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여성들│① 미쓰백, 유관순, 지우, 조안, 캡틴 마블

2019.03.19
최근 한국 영화 산업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는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다. ‘허스토리’, ’미쓰백’, ‘국가 부도의 날’, ‘항거: 유관순 이야기’처럼 여성 주연의 영화들이 주목 받기 시작했고, 헐리웃의 경우 8명의 주연 전원이 여성으로 구성된 ‘오션스 8’을 비롯해 마블의 첫 여성 히어로물인 ‘캡틴 마블’ 같은 영화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만큼 여성 배우들이 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모습들도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있다. 이것은 단지 여성 배우들의 출연작이 늘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이 여성의 삶을 얼마나 다양하게 바라보고 생각하며, 알릴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인상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짚어보았다.


* 항목별로 다루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 유관순, 여성이 자유를 말할 때
‘항거: 유관순 이야기’에서 3.1 운동 이전 유관순(고아성)이 사는 세상을 비추는 화면에는 색감이 남아있다. 그는 가족들이 기도하는 와중에 몰래 밥을 먹고, 일본 순사들이 들이닥친 상황에서도 밥 한 술을 마저 떠먹고 태연히 뒷담을 넘는다. 그러나 화면이 흑백으로 바뀌고 서대문 형무소의 비좁은 8호실을 비추어도,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의 모습은 그대로다. 그는 일본 순사들이 소리칠 때마다 조용해지는 수감자들의 모습을 개구리에 비유해 수감자들이 “우리는 개구리가 아니다”라고 외치는 집단행동을 이끌어내고, “난 여기 들어올 때부터 죄인이 아니라고 했다”라며 자유의 가치를 역설한다. 모진 고문을 견디는 그에게 조선인 출신 헌병 보조원 니시다(류경수)는 적당히 살아남으려면 조용히 지내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유관순은 대답한다. “자유란, 하나뿐인 목숨을 내가 바라는 것에 마음껏 쓰는 것이다.” 그는 나라에 대한 충성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누리는 존엄의 관점에서 독립을 이야기한다. 당대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여성으로서, 억눌릴수록 터져나오는 인간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유관순은 보편적인 자유의 의미를 전달한다.

‘미쓰백’ 백상아, 정상가족을 벗어난 여성의 연대
세차와 마사지로 근근이 살아가는 백상아(한지민)의 삶은 정상가족과 거리가 멀다. 그는 알코올 중독인 엄마 정명숙(장영남)에게 학대 받고, 강간범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다가 전과자가 됐다.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는 그는 자신의 곁을 맴도는 형사 장섭(이희준)의 구혼도 매몰차게 거절한다. 상아는 부모의 폭력으로 추운 거리에 내쫓긴 아동 지은(김시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점차 그가 당하는 폭력에 맞서 싸운다. 때때로 영화는 상아가 “이런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혼란섞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거나, 장섭으로부터 “엄마 역할을 하라”라는 응원의 말을 듣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마침내 가정의 폭력에서 벗어난 지은은 장섭과 그의 누나가 사는 집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상아는 엄마가 아닌 ‘미쓰백’으로서 그의 곁에 남는다. 이는 전과로 인해 입양이 어려운 상아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상가족 혹은 모성애 프레임을 벗어난 여성 캐릭터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증인’ 지우, 서사의 중심에 서다
자폐가 있는 고등학생 지우(김향기)가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한다. 그는 창문 너머로 일어난 미란(염혜란)의 살인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지만 자폐로 인해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 미란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지우를 통해 미란의 무죄를 증명하려 하고, 첫 재판에서 지우에 대해 “정신병”이라는 표현마저 쓴다. 그러나 지우는 처음부터 의도를 갖고 자신에게 접근한 순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 묻고, 순호가 준 상처에도 엄마에게 “증인이 되고 싶어”라 말하며 진실을 밝히겠다는 용기로 재판정에 선다. 그간 미디어에서 수동적으로 묘사된 장애인의 모습과 달리, 지우는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며 자신의 주관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결국 순호는 두 번째 재판에서 지우의 시각에 맞춘 테스트로 그의 지각 능력이 정확하다는 점을 증명하고, 지우는 증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다. 그가 편견을 극복하는 과정은 장애를 가진 여성 캐릭터가 대상화되지 않고 서사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영화에서 그의 예민함과 인지능력을 강조하는 점은 장애가 자칫 ‘능력’이 되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편견을 더할 수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더 와이프’ 조안 캐슬먼, 여성의 복잡한 삶에 대한 재현
‘더 와이프’의 조안 캐슬먼(글렌 클로즈)의 삶은 남편 조지프 캐슬먼(조너선 프라이스)의 빛나는 영광 뒤에 어둡게 묻혀 있다. 글 쓰는 재능을 타고났지만 여성이라 인정받을 수 없었고, 남편의 글을 대신 썼지만 노벨문학상은 남편의 것이 되었다. 심지어 조지프 캐슬먼은 헌신적인 아내의 노고에도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열등감을 해소하고 매사에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조안은 남편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에 대해 “평생 고생한 아내로 취급받기 싫다”라며 수상 소감에 자신을 언급하지 말라고 부탁까지 하지만, 남편은 결국 그를 ‘뮤즈’ 혹은 ‘사랑’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분노를 폭발시키던 조안은 딸의 출산 소식에 언제 그랬냐는 듯 조지프와 깊은 감정적인 유대를 나누고, 심장병으로 죽음을 앞둔 그에게 “제발 나를 떠나지 말아달라”라고 애원한다. 심지어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조안은 진실 폭로를 유도하는 전기 작가 나다니엘(크리스찬 슬레이터)에게 대필은 사실이 아니라 못박는다. 조안이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진실을 폭로해야 하지만, 그 순간 그가 평생을 바친 삶과 가정이 무너지고 그는 ‘피해자’라는 낙인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 모순적인 인생은, 그 자체로 여성의 삶이 무엇인지 뼈아프게 재현한다.

‘캡틴 마블’ 캐럴 댄버스, 여성 히어로의 힘
‘캡틴 마블’에서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는 항상 외부인이었다. 지구에서는 여성이 비행사가 될 수 없다는 편견과 조롱에 시달렸고, 사고로 기억을 잃고 들어간 크리족의 기동대 스타포스에서는 지구인이라는 이유로 힘을 통제당한 채 스스로를 증명하기를 요구받았다. 특히 스타포스의 수장 욘-로그(주드 로)는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캐럴의 의문을 잡념이라 세뇌하며 그의 정체성을 억누른다. 그러나 캐럴은 영화 말미에서 자신의 힘을 마음껏 발산하며 욘-로그에게 말한다. “난 너한테 증명할 게 없어.” 그가 자신이 살던 세계의 부조리를 깨닫고 자아를 찾는 과정은 약자에 대한 연대로 이어진다. 캐럴은 크리족을 위협하는 악당으로만 여겼던 스크럴이 사실은 우주의 난민이자 피해자임을 깨닫자 자신의 힘으로 그들을 돕는다. 또한 한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비행을 포기한 친구 마리아 램보(라샤나 린치)에게 스크럴을 구출하는 비행을 부탁해 그가 활약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영웅으로서 한계이자 제약처럼 여겨지던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그를 약자와 연대하는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게 한다.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면서 만들어진 여성 히어로의 새로운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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