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클레프 “사람들이 내 음악을 듣고 찔렸으면 좋겠다”

2019.04.11
“아무것도 없는 휴학생이었는데 무모한 도전으로 앨범까지 만들게 됐다.” 2018년 8월, 제이클레프(Jclef)의 첫 정규앨범 ‘flaw, flaw’는 손님이 자주 오지 않는 1인 카페에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는 일상 속에서, 지하 작업실에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시간에 대해 “재밌고 즐거웠다”라고 말하는 그는 지난 2월 ‘flaw, flaw’로 제1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알앤비&소울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우울한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고, 세상의 각박함에는 서늘한 시선을 보내는 그의 음악과 삶에 대하여.

요즘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제이클레프
: 옥탑방을 하나 얻었다. 원래 지하 작업실에서 살았는데, 소원이 하나 있다면 샤워하고 바로 나오고 싶었다. (웃음) 이전엔 공용 화장실을 써서 옷을 입고 나와야 했는데 그러면 축축하지 않나.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그런 소소한 재미들에 젖어서 지내고 있다.

음악 활동 중에도 학교를 다니고, 수학이나 과학을 가르치거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다양한 일을 병행했다.
제이클레프
: 작년 12월부터 여러 일정으로 바빠져서 가르치는 일을 정리했고,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한 상태다. ‘flaw, flaw’를 만들 때는 많으면 세 가지 일까지 병행했다. 1인 카페에서 일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이런저런 외주 작업도 했다. 체력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집중력 면에서는 더 효율적이다. 작업실 안에만 24시간 박혀서 무슨 내용을 쓸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소음이 있는 곳에서 일을 하면서 노래를 구상할 때 더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 또 계속 음악만 하기보다 학교가 끝나고 바로 뛰어가서 작업할 때 더 즐거웠다.

2016년 2월 ‘HIPHOPLE’에 믹스테이프 ‘Canyon’을 소개하면서 ‘여러 요인들로 인해 깎여져 버렸지만 그럼에도 제 삶은 커다란 장관임을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반면 정규앨범 ‘flaw, flaw’에서는 흠과 결점에 대해서 말한다.
제이클레프
: 믹스테이프와 정규앨범의 결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Canyon’을 만들 때는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이런 것들도 그냥 하나의 장관으로 남았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때가 빨리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flaw, flaw’는 ‘Canyon’을 만든 이후 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곡이다. 원래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생각하는 나이스한 사람이었다면 스물 다섯, 스물 여섯 살을 거치면서 세상의 불편한 점들이 눈에 보이고 반감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시선을 재밌게 담고 싶었다. 잔소리하는 건 아무도 안 좋아하니까. 그런 생각들을 웃기게 표현해서 듣는 사람이 찔렸으면 했다.

의도가 그랬다면 왜 ‘flaw, flaw’의 타이틀곡이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인지 알겠다.
제이클레프
: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은 내가 세상을 보는 시선을 가장 많이 반영한 곡이다.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에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영원히 산다면 사랑이나 꿈, 욕망 같은 것들이 하나도 의미가 없다는 생각도 담았다. 인간은 무언가가 반복되거나 오랫동안 당연하게 가지고 있으면 질리도록 설계돼 있다고 본다. 또 신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나 세상에 대해서 내가 가장 미워하는 부분도 담았다. ‘덩치를 가진 이들은 약한 자의 소란 앞에 웃음이 터지지’ 이런 가사가 있는데, 이처럼 방관하는 시선은 불편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공감을 하겠어' 하는 그런 마음을 표현했다.

앨범의 첫 번째 수록곡 ‘FLAW, FLAW’가 그 시선에 대한 이야기 같다. ’당신의 소식은 내 칼로리를 쓰고 내 기분을 망치고’. 왜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로 앨범이 시작될까?
제이클레프
: ’flaw, flaw’는 달갑지 않은 세상의 소식들을 피해 떠나는 여정의 준비물을 챙기는 곡이다. 그래서 첫 번째 트랙이기도 하고. ‘Damaged antenna making dirty sounds’나 ‘spider web screen’ 같은 가사로 노래가 시작하는데, 고장난 안테나를 가진 라디오나 금이 가서 거미줄 같은 액정처럼 흠이 있는 물건들만 챙겨서 떠나는 내용이다. 항상 SNS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편이다. 엄청나게 많은 곳을 탐방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집순이’라서 앨범 만들 때는 일하는 곳에서 시간을 많이 보낸다. 나의 세상이라고 해봤자 핸드폰 속이다. 그래서 SNS를 보면서 많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기존 힙합을 생각할 때 흔히 떠오르는 스웨그(Swag)나 플렉스(Flex)와는 결이 다른 주제다. 본인이 가진 음악의 철학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가.
제이클레프
: 그간 힙합에서 많이 써왔던 소재들이 있지 않나. 돈 최고. 우리 최고. 나머지는 다 바보. 이런 가사들을 안 써봤던 게 아니다. 썼는데 안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고 굉장히 불편했다. 만약 나에게 그런 바이브가 있었다면 즐거웠을 텐데, 거짓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매우 자조적인 사람인데, '그걸 속이면서까지 내가 잘나 보여야 하나?' 하는 괴로운 감정이 오랫동안 있었다. 그래서 그런 내용이 아닌 것들을 찾아서 듣고, 그렇지 않은 내용을 쓰려고 노력했다.

’flaw, flaw’에서 ‘보여주고 싶어하는’이라는 가사가 나오는 부분부터 코러스가 나오면서 보컬이 강조되고, ‘당신의 소식은 내 칼로리를 쓰고’라는 가사가 나올 때는 보컬에 변조가 들어가면서 회피하는 느낌을 준다. 가사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음악의 다른 부분들을 설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제이클레프
: 앨범을 만들 때는 동물적으로 하는 편이고 이론도 잘 모른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만든 앨범이니까 비트적으로는 조금 미니멀하고, 루프 형식으로 많이 준비했다. 극적인 효과를 주고 싶다고 생각한 부분들은 프로듀서들과의 합을 통해서 만들었는데 너무 잘해주셨다. 혼자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한 사람의 목소리로 곡을 끝까지 채울 때 생기는 지루함을 탈피하기 위한 고민이 있다고 본다. 질문에서 말씀하신 부분들은 그런 측면에서 음악적인 설계이기는 하다.

앨범 전반적으로 훅이 없거나 기능이 약화된 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에 멜로디를 살짝 붙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이클레프
: 사실 훅을 재미없어 하는 편이다. 훅이 왜 중요한지는 알겠다. 다만 음악을 만들 때 보통 훅이 들어갈 자리를 묵음으로 했다가 차후 붙여넣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과정이 소모적이거나 무의미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도 훅이 잘 어울리는 곡에는 훅을 넣기도 한다. 평소 의식하는 선은 그 정도인데, 아마 가사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간접적으로는 반영되지 않았나 싶다.

노래와 랩의 중간으로 가사를 읊조리는 경향 때문에 앨범이 힙합과 R&B의 중간쯤으로 보이기도 한다. 본인은 ‘flaw, flaw’에 대해 힙합을 의도했다고 밝혔는데, 왜 힙합인가.
제이클레프
: 의도적이었다기보다 가장 재밌게 듣고, 귀가 즐겁고, 좋아하는 장르가 힙합이었다. R&B 비트도 많이 받아봤는데 잘 못하겠더라. R&B가 어울릴법한 리듬과 사운드의 곡들은 저에게 너무 달았다. 사랑해야 할 것 같고, 야해야 할 것 같고. 물론 제 앨범의 주제는 사랑이 맞지만 그런 분위기의 내용을 담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많은 해외 여성 뮤지션들이 보여주는 어떤 경향과 하나의 흐름을 같이 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최근 해외에서는 여성 뮤지션들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멘탈리티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데, 제이클레프의 음악도 그런 것 같다. 요즘 자주 듣는 여성 뮤지션의 음악이 있나.
제이클레프
: 여성이라는 걸 의식하고 듣지는 않는다. 최근 들어보면 잘하는 사람이 다 여자인 것 같다. 그들이 음악을 정말 잘하고 재밌게 해서 듣는다. 리틀 심즈(Little Simz)는 랩을 정말 잘하고 멋있는 가사를 쓴다. 아이엠디디비(IAMDDB)나 프린세스 노키아(Princess Nokia)도 멋있고……. 국내에서는 재키와이가 잘하고 릴 체리도 진짜 최고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웃음)

어릴 때는 어떤 음악을 들었나.
제이클레프
: 뮤지크 소울차일드(Musiq Soulchild)를 가장 많이 들었고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은 지금도 제일 좋아한다. 국내 힙합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취향이 많이 달라졌다. 마초적인 느낌의 가사들이 불편해졌다.

지난 몇 년간의 사회적 흐름이 생각의 변화에 영향을 줬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음악에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제이클레프
: 사회적으로는 기존의 수동적인 여성상보다 좀 더 능동적이고, 색다른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성으로서라기보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훨씬 많이 한다. 여성 아티스트, 이런 말들이 싫어진 지는 오래됐다. 여성이라서 차밍 포인트를 얻는 것도 사실 불편하다. 그냥 제 앨범이 좋아서 인정받고 싶고,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크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나는 말하기를 강요받았어’, ‘이런 건 대화라 불리면 안 되는 것 아닐까’. 음악을 하면서 존중받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나.
제이클레프
: 어떤 것이 진짜 존중인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한다. 평소 장난은 잘 치지만 말하기를 그렇게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모든 인터뷰에서 성공을 하기 위한 법칙이나,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해 많이 묻는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지금은 이해하지만 가끔 그런 질문들이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나는 내일 정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 뭐하고 살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때그때 좋아하는 것들을 할 것 같다. 음악을 시작해보려는 단계에서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답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행위 자체가 어렵게 느껴질 때 만든 곡이다.

‘으악!’에서는 ‘함부로 너의 상처의 깊이를 가늠한다 말하지 않을게’라는 가사를 쓰기도 했다.
제이클레프
: 우울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만든 곡이다. 고민상담을 할 때는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데, 자꾸 ‘아 뭐, 그건 힘든 것도 아니야~ 나는 말이야~’ 이러면서 주제를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불편했고 그들이 찔리기를 바랐다. 또 우울함을 가진 사람들이 우울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다. 원래 우울한 사람들을 좋아한다.

앨범 전반이 방백 같은 느낌도 있다. 가사들이 대화를 건네지만 직접적이지는 않다.
제이클레프
: 음악 자체가 방백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혼잣말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사를 열심히 썼고 또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한 것도 사실이지만, 듣는 사람이 몰라줘도 정말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음악적으로 재밌게 듣거나 목소리를 좋아해주셔도 좋다. 내가 하는 건 음악이니까, 그런 재료를 좋아해주시는 것도 음악을 만드는 데 동력이 된다. 하고 싶은 말을 알아주신다면 정말 최고다.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들어줬다는 거니까. 처음엔 음악이 좋아서 듣다가, 궁금해서 가사를 펴보는 과정은 나 역시 리스너로서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들으며 겪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번 앨범을 통해서 무엇을 얻은 것 같나.
제이클레프
: ‘Flaw, flaw’는 사실 비극으로 끝나서 야속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The uncertain’s club’(수록곡)이라는 유토피아를 만들어 놓고 해결책이 없으니 '지구 멸망 한 시간 전'에서 '멸망이나 했으면 좋겠다' 이러면서 모든 걸 부수니까.(웃음) 나 역시도 답을 찾지 못한 사람이라, 당당한 걸음으로 '무언가를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앨범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위태로운 사람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위태로운 걸음으로 어떤 문제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그래서 노래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찔렸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 음악이란 무엇일까.
제이클레프
: 인생에서 제일 오랫동안 좋아했던 것. 권태기가 와서 없어진 취미도 많고, 사라진 친구들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꾸준히 좋아할 수 있고, 나를 힘들게 하고, 기쁘게 하는 건 다 음악이다. 괴로운 감정을 느끼거나 힘들 때, 그런 것들을 안 만들면 약간 죽을 것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데 음악으로 힘든 감정들을 쓰고 남기면 다시 들어도 힘들지 않게 된다. 이미 다 치유가 되어버려서. 음악을 하기 전에는 스스로를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없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실한 게 없었다. 그저 사회 속에 있던 한 사람이었고, 사회가 원만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받쳐주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음악을 하면서 가사를 쓰면서 스스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고, 때때로 느끼는 사랑이나 혐오같은 감정들을 들여다보게 됐다. 또 타인이나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고.

방금 전 질문이 마지막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묻지 않겠다. 아까 폭력적이라고 해서(웃음). 그리고 질문지에 정말 적어놓지 않았다!
제이클레프
: 왜 물어보는지는 이해한다(웃음). 계획은 정말 앨범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을 때 이야기하고 싶다. 지금은 너무 설레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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