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페르소나’

2019.04.22
* 영화 ‘페르소나’의 내용이 있습니다.
네 명의 감독이 아이유라는 한 여자에 대해 말한다. 페르소나란 감독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는 아이코닉한 배우를 뜻하지만, 영화 ‘페르소나’에서는 조금 다르게 쓰였다. 네 명의 감독이 각자가 포착한 아이유의 페르소나를 다뤘기 때문이다. 이 기획이 가능한 것은 K-POP신에서, 그리고 대중문화신에서 아이유가 쌓아온 특수하고 두터운 이미지 덕이다. 소녀적 이미지와 자신만의 목소리와 뚜렷한 에고를 가진 뮤지션을 한 궤에 담는 데 익숙하지 못했던 사회는 때때로 ‘영악한’ 같은 수사로 그를 호명했고, 아이유는 스스로 작사한 ‘스물셋’, ‘팔레트’, ‘삐삐’의 가사를 빌어 “뭐게요, 맞춰봐요.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아도 돼요?”라고 물으며 ‘아이유’라는 표상과 갭 전체를 자신의 것으로 끌어왔다. 연출자에겐 풍부하고 매력적인 텍스트가 아닐 수 없다. 아이유는 당신은 나를 어떻게 봤냐며 감독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묻는다.

‘러브세트’의 이유
이경미 감독의 ‘러브세트’는 아이유와 배두나가 테니스 코트에서 한 판 붙는 이야기다. 영화 속 아이유는 아빠와 결혼하기로 한 선생 두나가 신경 쓰인다. 아빠와 모종의 성애적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아이유는 결혼을 걸고 두나와 승부를 벌인다. 탄탄하고 강인한 성인 여성의 육체와 그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연약한 소녀의 몸이 대비된다. 두나가 공을 치면, 아이유는 간신히 받아낸다. 영화는 테니스 경기 묘사에 대부분의 러닝타임을 할애하는데, 당연하게도 이건 섹스의 은유다. 사운드는 습기 찬 목욕탕 안에서 울리는 듯 야릇하고, 카메라는 에로틱한 시선으로 두나의 탄탄한 허벅지와 아이유의 가냘픈 종아리를 대비한다. 그건 카메라의 시선일 수도 있지만, 아이유와 두나가 서로를 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아빠가 좋아서 두나에게 애원한 줄 알았더니 반대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두나는 아이유의 손가락을 쓸며 명백한 시그널을 준다. 명확해진다. 이 영화 내내 아이유가 온통 신경을 쓴 건 아빠가 아닌 두나 아니던가?

‘러브세트’ 속 아이유가 두나를 향해 보이는 경계심과 적개심은 성인 여자의 강인한 몸과 마음에 대한 선망이다. 소년이 아버지를 동경하는 동시에 넘어서야 할 장애물로 생각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말이다. 여기에 이 영화의 재미가 있다. 여태껏 수많은 텍스트가 소년이 아버지가 되길 원하는 동시에 아버지를 파괴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그려냈듯, 소녀가 성인 여성에게 가지는 맹렬한 선망과 적개심을 그려낸 이야기라는 점이다. ‘러브세트’가 여성을 성애적으로 대상화한다는 지적이 많고 거기서 자유로울 수 없는 지점이 있지만, 어떤 숏들은 성애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한, 다른 여성의 몸을 의식하기 시작한 소녀의 과장된 시각으로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때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이야기도 필요하다. ‘홍당무’와 ‘비밀은 없다’로 특이하고 남다른 여성들을 보여줬던 이경미 감독은 여성의 지질하고 추한 점과 성애, 성욕까지 들여다보는 감독이었다는 점을 상기하자. ‘러브세트’에서 발견되는 아이유는 여태까지 아이유가 쌓아온 소녀 이미지에 대한 다른 접근이다. “네 머리 위에서 놀겠다”던 소녀는 자기 머리 위에서 노는 성인 여성을 만나 씩씩댄다. 배두나와 아이유의 앙상블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썩지 않고 오래오래’의 아이유
임필성 감독의 ‘썩지 않고 오래오래’는 팜므파탈로서의 아이유를 그린다. ‘은’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가지고 놀고, 자신을 가지려는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고, 종국엔 파멸시키는 마녀 그 자체다.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정우’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이 훨씬 우월하고 아름답다는 따분한 지론을 늘어놓고 마녀인 은은 거의 하품할 듯한 표정으로 그를 지켜본다. 남자를 비꼬는 뉘앙스도 있지만, 그렇다고 ‘은’이 복합적이고 이입할 수 있을 만한 캐릭터도 아니다. 히피 펌에 로브를 걸치고 팔짱을 낀 채 나른하게 알쏭달쏭한 말을 뱉는 은은, 남자의 시선으로 포착된 매력적이고 정복할 수 없는 대상일 뿐이다. 결국 이건 치명적인 팜므파탈 여성에 대해 기원 후 해가 뜨고 진 횟수만큼 반복되어온 이야기다. 은과의 대화 중 정우가 상처를 받을 때마다 혹은 자존감을 회복할 때마다 하얀 방에서 목이 잘렸다가 붙거나 물구나무를 서는 장면은 코믹하지만 내면의 공간을 연극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그다지 기발한 장치는 아니다.

‘썩지 않고 오래오래’는 아이유의 노래 ‘잼잼’의 가사에서 따온 것이다. “설탕이 필요해, 난 몸에 나쁜 게 좀 필요해. 뜨듯미지근한 건 그만해. 솔직하겠다고? 그게 뭐라고. (중략) 입에 발린 말을 해, 예쁘게. 끈적끈적 절여서 보관할게. 썩지 않게 아주 오래.” 나 혼자 푹 빠져 있는, 차갑고 시니컬한 상대는 단칼에 내 목을 딸 수도 있고 단숨에 구름 위에도 앉힐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다. 더군다나 이런 가사를 쓰는 자의식 강한 여성이라면 남성을 더더욱 무력하게 할 것이다. 아이유를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당돌한”, “독해 보이는”, “여우 같은” 같은 말로 두려워하는 어떤 남성들이 보는 아이유의 일면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그 레퍼토리가 새롭거나 다시 볼 구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남성의 팜므파탈에 대한 매혹과 공포는 그 역사가 길고, 마녀로서의 아이유 역시 이미 대중들이 오래도록 즐겨온 기믹이기 때문이다.

‘키스가 죄’의 아이유
전고운 감독의 ‘키스가 죄’에서는 못 보던 아이유가 언뜻 보인다. ‘한나’는 친구 ‘혜복’이 키스 마크를 남겨왔다는 이유로 집에 갇히자 복수할 계획을 짠다. 한나는 혜복에게 키스한 남자애에 대해 묻는다. “근데 개(걔)는 목에 키스마크가 남아도 학교 나가겠지?” “걔한텐 그게 자랑이지.” “안 되겠다. 복수하자.” “누구한테?” “너네 아빠한테.” 그들의 세계에선 같이 키스했는데 그것이 자랑이 되는 남자애나, 딸을 가둬두는 아버지나 같은 대상으로 묶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복수를 감행한다. 비록 그것이 바닥에 참기름을 발라 아버지를 자빠뜨리게 할 복수라 해도 말이다. 가부장제에 대항하는 사랑스럽고 통쾌한 이야기다. 어떤 서사에서든 대체로 보호받는 쪽이던 아이유가 다른 여성을 보호하는 캐릭터를 맡은 점은 흥미롭다. 그리고 퍽 어울린다. 이 이야기에서 아쉬운 점은 지키는 존재와 보호받는 존재를 도식적으로 이분해 캐릭터가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인데, ‘아이유에 대한 영화’로 시작한 만큼 여기서 아이유에게 어떤 역할을 시키고 싶었던 건지는 확실히 알겠다. 전고운 감독이 잘 만들어내곤 하는 뻔뻔한 여성 캐릭터는 아이유에게 잘 맞는다. 어리숙한 친구 옆에서 어른 행세를 하며 쭈그린 채 담배를 어설프게 푹푹 피는 모습은 처음 보는 아이유의 얼굴이다. 혜복을 챙기면서도 툭툭 던지듯 담백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게 진짜 아이유의 말투는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아이유가 연기한 네 작품 중의 캐릭터 중 가장 살아있는 것 같은 캐릭터이기도 하다.

‘밤을 걷다’의 아이유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는 서정적인 스케치다. 남자의 꿈에 죽은 연인이 찾아와 마지막 밤 산책을 한다. 흑백 필름 같은 질감과 스위치가 켜지고 들어오듯 조명과 그림자를 극적으로 사용한 고아한 영상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서 오가는 건 죽음과 삶에 대한 선문답이다. 슬픔의 정조를 지닌 아포리즘 같은 대사들이 몇 번 빙빙 돈다. “꿈도 죽음도 정처가 없네. (중략) 우리는 여기에 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다 사라지고 밤뿐이네. 안녕.” 예쁜 영화지만, 이 팬시한 영화 속 아이유가 흥미롭지 않은 까닭은 ‘밤편지’의 아이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이유의 디스코그라피에서 큰 두 가지 줄기를 찾는다면 ‘삐삐’나 ‘스물셋’ 같은 도발적인 트랙과 ‘밤편지’, ‘마음’ 같은 서정적인 무드의 차분한 트랙이다. 전자가 ‘썩지 않고 오래오래’에 있다면, 후자는 ‘밤을 걷다’에 있다. 아이유가 기존에 익히 보여준 이미지를 비틀거나 뒤집거나 새로운 걸 찾지 않고 그대로 가져왔더니 잘 맞았다. 정갈하다. 하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다.

뮤지션 혹은 아이돌 출신 연기자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이미지를 연장해서 쓰게 된다. 배역과 연기로만 자신을 보일 수 있는 배우와는 달리 그들은 대중과의 접점이 더 많고, 자기 자신 자체를 셀링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유는 ‘나의 아저씨’, ‘프로듀사’ 등에서도 기존에 음악으로 보여온 결과 닿은 ‘외강내유’형의 캐릭터를 연기했다. 영화 '페르소나'는 네 명의 감독이 자기만의 시선으로 아이유를 해석하는 흥미로운 기획이지만, 어떤 시선들은 안이하다. 아이유 뮤직비디오의 연장 같다. 두 남성 감독의 영화가 기존 아이유의 악녀, 성녀 이미지를 큰 고민 없이 이식했다면 두 여성 감독의 영화는 더 힘 있고 새로움이 있지만, 대체로는 아이유가 영화 속이 아니라 위에 있는 듯한 인상이다. 감독들이 아이유를 빌려온 게 아니라 아이유가 감독들을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자신을 반복한다. 물론 기존의 이미지가 강할수록 그의 ‘페르소나’를 펼쳐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목록

SPECIAL

image 장성규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