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거 : 유관순 이야기’를 본 100만 관객

2019.03.14
순 제작비 10억 원, 손익분기점 관객수 50만 명으로 알려진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지난 주말 관객수 100만을 돌파했다. 총 제작비 대비 400% 이상의 매출 기록했다. 최근 200만 관객을 돌파한 ‘사바하’, ‘증인’이 아직 박스오피스 1~2위를 달릴 때 제작비 150억 원의 ‘자전차왕 엄복동’과 동시 개봉했고, 지난 6일 70% 가까운 좌석을 점유한 ‘캡틴 마블’이 극장가를 강타한 것까지 감안하면 꾸준한 입소문으로 거둔 놀라운 성과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3·1 운동 이후 불법 시위·치안 방해·법정 모독죄 등으로 3년 구형을 받고 서대문 형무소 8호실에 수감된 유관순을 중심으로, 그간 조명되지 않았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얼굴을 살뜰히 살핀다. 영화를 보고 나면 수원에서 기생 30여 명을 데리고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김새벽),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평안도 출신의 다방 종업원 이옥이(정하담) 등의 이름을 자연스럽게 검색하게 된다.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만세를 외쳤다”는 말의 광의적 의미나 남자였으면 가능했을 일을 이야기하다 “여자도 하면 된다”고 받아치는 대사를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주체적 여성들의 시스터후드를 적극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특히 “기생년”과 같은 공간에 있음에 치를 떠는 이도 있던 8호실의 여성 25명이 서로 살을 부대끼며 겨울을 보내고, 이화학당에서 선진 학문을 배우던 유관순이 기생 김향화에게 나가서 술 한잔 하자고 말하는 그림은 계급 이슈까지 흥미롭게 엮어낸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생긴 만주로 넘어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시작하는 캐릭터 역시 김향화이며 유관순의 오빠 유우석(심태영)이 그를 배웅하는 그림도 흥미롭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배경의 콘텐츠는 대체로 독립운동가와 그의 결정을 응원하는 인물이 반대의 성별로 재현됐기 때문이다.

이는 홍보 단계에서도 부각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특장점이었다.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홍보·마케팅을 맡은 이노기획 김도희 실장은 “여자 배우들이 중심이 되어 여성 연대를 보여준다는 것은 영화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프레스에 배포된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보도자료는 “우리가 몰랐던 열일곱 유관순의 이야기”, “고아성과 충무로 신예들의 열연” 그리고, “일제에 당당히 맞선 여성들의 우정과 연대라는 뜨거운 이야기”를 강조했다. 여성 서사를 지지하는 관객층이 존재하며 이것이 흥행으로도 이어진다는 것은 최근 업계에서도 뚜렷이 인지하고 있는 현상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2017년부터 발표한 성인지 통계(영화산업 내 성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서 한국 영화 산업의 성불균형 현황을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편집자)에 따르면, 2017년에 비해 2018년 여성 감독·주연의 숫자가 증가했고 이는 최근 5년간 가장 높은 비율이다. 특히 여성이 주연을 맡은 케이스가 30%를 넘으며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는데,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연구원은 “최근 여성 서사를 지지하는 관객 운동의 부상이 산업에 영향을 미친 결과”(‘2018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항거: 유관순 이야기’의 작지만 단단한 흥행이 남기는 물음표도 있다. 과거 윤봉춘 감독이 1948, 1959, 1966년 총 3번에 걸쳐 만든 ‘유관순’과 김기덕 감독의 1974년 영화를 제외하면 왜 유관순이 스크린에서 제대로 재현된 적이 없었는가 하는 점이다.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해가 돼서야 비로소 작은 예산의 극영화로 만들어졌다. 곧 개봉하는 ‘1919 유관순’은 유관순을 비롯한 여성 독립 운동가들에 포커스를 맞춘 다큐멘터리다. 유관순 영화에 흥미를 보이고 기꺼이 투자를 결심한 극소수의 시도는 현재까지 큰 성공을 거뒀다.

일부 관객 사이에서 페미니즘 영화이기 때문에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며 일찌감치 평점 테러를 당한 ‘캡틴 마블’이 개봉 5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아이언맨3’보다 빠르고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같은 속도의 기록을 세운 점은 상징적이다. 흥행성이 없기 때문에 여성 중심 영화는 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10년만에 처음 나온 마블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 중이고, “다양성을 확보한 영화가 흥행 경쟁력도 있다”는 실데이터를 충실히 반영 중인 할리우드의 최근 제작 경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 흐름은 작지만 유의미한 형태로 한국에서도 이어져, 거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조명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어려운 조건에도 손익분기점 2배에 다다르는 성적을 거뒀다.

여성 서사는 상업적인 면에서도 가능성이 있고, 작품적으로 신선함도 담보한다. 여기에 더해,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지난해 ‘허스토리’ 때부터 시작된 적극적인 관객 운동의 연장선에 있으면서 그 영역을 역사극으로 확장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체로 여성 주연·연출 영화는 드라마, 멜로/로맨스 혹은 다큐멘터리에 집중되어 있고 액션, 전쟁, 사극과 같은 고예산 프로젝트에서는 여전히 배제되는 경향이 있는데,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덕혜옹주’에 이은 여성 주연 역사극으로 성공을 거둬 장르의 확장 가능성까지 보여줬다. 업계가 인지는 하고 있지만 여전히 평가절하된 시장이 있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한 이들이 그 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갈수록 더 많이, 자주 등장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이 흐름에 창작자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 답은 너무 쉽고 명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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