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엔드게임│④ 돌아올 수 없는 한 시대의 끝

2019.04.30
*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내용이 포함 돼 있습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 브루스 배너(마크 러팔로), 나타샤 로마노프(스칼렛 요한슨), 토르(크리스 햄스워스), 클린트 바튼(제레미 레너)이 모여 시작된 슈퍼 히어로 모임, 어벤져스 그들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전작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인피니티 스톤을 모두 모아 ‘핑거스냅’으로 우주의 생명체 절반을 없앤 타노스(조슈 브롤린)는 이야기의 한 끝으로 치워진다. 토르가 초반에 현재의 타노스를 죽이면서 어벤져스와 감정적으로 깊게 얽혀있던 타노스는 사라진다. 대신 등장한 과거의 타노스는 어벤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모아서 자신이 빼앗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심점이었다. 반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타노스는 도입부에 어벤져스의 목표를 끌어내고, 마지막에 다시 방해하는 장애물 정도다. 나머지 시간은 어벤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찾는 과정으로 채워진다.

어벤져스가 인피니티 스톤을 찾기 위해 하는 시간 여행은 이 작품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시간 여행을 통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중요한 사건이 재현된다. 토니 스타크, 토르, 스티브 로저스 등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이들과 재회할 기회를 얻는다. 오랫동안 쌓였던 갈등, 그리움, 또는 ‘떡밥’으로 불렸던 것들이 이 작품을 통해 해소된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이야기의 흐름상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속편이다. 하지만 MCU를 제작하는 마블 스튜디오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MCU의 지난 11년에 대한 총결산이자 요약편으로 활용한다. 타노스는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역할을 할 뿐, 실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어벤져스를 중심에 놓은 MCU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정리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식 자체가 MCU 각각의 작품에서 하던 이야기들의 반복이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슈퍼히어로, 또는 그의 조력자가 모인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슬픔을 갖고 있던 슈퍼 히어로들은 서로를 설득하고, 결국 화해와 단결의 과정을 거친다. 나타샤 로마노프가 클린트 바튼을, 로켓(브래들리 쿠퍼)과 브루스 배너가 토르를, 그리고 어벤져스의 다른 멤버들이 토니 스타크를 설득한다. 설득당한 슈퍼히어로는 갈등을 거쳐 마음을 바꾼다. 시간 여행 또한 어벤져스 멤버 각각의 이야기를 푸느라 같은 구성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그 결과 인물마다 캐릭터의 내면을 설명할 시간은 줄어든다. 우주에서 죽기 직전 구조된 뒤 토니 스타크가 스티브 로저스를 만난 직후 분노하는 이유도, 그가 페퍼 포츠(기네스 펠트로)와 딸과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 하고 위험한 임무에 뛰어들 결심을 한 뒤 스티브 로저스와 화해하는 과정도 각각 한 씬 정도로 설명된다. 그럼에도 관객이 토니 스타크의 감정에 몰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관객이 MCU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 토니 스타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개봉 첫 주차에 이미 12억 달러를 넘어서는 기록적인 흥행성적을 냈다. MCU의 모든 작품을 보지 않은 사람도 MCU의 한 세대를 마무리하는 이 작품은 볼 가능성이 높다. 미국에서는 지난 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어 ‘캡틴 마블’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했다. 이런 효과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후 MCU의 첫 작품인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상업적으로는 정확한 선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 세계의 관객들이 관심을 갖는 영화가 개봉되는 순간, 마블 스튜디오는 MCU의 역사를, 그들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그들의 슈퍼히어로를 소개한다.

그러나 마블 스튜디오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다루는 태도는 관객에게 MCU가 마케팅을 고려한 세계라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 같은 인기 캐릭터는 이 요약편 같은 작품에서도 자신만의 서사를 완성한다. 반면 ‘인크레더블 헐크’ 이후 단독 작품이 없었던 브루스 배너는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 발 떨어진 조력자의 역할에 그친다. ‘캡틴 마블’, ‘스파이더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 앞으로의 MCU에서 중요할 역할을 할 캐릭터들이 타노스와의 마지막 대결에서 한 번씩 활약을 펼친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씩 얼굴을 선보일 뿐,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동안 MCU의 작품들이 마케팅적인 고려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몰입시켰다면,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작품 안에서도 그들의 미래를 위한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관객과 함께 시간을 보낸 MCU의 캐릭터 전체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힘과 어떻게든 싸워 나가며 각자의 선택을 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선택도, 액션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관객을 납득시켰다.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가 연인 비전(폴 베타니)을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는 것은 영화 전체의 중요한 갈등으로 다뤄졌다. 나타샤 로마노프를 비롯한 여성 슈퍼히어로들이 타노스에 맞서 싸우기 위해 힘을 합치는 과정은 혼란스러운 전투 도중에 자연스럽게 벌어진 사건으로 묘사됐다.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는 MCU가 지난 세월 동안 축적한 캐릭터의 역사를 통해 새로운 고민과 새로운 매력을 전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여성 슈퍼히어로들은 갑자기 어디선가 모여 싸울 준비를 한다. 이 순간은 마치 역사를 기록한 거대한 벽화처럼 인상적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그들이 왜, 어떻게 모였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차라리 앞으로 마블의 여성 슈퍼히어로들의 활약을 봐달라는 광고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장면에는 정작 마블 스튜디오의 가장 대표적인 여성 슈퍼히어로, 나타샤 로마노프가 빠져 있다. 그는 시간 여행 도중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가 동료들을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는 캐릭터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가 목숨을 던질 만큼 어벤져스를 아낀다는 사실은 지난 11년 동안 구체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지난 11년 동안 토니 스타크, 스티브 로저스, 브루스 배너, 클린트 바튼이 위태로울 때 돕는 역할을 하느라 바빴다.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혼자 내면을 털어놓을 시간을 갖지 못했다. 나타샤 로마노프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제물처럼 던져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자의 역사와 능력과 매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거대한 이벤트를 통해 보다 깊고 다양한 내면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동안 쌓은 것들을 이 한 편을 위해 소비한다. 토르가 ‘핑거스냅’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폐인처럼 지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이 그저 술과 게임에 빠진 우스꽝스러운 캐릭터일 필요는 없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캐릭터의 변화를 가장 빠르고 손쉬운 방식으로 건드리고, 다음 캐릭터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인간의 감정과 기억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마치 관객에게 보내는 호소문처럼 보인다. 네뷸라(카렌 길런)는 시간 여행을 통해 현재로 온 과거의 자신을 죽인다. 지금과 달리 아버지 타노스(조슈 브롤린)를 충실히 따르던 과거의 그는 설득할 수 없는 존재였고, 서로의 생명이 걸린 상황에서 현재의 네뷸라는 과거의 네뷸라를 죽인다. 현재는 과거를 고칠 수 없다. 과거의 자신이라 할지라도 그렇다. 현재의 타노스가 없앤 인피니티 스톤을 찾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스티브 로저스(크리스 에반스)도 과거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하고 싸웠다. 역시 과거로 돌아간 토르(크리스 햄스워스)는 어머니(르네 루소)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브루스 배너는 시간 여행에 대해 설명하면서 과거를 바꾼다고 현재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확정하기도 한다. 과거에서 온 타노스는 그 이유를 말해준다. 원래 생명체의 절반을 없애려던 그는, 계획을 바꿔 원자 단위부터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려 한다. 살아남은 생명체들은 과거의 기억과 감정으로 인해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온 너구리가 아스가르드에서 온 신과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 MCU에서도 과거에 대한 기억과 감정은 바꿀 수 없다. 이것은 관객들도 마찬가지다. MCU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동안 그들과 MCU의 슈퍼히어로 사이에 쌓인 감정과 기억은 사라질 수 없다. 관객들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 볼 수 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MCU 역사상 마케팅적인 고려를 작품에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 동시에, 관객에게 슈퍼히어로에 대한 진실한 감정과 추억을 끌어내려 노력한다.

토니 스타크의 죽음은 모순처럼 보이는 이 두 가지 요소를 가까스로 봉합한다. MCU를 꾸준히 따라온 팬에게 “I’m Iron man”으로 MCU의 역사를 열었던 그가 “I’m Iron man”으로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격과 슬픔을 준다. 여기에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다른 캐릭터와 달리 토니 스타크가 5년 동안 페퍼 포츠(기네스 팰트로)와 딸과 함게 행복하게 지내는 삶을 부여한다. 지난 11년 동안 제어할 수 없는 충동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도 했던 그가 인생의 안정을 찾는 순간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존 슬래터리)가 말한 “대의”를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그 전에는 시간 여행을 통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만나 하고 싶은 말을 전하기도 했다. 지난 11년 동안 전세계 관객이 인생을 지켜보고, 내면을 이해한 캐릭터가 가장 행복했으면 하는 순간에 떠났다. 토니 스타크의 죽음은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담긴 그 모든 마케팅적인 고려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감정적인 여운을 갖고 극장을 나서도록 만든다. 한편에서는 스티브 로저스가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떠났다. 현재가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이 깨졌다고도 할 수 있지만, 다수의 관객이 스티브 로저스에게 주고 싶은 결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앞으로 MCU의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관객에게 이 순간의 감정과 기억은 남을 것이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그들의 마케팅적인 고려를 실현시키면서 관객이 지난 11년의 끝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감정을 맞추려 노력한다. 마블 스튜디오가 11년만에 단 한 번, 어쩌면 슈퍼히어로 역사상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방법을 쓴 순간이다. 하워드 스타크의 표현처럼 “사익”을 쫓은 것만은 아니지만, “대의”를 따른 것도 아니다.

토니 스타크와 함께, ‘어벤져스: 엔드게임’은 그 스스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대의 장례식이 됐다. 관객들이 슈퍼히어로 영화의 한 세대를 온전히 경험한 시대의 마지막 작품에서, 마블 스튜디오는 다음 세대의 슈퍼히어로들을 위한 거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새로운 슈퍼히어로가 보다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갈 기반도 마련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벤져스’로 대표되는 마블 스튜디오의 블록버스터 시리즈를 재정의한다. 이제 이 작품들은 끝을 향해 달려가는 거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MCU의 수많은 캐릭터와 서사를 정리하고 확장시키기 위한 정기적인 이벤트가 됐다. 앞으로 누가 죽고, 누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놀랍지 않다. 이 새로운 시대에 슈퍼히어로는 어떻게 관객에게 진실된 감정과 추억들을 만들게 될까.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찬사,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가 함께 교차하는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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