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희열│② 신수정PD, 강윤정 작가 “단순히 유명한 사람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2019.04.02
KBS ‘대화의 희열’은 요즘 시대에 보기 드문 토크쇼다. 어떠한 장치도 없는 공간에서 네 명의 패널과 한 명의 게스트가 긴 시간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제작진은 멀찍이서 이들의 대화를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단지 그것뿐인데,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모두가 잊고 있던 대화의 희열을 발견한, 신수정 PD와 강윤정 작가를 만나보았다.

지난달 시즌 2가 시작됐는데, 반응이 어떤가.
신수정
: 아무래도 첫 회 백종원이라는 거물이 출연하며 화제가 많이 된 것 같다. (웃음) 시즌 1때보다는 확실히 반응이 빠르다고 느낀다. 그래도 여전히 섭외는 힘들다.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섭외를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 시즌 1때는 여러 번 위기가 있기도 했다. 처음 머릿속에 그려둔 그림은 열 권짜리 책을 한 세트로 채우는 거였다.
강윤정: 원래는 열 명을 다 섭외하고 시즌 1을 시작하려고 했다. 꿈이 야무졌지. (웃음) 현실은 세 명 정도 섭외하는데도 정말 힘들었다.
신수정: 지금은 꼭 10회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고, 10-12명 정도의 인물을 기준으로 하나의 시즌을 완성하고 싶다. 컬렉션 같은 느낌으로.

녹화 전에 게스트에 대한 자료를 정말 많이 준비한다고 들었다.
신수정
: 작가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 얼마 전에 유시민 작가 편을 녹화했는데, 그에 대한 자료만 170페이지가 넘었다. 유희열 씨가 아예 밤을 새고 녹화 직전에 겨우 다 읽었다고 하더라.
강윤정: 아내 분이 ‘학력고사 준비하냐’고 놀리셨다고 했다. (웃음) 사실 나도 평생 살면서 이렇게 많은 활자를 한꺼번에 읽어본 적은 처음이다.
신수정: 기본적으로 패널들 모두 일주일 내내 최대한 게스트에 대해 공부를 하고 온다. 제작진들은 인터뷰를 많이 한다. 일단 게스트 본인을 만나서 사전 인터뷰를 하는데,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분위기를 선호하는지,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하는지 관찰한다. 좀 특이한 것은 패널들도 매주 인터뷰 한다는 사실이다. 게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물어보고 싶은지 등을 인터뷰해서 질문지에 반영하고, 다시 그것을 패널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다. 이런 사전단계가 좀 긴 편이다.

각기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지는 패널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다.
신수정
: 유희열 씨는 검증된 인터뷰어다. 워낙 라디오를 오래 했고,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10년째 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잘 해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다만 본인의 이름이 타이틀에 들어가는 것은 끝까지 반대했다. 어차피 망할 프로그램인데 자기 이름 넣지 말라고. (웃음)
강윤정: 녹화 직전까지도 제목이 없었다. (웃음) 김중혁 작가는 한 마디로 엔딩요정이다.
신수정: 방송 내용을 세 줄로 요약한다면, 아마 세 문장이 다 김중혁 작가의 입에서 나온 것일 확률이 높다. 그만큼 에센스를 잘 뽑아낸다. 다니엘 린데만은 외국인 방송인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냥 1순위로 떠오른 인물이다. 워낙 진지하고 박식하고, 외국어로 이루어지는 대화에 그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는 이상한 상냥함이 좋았다. 특히 다니엘이 게스트에게 자기 명함만 건네도 대화가 술술 풀리기 때문에 너무 좋은 아이스브레이커다.
강윤정: 외국인 명함인데 궁서체다. (웃음) 자기는 ‘노잼’이라고 하지만 정말 재미있는 친구다.
신수정: 신지혜 기자는 시즌 2의 키 플레이어다. 시즌 2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게 여성 패널을 찾는 일이었다. 기계적으로 여성 패널을 넣고 싶지는 않아서 그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사실 사내에서 찾을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작가 분들이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그를 발견하고 이런 사람을 왜 추천하지 않았냐고 원망했을 정도다. 기자기 때문에 인터뷰 스킬이 좋고, 불편하지 않게 핵심을 찌르는 재주가 있다. 한편으로는 기자이긴 하지만 30대 초반의 평범한 직장인이기도 해서, 대화를 보편적인 영역까지 확장시킨다.
강윤정: 사실 그가 아니었다면 시즌 2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에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시즌 1 초반에 남성 패널들과 관련해서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도 했다.
강윤정
: 첫 회 게스트가 김숙 씨였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남자 패널들이랑 하느냐’는 비판이 많았다. 특정 SNS나 커뮤니티에서만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이 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보고 정말 변화가 피부에 와 닿는다고 생각했다.
신수정: 첫 회 촬영을 하면서 김숙 씨가 가운데에 앉아있고, 남성 패널들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며 전복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기획 단계부터 여성 패널에 대해 정말 많은 고민을 했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성이 그저 장식적으로 쓰이거나 끼워 넣기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행히 신지혜 기자가 너무 잘 해줘서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숙이 ‘옛날에 자신이 했던 개그가 창피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강윤정
: 사실 김숙 씨는 사전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는 위험하니까 방송에서는 하지 않겠다’라고 했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이야기를 방송에서 꼭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신수정: 현장에서 김숙 씨가 창피하다는 말을 하는 순간, ‘이건 어떻게든 되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방송을 오래 하신 분들은 자기검열이 심할 수밖에 없다. 어떤 말을 하면 비난을 받는지 너무 잘 아니까. 그런데 녹화를 마치고 가면서 김숙 씨가 ‘김중혁 작가가 배려해줘서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하시더라. 바로 이런 게 대화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어떤 장치도 없이 대화에만 집중하는 건가.
신수정
: 원래 콘셉트가 ‘퇴근밀담’이었다. (웃음) 지금은 많이 희석되기는 했는데 그 느낌은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밤에 찍는다’와 ‘출연자들끼리 있는다’는 원칙만은 지키려고 한다. 카메라도 최대한 숨겨서 설치하고, 촬영이 시작되면 제작진은 빠져나와 별도의 공간으로 간다. 어떠한 디렉팅도 없이 그저 모니터를 지켜보기만 한다.
강윤정: 초반에는 너무 불안했다. 사실 몇 번이나 뛰어 들어갈 뻔 했다. (웃음) 하지만 놓치는 것이 있더라도 저런 분위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느꼈다.
신수정: 일반적인 토크쇼 촬영 현장과는 아예 다르다. 원래는 프롬프터가 있고, 어떤 대사를 칠지 일일이 다 디렉팅을 한다. 우리는 진짜 대화를 찍다보니 편집점이 없어서 힘들다.

어떻게 보면 예능보다는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신수정
: 초반에 무덤을 팠구나 싶어서 후회도 많이 했다. (웃음) 녹화시간이 5-6시간이 넘는데 보통 초반부터 깊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기다리면 언젠가는 나온다는 확신이 있다. 네다섯 시간을 쓸데없는 이야기만 하더라도 마지막 30분에 의미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그걸 그대로 살리면 된다.
강윤정: 녹화 시간이 엄청 긴 것 같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는 당사자들은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우리끼리는 ‘이제 됐는데’, ‘퇴근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웃음) 그렇게 대화에 푹 빠져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
신수정: 제작진은 테이프 갈 때만 현장에 들어간다. 그 테이블 위에 간식은 왜 안 먹느냐고 많이들 물어보시는데, 우리가 오며 가며 집어먹는다. (웃음)

게스트 섭외 기준이 있다면?
강윤정
: 섭외하기 전부터 자료 조사를 정말 많이 한다. 단순히 개인의 인생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서 이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신수정: 우리는 ‘게스트가 아니라 주제’라는 표현을 쓴다. ‘대화의 희열 첫 번째 주제 백종원, 두 번째 주제 이수정’ 이런 식이다. ‘어떤 이야기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인물인가’가 포인트다.
강윤정: 예를 들어 인요한 교수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랐다. 문정인 교수를 만나러 갔다가 우연히 그 분을 만나 호기심이 생겼다. 알고 보니 너무 훌륭한 분이라 방송이 일주일도 안 남았을 때 급하게 섭외를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다고 해주셔서 그때부터 확신을 갖게 됐다. 단순히 유명한 사람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좋은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다.

그 과정에서 익숙한 인물이지만,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신수정
: 사실 유명한 게스트가 나오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다루기는 더 어렵다. 그만큼 대중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하지만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강박은 없다. 누군가는 알고 있는 이야기도 누군가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일 수 있고,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종원 대표에게 ‘존경받는 부자’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배철수 씨가 나왔을 때도 시대적인 상황과 함께 보다 넓은 관점에서 송골매라는 밴드가 상징하는 바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강윤정: 개인적으로는 강수진 단장을 다루기가 특히 어려웠다. 워낙 유명하신 분이고 이미 토크쇼에도 많이 출연하셔서 오히려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할지 모르겠더라. ‘함께 하는 동료들을 이해하려고 별자리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이거다 싶었다. 어떻게 보면 말이 안 되는 소리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어서 짠했다. 안정환 씨도 월드컵의 주역이기 전에 굉장히 불운한 시기를 여러 번 겪었다. 그렇게 인간적인 모습들을 많이 보려고 한다.
신수정: 유명한 사람들의 성공 신화보다는 그 뒤에 숨겨진 외로운 면면을 찾아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더라도 중간 중간 그런 것들이 섞여있으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표정, 그때의 공기 같은 것을 최대한 편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리려고 한다.

아이유부터 송해까지 다양한 세대가 출연한다는 것도 특징이다.
신수정
: 아이유 씨 다음이 송해 선생님이었던 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연령, 성별, 분야가 최대한 다른 게스트끼리 순서를 붙여서 최대한 폭넓은 인상을 주려고 한다. 구성할 때도 세대에 따라 조금씩 접근 방법이 달라진다. 송해 선생님은 생애에만 집중해도 담론이 여러 곁가지로 뻗어나갈 수 있다. 반면 아이유 씨처럼 나이가 어린 게스트는 생애에 집중하기보다는 그를 보여줄 수 있는 키워드를 다양하게 제시한다. 누가 나오느냐에 따라 매주 구성이 달라지는 셈이다.

이수정 교수 편은 특히 여성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이 많았다.
신수정
: 늘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여성 게스트가 나왔다고 해서 무조건 ‘여자라서 얼마나 힘드니’ 같은 짐을 지우기는 싫은 거다. 다만 이수정 교수의 경우 그분이 하는 일 자체가 여성 문제와 워낙 밀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왔다.
강윤정: 우리 팀은 대부분 여자인데, 그 편을 찍을 때는 남자 스태프들 의견을 많이 물어봤다. 여자들은 성범죄에 대한 공포에 너무 공감하지만, 반대로 남자들은 오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날 녹화장에 하필 CP의 아들분이 현장에 와있었다. (웃음) 나중에 카톡으로 물어보니 ‘밤길에 여자들이 왜 자기를 피하는지 몰랐는데, 그날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게 됐다’고 하더라.
신수정: 그런 이슈를 다룰 때 내가 방송을 봤으면 하는 사람은 여자가 아니라 남자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다 아니까. 평생 이런 걸 겪지 않고 사는 나머지 절반의 시청자들이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신지혜 기자가 자신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놓고, 이수정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 자리에 있던 남성 패널들이 ‘자기는 한번도 그런 공포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강윤정: 신지혜 기자가 없었다면, 이수정 교수의 출연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애초에 패널 중 여성이 없으면 출연하지 않겠다고 하셨으니까.

‘대화의 희열’은 신수정 PD의 입봉작이기도 하다. KBS 내부의 젊은 PD나 작가들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신수정
: 계속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한다는 내부의 욕구가 있다. KBS에서 오래 일하지 않은 작가를 일부러 데려와서 젊은 PD를 붙이기도 한다. 다들 옛날과는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나도 편집에 색깔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중간 중간 감성적인 영상을 삽입하기도 하고 자막 한 줄을 써도, 음악 하나를 깔아도 뻔한 건 피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결국 바뀌지 않을까. (웃음)

‘대화의 희열’을 만들고 있는 입장에서, 대화의 희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수정
: ‘네가 누구든, 얼마나 훌륭하든 너 외롭구나. 나도 외로워’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 송해 선생님과 대화하던 중 유희열 씨가 갑자기 엎드려서 울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의 뒷모습을 조명하는데 이 프로그램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강윤정: 이수정 교수 편을 구상하다가 팀 회식을 했는데, 여자들끼리 있으니까 끊임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이수정이라는 주제로 우리가 같은 경험이나 감정을 공유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다. 이 방송을 만들면서 그런 순간들이 많았다. 정말 어떤 인물을 통해 좀 더 넓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렇게 확장되는 것이 진정한 대화의 희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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