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 김윤석 감독의 재능

2019.04.26
* 영화 ‘미성년’의 내용이 있습니다.

‘미성년’은 연출자의 마인드로 현장에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진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이다. 때문에 그의 본격적인 첫 연출작을 주시하는 이들이 많았다. 결과는 기분 좋은 뒤통수였다. 왠지 잘할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준수할 줄은 몰랐고, 그동안 김윤석이 영화에서 보여준 캐릭터와 정반대 방식으로 훌륭했기 때문이다. ‘미성년’의 전문가 별점(‘씨네21’ 기준)은 10점 만점에 7.2점으로, 올해 개봉한 한국영화 중 홍상수 감독의 ‘강변호텔’ 다음으로 높다.

물론 톱배우가 감독 데뷔를 할 때 출발점이 다른 것은 감안해야 한다. 브래들리 쿠퍼가 록 페스티벌과 그래미상 현장,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스튜디오에서 감독 데뷔작 ‘스타 이즈본’을 촬영한 것만큼의 이점은 아닐지라도, 그동안 그가 쌓아온 입지는 좋은 스탭진을 꾸리는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베테랑 감독들이 시나리오를 꼼꼼히 모니터링하는 일은 다른 신인에게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출발점이 다른 것을 감안해도 김윤석은 데뷔작에서 기성 감독도 거의 하지 않은 일을 했다. ‘완벽한 타인’과 JTBC ‘SKY 캐슬’로 염정아가 업계에서 재조명 되기 전 시나리오를 건넸고, 충무로에 눈도장을 찍은 지 막 1년 남짓 됐던 시점의 김소진에게 첫 주연을 맡겼으며, 김혜준과 박세진 두 신인을 발굴해 온전히 그들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네 여성 배우에게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볼 수 없는 연기를 하게 만들었다. 영주(염정아)는 남편 대원(김윤석)이 미희(김소진)와 바람을 피우고 아기까지 생긴 것을 알자마자, 그 여자의 조산에 죄책감을 느낀다. 화려한 스타일링 대신 거의 민낯으로 등장해 주름 하나, 떨림 하나까지 더욱 미세하게 포착되는 염정아의 얼굴은 비참함과 죄책감, 분노가 복잡하게 얽힌 감정을 담아낸다. 일견 나잇값 못하는 철부지로 비추어질 수 있는 미희는 윤아(박세진)에게 아빠의 성이 아닌 자신의 성을 따르게 한 엄마다. 모범생이었던 영주의 딸 주리는 사건에 휘말린 후 학원을, 심지어 시험에도 불참하지만 윤아가 아기를 대신 키울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학교의 룰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윤아는 사실 누구보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다. 이들 캐릭터는 영주가 덕향오리집을 찾아갈 때 어딘가 위축된 느낌의 발 클로즈업으로, 가게 주인으로서 살가우면서 단호한 태도로 영주를 처음 대면하던 미희의 태도로, 딸기와 초코 우유중 친구가 먼저 고른 후 남는 것을 마시는 주리의 습성으로, 책임감을 상징하는 ‘콘돔’을 던지는 윤아의 모습으로 곳곳에 섬세한 디테일을 더한다. 여기에 김희원, 염혜란, 정이랑, 이희준, 이정은 등 다채로운 조연진들이 가세해, 매번 등장하는 신을 완벽히 훔치고 연기의 스트라이크를 친다.

더불어 감독이 직접 연기하는 캐릭터에 변명의 시간을 쓸데없이 할애하지 않은 점도 특기할 만하다. 사건은 대원의 외도에서 시작되지만, 왜 그가 바람을 피우게 됐고 민낯이 까발려진 뒤 어떤 심정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네 여성에게 포커스를 맞춘 극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주리가 “나 이제 아빠 딸 안한다”라고 선언한 뒤에는 아예 극에서 대원이 사라진다. 영화에서 가장 웃긴, 에스컬레이터에서 시작되는 추격 신 정도를 제외하면 김윤석의 연기가 주목받을 순간도 만들지 않았다. 중년 남성의 토로를 들어주고 그들을 안타까워하던 숱한 작품이 안기던 피로감이 ‘미성년’에는 완벽히 빠져있다. 사실 ‘미성년’에서 감독이 대원 캐릭터를 취급하는 방식은 첫 장면, 캐릭터를 소개할 때부터 암시됐다. 아버지의 불륜 행각을 확인하기 위해 덕향오리집을 훔쳐보는 주리의 옆모습으로 시작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그와 눈이 마주친 미희의 의아한 표정을 포착한다. 놀라서 넘어진 주리의 눈에는 윤아가 들어온다. 이 와중에 가장 카메라가 무관심한 것은 대원의 얼굴이다. 특유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살짝 나온 그가 김윤석이 맞는지도 확신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마지막 엔딩 크레딧은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 배우들의 이름을 차례로 띄운 후 마지막에 비로소 ‘감독 김윤석’을소개한다.

“어른들이 오히려 성숙하지 못하고, 아이들이 어른다움을 보여준다”라는 로그라인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미성년’은 이야기적으로 큰 야심이 없는, 간단히 말해 소품 같은 작품이다. 대신 캐릭터 하나하나를 파고드는 집요함과 디테일로 승부했고, 김윤석이 그간 출연한 영화들과 달리 철저하게 여성에게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다. 이것은 한국 영화계에서, 특히 남자 감독에게 거의 없던 종류의 재능이다. 그래서 김윤석의 다음 작품이 벌써 궁금하다. ‘미성년’에서 확인한 그의 강점이 감독 김윤석만의 인장이 될지, 혹은 대대적인 변화를 꾀해 또 다른 감탄이나 실망을 할지, 그 실체가 궁금하고 확인하고 싶다. 김윤석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봐도 여러 모로 흥미로운, 단언컨대 올해의 신인 감독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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