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독일 기업의 성차별 광고

2019.04.15
©HORNBACH 광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 중 2030 여성 행복도가 가장 낮다는 연구에 관한 기사를 봤다. 이 연구에 대해 최인철 행복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여전히 위계질서와 가부장적인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에 젊은 여성의 부담이 더욱 큰 것 같다”라고 분석했단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에 사는 여성들은 어떨까. 적어도 한국에서의 삶보다는 행복하다고 느낄까. 물론 행복이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는 주관적인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공간이 나를 지탱해주리라는 믿음과 믿음을 기반으로 세우는 미래에 대한 계획, 그것이 나에게 주는 안정감은 행복의 기본 요건이 아닐까. 믿었던 것, 기대했던 것이 발등을 찍을 때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배신감은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노력’만 하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허들을 넘지 못할 때, 이제까지 달려온 길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것과 같은 환멸감이 찾아온다. 환멸감과 행복은 다소 거리가 있는 단어다.

대학을 졸업한 후 나는 약 2년 간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했다. 독일에 가자 곳곳에서 이미 한국을 떠나온 한국인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독일에서 만난 대학 남자 선배 한 명이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래도 여자들은 관심이라도 받지, 한국 남자들은 여기서 살기 너무 힘들어.” 여기서 관심이란 무엇이었을까. 집 앞 슈퍼에만 가도 니하오를 외치며 찡긋거리는 백인 남성들을 말하는 걸까, 버스 정류장에 차를 세우고 타라고 휘파람을 불던 백인 남성들을 말하는 걸까.

독일에 온 지 일주일 됐다던 한 이십대 여성도 잊혀지지 않는다. “적어도 한국보다는 나을 줄 알았는데 위 아래로 훑어보며 휘파람을 부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라고 말하며 실망스런 표정을 내비치던 그를 말이다. 독일에서 살면서 난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 친절하게 대한다는 것이 그 사람을 존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단순히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얼마 전 독일의 DIY 업체 호른바흐에서 광고를 공개한 후 사람들은 분노를 표했다. 어떠한 문제의식도 없이 아시안 여성을 성적 이미지로만 소비하는 내용의 영상을 보며, 그동안 독일 안에서의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느껴왔던 이들이 ‘#나도호른바흐당했다’는 해시태그 운동을 펼쳤다. 그 해시태그에 펼쳐진 경험들을 읽으며 내가 잠시 살았던 독일에서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독일이나 한국이나 어디건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존재한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이 글을 끝맺음해야 할까.

호른바흐 사건 이후 독일에 거주하는 한 한국인을 중심으로 SNS 운동이 퍼졌고, 한국문화원에서도 호른바흐 측에 광고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달라며 항의했다. 그리고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까지 이 사건을 알게 되면서 여러 한국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기사로 다뤘다. 한국 내에서 벌어지던 성차별적 사건에 대한 그 어떤 대응보다도 즉각적이었다. 물론 당연히 그 광고는 성차별적이며 인종차별적인 광고다. 하지만 ‘당연히 이건 성차별이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과 언론의 태도를 보며 다소 낯선 기분을 느꼈다. 한국에 만연한 여성을 성적으로만 표현하는 광고들, 그 수많은 광고들을 보면서 그들은 성적 대상화의 문제점을 느꼈을까. 흑인남성을 ‘흑형’으로 백인여성을 ‘금발미녀’로 표현하는 수많은 콘텐츠를 보며 인종차별의 문제점을 느꼈을까. 굳이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적인 상황에서 그건 차별이 아니라며 기계적 평등을 주장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 광고를 보고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며 단번에 분노를 표하는 것일까.

같은 사안에 분노를 느끼더라도 그 분노에 대한 이해도가 같을 수는 없다. 이렇게 빠르게 문제점을 읽어내는 현실을 바라보며 몇 년 사이에 인권 감수성이 급속도로 증가했다고 속 편하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역시나 호른바흐 관련 기사에 달린 여러 댓글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광고에 등장한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며 동양인들 엿 먹이려고 작정한 광고 같다는 댓글에서부터 일본 여성이니 한국과는 관계없다는 댓글까지 다양하다. 분노의 온도와 방향은 같지 않다. 그 사실을 되새기며 난 누구와 함께 손을 잡고 싸울 것인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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