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이 명예상을 받았다

2019.05.03
지난 4월 18일 제41회 모스크바국제영화제(이하 모스크바영화제)에서 한국의 한 영화감독이 ‘명예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세계 영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영화인에게 수여된다. 한국의 어느 감독이 이런 영예로운 상을 받았을까? 바로 김기덕 감독이다.

2017년 김기덕 감독은 ‘강요, 폭행, 강제추행치상’ 등의 혐의로 고소되었다. 촬영 현장에서 여배우를 폭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 혐의가 인정되어 벌금형이 내려졌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는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편, 2018년에는 MBC ‘피디수첩’의 ‘영화감독 김기덕, 거장의 민낯’과 ‘거장의 민낯, 그 후’를 통해 그의 촬영 현장에서벌어진 인권침해 및 성폭력 혐의들이 폭로되었다. 방송 이후 김기덕 감독은 ‘피디수첩’과 방송에서 증언한 여배우 두 명에 대해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검찰은 피해자의 증언과 방송의 내용을 허위 사실로 보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이렇게 법정 싸움이 계속되면서 김기덕 감독은 국내에서는 신작 ‘인간, 공간, 시간 그리고 인간’의 개봉이 취소되며 활동이 어려워졌지만, 해외에서는 보란 듯이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의 신작은 지난 3월 7일과 25일, 각각 제29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유바리영화제)와 제17회 피렌체한국영화제에 초대되어 상영되었다. 그에 이어 4월에는 모스크바영화제에서는 김기덕 감독을 심사위원장으로 선정했을 뿐 아니라 세계 영화에 기여한 공로로 명예상까지 수여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단체를 중심으로 김 감독의 이러한 해외 활동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는 유바리영화제에 김 감독의 영화 상영 취소를 요청했으며,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은 유바리영화제와 피렌체한국영화제의 김기덕 감독 영화 상영에 유감 성명을 발표하는 한편, 활동가들이 직접 유바리영화제를 방문하여 1인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기덕 감독은 지난 2월 민우회를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3월에는 ‘피디수첩’과 배우A 씨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을 향한 의혹과 비판을 억누르려 하고 있다.

‘미투’운동을 통해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피해자와 그 연대자들을 역으로 고소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미투’ 운동이 드러낸 성폭력 문제의 중요한 특징은 성폭력이 다양한 권력 관계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문제 제기하기가 어렵고, 문제 제기를 하더라도 법과 제도의 미비함 때문에 제대로 처벌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김기덕감독 사건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법적 싸움이 ‘미투’ 운동의 전부는 아니다. ‘미투' 운동은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성폭력 근절을 위해서 전 사회적인 노력, 우리 모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법과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또한, 법과 제도의 영역으로 포괄되지 않는 조직 및 공동체 문화를 점검하고 개선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영화계에서는 ‘미투' 운동 이전인 2016년에 시작된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로 영화인들이 직접 변화를 만들어왔다. 영화 촬영 전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하고, 조직 내 성폭력 및 성평등 관련 규정을 만드는 한편, 영화계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 발생 시 신고할 수 있는 기관도 설립했다. 최근 영화단체연대회의는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과 함께 김기덕 감독 사건에 대한 영화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의 영화인들은 더 이상 성폭력을 용인하지 않으며, 어떠한 폭력과 차별도 없는 영화 현장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2017년 타임지(The Times)는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사람들’(The Silence Breakers)을 선정했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미국의 영화계 및 정재계 등에서 벌어져 온 성폭력을 고발한 이들을 ‘침묵을 깬 사람들’로 명명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미투 운동의 시발점이 된 서지현 검사에게 2019년 제31회 ‘올해의 여성운동상’이 수여되었고, 미투 특별상이 제정되어 정치, 문화예술, 체육,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성폭력을 고발한 이들이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이들 또한 우리 사회의 ‘침묵을 깬 사람들’이다.

침묵은 이미 깨어졌다. 우리는 이미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듣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한국 영화사, 나아가 세계 영화사에 기록되고 기념되어야 할 인물은 누구일까? 누구의 목소리, 어떤 이야기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후대에 기억될까? 적어도, 영화를 통해 얻은 권력을 이용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명예롭게 적히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영화 산업 내 성폭력을 예방하고 근절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계속해서 ‘거장’의 칭호를 유지하고,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갈 길이 멀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침묵을 정답처럼 여기지 않는다. 그 변화의 시작에는 영화가 타인에게 가하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용기 내어 자신의 피해를 말한 피해자들이 있다. ‘미투’ 운동 이후의 영화와 영화 산업이 그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다면, 그 공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이들 ‘침묵을 깬 사람들’에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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