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거리의 만찬’이 윤지오씨와 대화하는 법

2019.04.03
“공개적으로 취조하는 거 같은 인터뷰가 있었어요.” 지난 3월 29일 KBS ‘거리의 만찬’에 출연한 윤지오씨는 최근 겪은 일들을 이 한마디에 담았다. 그는 ‘장자연 사건’으로 알려진 연기자 故장자연의 죽음에 관한 증언을 하기 위해 신상을 밝혔다. 여러 권력자들이 한 명의 여성에게 가한 모든 범죄들을 밝히기 위해 나선 정의로운 선택이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자극적인 면에 집중한 언론 보도였다. 단적으로 MBC ‘뉴스데스크’는 생방송 중 윤지오 씨에게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돼 있는 정치인의 실명을 밝혀 달라고 했고, 논란이 일자 이에 사과하는 일도 벌어졌다. 신변에 위협을 느껴 SNS를 통해 ‘생존 신고’ 영상을 올리는 그에게 합의 없이 던진 이 질문은 단지 무례한 것을 넘어 인터뷰이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를 담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거리의 만찬’이 윤지오 씨를 초대한 방식은 제작진의 의도와 별개로 마치 언론에게 그를 대하는 방식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리의 만찬’은 윤지오 씨가 등장하기 전 일반적인 토크쇼 게스트처럼 촬영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그를 볕이 드는 디저트 가게로 초대한다. 디저트를 대접 받은 윤지오 씨는 마카롱을 보며 자신이 이런 분위기에서 디저트를 먹은 지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보인다. 이 장면을 통해 윤지오 씨가 신변 위협에 시달려야 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니라, 어디서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점이 환기된다. 누군가 공익적인 증언을 위해 나섰다면, 그는 사회적인 찬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 많은 한국 언론들은 그를 환대하는 대신 윤지오 씨가 가진 비밀을 그들의 매체에서 털어놓을 것을 요구하고, 그가 故장자연의 죽음에 관한 재수사가 시작된 것을 알고 울자 그 사진을 찍어 보도했다. 그리고 ‘거리의 만찬’에서 자막으로 ‘피해자다움’을 강요한다고 표현한 것처럼, 사람들은 윤지오 씨가 밝은 모습으로 있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故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살아남은 윤지오 씨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윤지오 씨는 20대에 연기자가 되기 위해 故장자연의 소속사와 계약했다. 하지만 故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마음 먹은 뒤부터 연기자로서의 삶은 포기했다. 연기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계약금 300만원에 위약금 1억, 강압적인 술자리도 참여해야만 하는 ‘이벤트’로 해석될 수 있는 계약서를 받아들여야 했다. 故장자연은 이런 계약에 묶인 채 생전에 술자리에 불려가 한 잔만 마셔도 몸을 가눌 수 없는, 약물이 들어간 정황이 의심되는 술을 마셔야했다. ‘거리의 만찬’은 故장자연의 죽음이 권력이 연기를 하고 싶은 여성에게 온갖 방식으로 폭력을 가하는 과정에서 나온 하나의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그 폭력이 다시 윤지오 씨의 일상을 파괴하는 과정을 전달한다. 윤지오 씨는 어느 순간부터 연기자로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어떤 수단도 막혔다. ‘거리의 만찬’은 윤지오 씨의 발언을 통해 그의 인생과 故장자연의 죽음을 함께 언급하면서, 故장자연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일이 지금의 현실을 바꾸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설득한다. 이것은 윤지오 씨가 단지 故장자연의 죽음에 대해 말하는 증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가수 이지혜는 윤지오 씨가 겪은 부당한 계약에 대해 “일을 안 한다고 해야 (계약을) 풀어줄까 말까” 했던 연예 기획사의 행태를 짚으며 이것이 한 산업 전반에 걸쳐 있는 문제라는 것을 드러낸다. 오수진 변호사는 윤지오 씨가 맺었던 계약의 불공정한 부분을 짚는다. 故장자연의 죽음에 관해 참고인 자격으로 경찰서에 간 윤지오 씨가 마치 취조당하듯 조사를 받은 것의 문제점 역시 참고인의 정의와 권리에 대한 오수진 변호사의 설명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난다. 메인 MC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는 박미선이 윤지오 씨가 편하게 발언할 수 있도록 하는 사이 다른 패널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윤지오 씨에게 공감하거나, 그에게 필요한 지식을 제공한다. 제작진은 이 과정을 통해 시청자가 윤지오 씨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히고, 방송 막바지에는 그가 미래에 대한 계획과 희망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해시킨다. 요즘 예능 프로그램들에 비하면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48분의 러닝타임 동안, ‘거리의 만찬’은 세상에 할 말을 가진 사람을 초대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내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해 사회가 가져야 할 자세를 되짚게 만든다. 이것은 늘 이야기되지만, 좀처럼 실천되지 않는 올바른 저널리즘의 태도이기도 하다. ‘거리의 만찬’은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을 전한다. TV 안에서, 토크쇼의 틀로 끌어낸 새로운 저널리즘이라 할만 하다. 그리고 ‘거리의 만찬’은 윤지오씨에 이어 다음주에 교내에서 이른바 ‘스쿨 미투’를 진행 중인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이야말로, 세상이 어디에선가는 조금은 좋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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