오랫동안 있으면 장단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며 “요즘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은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계속 하다 보면 작가로서 글을 쓸 기회는 거의 없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여러 가지 보조 일만 하다가 그 팀에서 나오게 되면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수도 있다.”라고 했다. 메인 작가 한 명이 나서서 작가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작가 한 명이 미치는 영향력은 한정적이다. D씨의 우려처럼, 경력 10년이 넘어도 자신의 이름을 메인에 걸고 어떤 활동도 해보지 못한 작가들 중에는 유명 작가의 사단을 빠져나와서 자립할 길을 찾거나, 드라마 작가로 전향하는 것을 꿈꾸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 작가는 “유일하게 PD보다 작가의 영향력이 강해서 자기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PD와 작가가 작품을 함께 만들어도 기억되는 것은 PD의 이름이고, 10년 넘는 시간 동안 일한 작가의 이름을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워낙 방송작가가 많기 때문에 현재 방송업계의 상황에 대해서는 각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모두 “버텨야 한다.”라는 말에 공감하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작가들 스스로 여러 방법을 모색하며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지만, 제작사와 방송사가 변화를 보이기 전에는 여러 제약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방송작가들이 문제적 현실에 대한 해결책으로 넷플릭스를 찾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넷플릭스는 작가들 사이에서 작가의 이력보다 넷플릭스에 제출한 대본을 기준으로 제작 여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들 사이에서는 “방송국 공모전보다 넷플릭스에 작품을 보여주는 게 낫다”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넷플릭스에서 현재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오리지널 작품 ‘첫사랑은 처음이라서’는 이전에 드라마 메인 작가 경력이 없었던 김란 작가가 각본을 썼다. 연차로 돈의 단위가 달라지는 한국 방송 산업에서는 더 이상 머무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리는 이들이 생겼고, 그들은 웹드라마와 웹예능, 넷플릭스 등으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자신의 능력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들이 생기면서 젊은 작가들은 여기에 작게나마 기대를 걸 수 있게 됐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선배들처럼 묵묵히 버텨야한다.”라는 시각과 “싸워서 작가들의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입장 모두 현실적으로는 틀리지 않다. “방송작가 시스템의 관행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사는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바뀌지 않으면 작가들이 원하는 작은 것마저 얻을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내가 쓴 글로 나답게, 나의 이름을 남기고 사는 것. 지금 방송작가를 꿈꾸는 학생이 직업적으로 글을 쓰게 될 때 쯤에는, 이 당연한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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