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과 밈│② 김영철을 바라보는 마구니 5가지

2019.04.09
누구인가? 지금 누가 웃음소리를 내었어? 아무래도 우리의 머릿속에는 마구니(魔仇尼)가 가득찬 모양이다. KBS ‘태조왕건’에서 한쪽 눈만으로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고, SBS ‘야인시대’에서 밑도 끝도 없이 ‘사딸라’를 외치는 김영철의 비장한 연기를 보면 자꾸 웃음이 새어나온다. 연기대상만 두 번을 받은 경력 50년차의 이 배우는, 대체 어떤 매력으로 우리의 2차 창작 욕구를 자극하고 있을까. 20년만에 재조명되고 있는 김영철의 여러 면모들을 정리해보았다.

김영철의 진지함

사실 김영철은 20년 전 연기했던 ‘태조 왕건’이나 ‘야인시대’가 희화화되는 지금의 상황이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는 정말 진지하게 연기했다. 맥락 없이 “사딸라”를 거듭 외치는 ‘야인시대’의 임금 협상 장면을 완성하는 것은 김영철의 선 굵은 얼굴에 서린 근엄한 표정과 동굴 같은 목소리다. 그가 미군을 향해 비장하게 “four dollars”가 아닌 “사딸라”를 외치는 모습보다 더 강렬한 노동쟁의가 있을까. ‘태조 왕건’에서도 그는 한쪽 눈만으로 광기 어린 궁예의 서늘함을 표현하고, 신하들을 향해 “똥막대기”라 외칠 때조차 진심 어린 분노를 보여준다. 2009년에 김영철은 “강렬한 눈빛이나 울림 있는 목소리 등 내가 가진 본래 이미지가 강하다 보니 평범한 역할을 해도 그렇게 안 보이고 눈에 띄는 경우가 많다”(‘bnt뉴스’)라는 고충을 밝혔었다. 그의 말처럼 강한 이미지를 가진 연기자가 황당하거나 극단적인 상황조차 진지하게 표현하니 더욱 시선이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당시 인터뷰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김영철의 진지한 연기에 감탄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진지한 연기를 각종 패러디로 전복시키며 쾌감을 느끼고 있다.

김영철의 억양
김영철은 밋밋해보이는 대사도 자신만의 억양으로 소화하면서 강한 인상을 만들어낸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그가 보여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대사를 눈을 감고 들어보자. 묘한 리듬감이 느껴진다. KBS ‘태조 왕건’에서 궁예를 연기할 때도 그는 “누-구↗인↗가↘? 지↘금↗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라며 한 대사에서 다양한 높낮이를 보여줬다. 유튜브에서 수많은 밈으로 재생산된이 장면은 급기야 ‘궁예재즈’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피아노 코드를 입힌 영상(https://youtu.be/yRbD0nKe7QI)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SBS ‘야인시대’의 그 유명한 임금 협상 장면에서도 김영철은 4번의 ‘사딸라’를 모두 다른 억양으로 외치는 디테일을 보여준다. 이처럼 다양한 음감을 발휘하는 그의 억양은 대사들을 더욱 분명하게 기억하도록 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대사를 따라하거나 2차 창작을 하고 싶도록 만든다.

김영철의 관심법
‘태조 왕건’의 궁예와 ‘야인시대’의 김두한, 그리고 영화 ‘달콤한 인생’의 강 사장까지. 김영철에게 명대사들을 선사한 이 세 캐릭터들은 오로지 자신만의 의견을 관철하거나, ‘관심법’을 할 수 있다는 듯 상대의 의도를 넘겨짚는 공통점을 가졌다. ‘태조 왕건’에서 궁예는 기침소리를 하는 신하를 찾아내지 못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관심법을 쓴다며 신하들에게 호통을 치고, ‘야인시대’의 김두한은 협상 대상자인 미군과 대령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오로지 자신의 목표인 ‘사딸라’를 줄기차게 외친다. ‘달콤한 인생’의 강 사장 역시 충직한 부하인 김선우(이병헌)가 자신의 내연녀에게 연정을 품었다는 의심으로 그를 죽이려 하지만, 이런 심리적 갈등을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표면적인 말로 숨기려 한다. 이처럼 막무가내로 자신의 의도만 전달하는 대화법은 당시 작품 속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흐르면서 상대와의 대화를 단절해버리는 막무가내식의 태도는 유희의 대상이 되었고, 이마저 완벽하게 소화하던 김영철의 연기는 당시와 다른 방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김영철의 힙
김영철은 자신의 캐릭터가 유행과 결합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하게 소화한다. 최근 한 브랜드의 화장품 광고에서 그는 화장품 뒤에 손가락을 대는 뷰티 크리에이터들의 시그니처 포즈를 완벽하게 재현하고, ‘better’를 ‘베터’가 아닌 ‘베러’라 발음한다. 그리고 궁예를 연상시키는 노란색 양복과 넥타이로 ‘힙’한 스타일을 완성한다. 아이스크림 광고에서는 조선시대 왕이 추석 선물로 아이스크림을 찾는 혼란스러운 시대 배경 속에서 웃음기 없는 열연을 보여줬다. 처음부터 그가 이처럼 ‘힙’하지는 않았다. ‘야인시대’ 2부에서 김두한이 20대 안재모에서 김영철로 뒤바뀌는 장면은 SBS ‘가로채널’에서 양세형이 말했듯 “시청률이 반토막 수준이 아니라 부러진” 순간이었고, 당시 51세였던 그에게 “궁예가 찬조 출연한 것 같다” 혹은 “김두한만 나이들어 보인다”라는 혹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영철은 “17살부터 시작하는 청년 김두한 역도 욕심이 많이 났고, 정 안되면 주름살 제거하는 보톡스 주사라도 맞으려고 했다”(‘연합뉴스’)라고 밝혔을 만큼 마음만은 젊다. 비록 김두한의 청년 시절은 연기하지 못했어도, 지금 그는 자신이 젊은 세대에게 웃음을 주는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이며 제 3의 전성기를 즐기고 있다.

김영철의 업데이트
1953년생의 김영철은 올해 만 66세로 연기 경력만 50여 년 가까이 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이와 위치가 주는 무게를 인식하고 불편하지 않은 어른이 되려 노력한다. SBS ‘가로채널’에서 그는 선배 이순재를 통해 촬영장에서 자신의 장면 위주로 촬영하고 떠나던 습관을 반성하고 고친 에피소드를 밝혔다. 또한 KBS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도 아이들에게 맛탕을 사주며 스스로를 “궁예 아저씨”라 부르고, 유기견을 병원에 데려가는 20대 여성들에게 존대를 하며 물건을 들어주거나 반찬가게에서 식사한 후 주인에게 따뜻한 앞치마를 선물한다. 자신의 연기 캐릭터가 희화화되는 시대적 흐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시민들에게 예의 바르고 따뜻한 태도를 유지하며 그간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준다. ‘가로채널’에서 김영철은 “걸음걸이에서 그 사람의 연륜도 나오고 멋도 나온다”라는 소신을 이야기했다. 지금의 그는 ‘사딸라’로 찾아온 전성기 속에서도, 중년 남성이자 원로 연기자로서 자신에게 필요한 걸음걸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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