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래퍼 3’, 10대들이 하는 또다른 힙합

2019.03.15
“자유로운 예술가 19살 권영훈입니다.” Mnet ‘고등래퍼 3’의 출연자 권영훈이 자신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그는 ‘세상에 보여주고 싶은 진짜 나’를 주제로 한 팀 대표 선발전에서 스스로 구상한 가상의 차원 ‘진도그’를 “객관의 행복이 존재하고 불행도 불안도 없는 공간”이라 소개했고, 이를 주제로 한 랩을 선보여 “랩에 영상미가 느껴진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는 경연을 위해 랩을 했음에도 청중을 의식하지 않고, 타인에게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고등래퍼 3’의 참가자들은 자신의 음악적 색깔이나 취향을 자유롭게 드러내고 힙합의 다양한 요소들을 보여준다.

‘고등래퍼 3’의 모든 참가자들이 권영훈처럼 음악에 대한 확고한 지향점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오리지널 힙합의 계보를 계승하고자 나왔다’며 ‘정통 힙합’을 강조한 참가자인 옥가향은 더 콰이엇으로부터 “정통 힙합에 너무 골몰하지 마라”라는 조언을 받았다. 1화의 학년별 첫 만남에서 “넥타이를 풀어 헤쳐야 힙합이다”, “뼈해장국이 힙합이다”라며 “유튜브에서 배운” 힙합의 정의를 늘어놓던 남성 참가자들은 하선호로부터 “힙합을 잘못 이해한 것 같다”는 일침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기성 힙합에 편입되지 않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에 놓인 10대의 위치는 Mnet ‘쇼미더머니’ 혹은 기성 힙합과는 다른 음악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양승호는 “10년 정도 외국에서 살다 오니까 어디를 가든 외부인인 느낌이 있었다”라며 이를 ‘외계인’이라는 주제로 표현해 이목을 끌었고, 화곡리 우곡마을 출신의 이진우는 시골에서 온 힙합 소년이라는 자신의 독특한 정체성을 강조해 행주에게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참가자”라는 평을 받았다. ‘고등래퍼 3’의 참가자들은 서바이벌의 형태 안에서도 10대가 가진 다양한 음악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면서 힙합에 대한 시청자의 기시감을 덜어낸다.

‘고등래퍼’ 시즌 1의 우승자인 양홍원은 ‘내가 고등래퍼들 다 빨아먹으러 왔지’처럼 ‘쇼미더머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자기 과시를 했고, 랩 실력을 통해 이런 자신감에 설득력을 더하며 학교 폭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승했다. 그러나 ‘고등래퍼 3’에서 윤현성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랩을 선보이고도 “랩으로 줄 수 있는 감동이 스킬뿐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박한 평가를 받았다. ‘카와이 크리에이터’라는 독특한 수식어와 밝은 미소로 화제가 된 참가자인 김호진의 사례는 상징적이다. 그는 ‘고등래퍼 3’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요즘엔 랩을 잘할 필요가 없다”며 독특한 캐릭터를 살리라는 조언을 받았고, 키드밀리와 기리보이 팀에 추가 합격했다. 이는 “요즘엔 진짜 자기 개성대로 하는 거다”라는 기리보이의 말처럼 힙합의 최근 경향과도 연결된다. ‘고등래퍼’ 첫 시즌의 양홍원과 달리 ‘고등래퍼 2’의 최대 수혜자는 ‘명상 래퍼’를 표방하던 김하온과 자신의 콤플렉스와 트라우마를 진솔하게 풀어내던 빈첸이었고, 그들의 듀엣곡 ‘바코드’는 지난해 힙합씬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였다. ‘고등래퍼 2’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것과는 또다른 방식의 힙합을 알리기 시작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이제 ‘고등래퍼 3’는 랩을 얼마나 기술적으로 잘하는지에 집중하기보다 출연자의 개성과 출연자가 무슨 내용을 표현하는가에 보다 중점을 둔다. ‘쇼미더머니’와 다르게, 10대들을 통해 또다른 힙합의 기준이 TV 프로그램으로 들어왔다.

한때 ‘고등래퍼’ 래퍼들에 대해 ‘방송인’이라 폄하했던 키드밀리의 말처럼, ‘고등래퍼 3’의 래퍼들이 보여주는 음악 역시 비즈니스 쇼의 일부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빈첸은 같은 크루 ‘키프클랜’ 출신의 김민규가 ‘고등래퍼3’에 출연하자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마냥 스웨그하는 거 말고 네가 누군지 알려줬으면 좋겠어.” 그의 말처럼 10대 내에서도 기성 힙합의 스웨그를 표방하는 참가자들이 있는 반면, 자신의 색채를 힙합에 더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려는 래퍼들도 있다. ‘고등래퍼’ 시리즈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키프클랜’은 단체곡 ‘플라시보’를 통해 “약 얘기 하지마 / 약 얘기 안하면 / 약 얘기밖에 넌 할 얘기가 없지” 같은 가사로 기성 힙합의 성찰 부재를 꼬집기도 했다. 힙합에 서바이벌 형식을 도입한 ‘쇼미더머니’의 아이디어는 대중의 접근성을 높였지만, 경연에 초점을 두면서 힙합의 여러 갈래 중 한정적인 모습만을 반복적으로 노출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쇼미더머니’처럼 힙합과 서바이벌을 접목시킨 ‘고등래퍼 3’의 10대들은 TV에서 그간 노출되지 않았던 또다른 힙합을 보여준다. 그러니 이제 10대들의 힙합을 아마추어라 폄하하거나, 또는 일탈로 치부할 수는 없다. 그들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오히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힙합 씬의 새로운 흐름을 대중에게 가져오고 있다. 10대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또다른 힙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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