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수현, 벽을 넘는 여자

2019.03.13
MBC ‘전지적 참견 시점’ 43, 44회에서 수현은 뉴욕 스케줄을 소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공개했다. 공항에서 수현은 자신의 스케줄을 매니저에게 브리핑했고, 14시간의 비행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대본을 들여다봤다. 뉴욕에 도착한 후 그는 숙소에 짐을 풀 잠깐의 여유도 없이 캐리어를 끌고 곧장 미팅 장소로 향했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고 직접 헤어와 메이크업을 한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현의 모습에 ‘참견영상’을 바라보던 패널들은 혀를 내둘렀고, 그는 “그냥 미국에 가면 그런 힘이 생긴다. 뭔가를 책임져서 누군가를 데리고 가야 하고, 새로운 일들이 있고”라며 웃었다. 딴 세상처럼 여겨졌던 할리우드에서 배역을 따내고, 누구의 도움 없이 직접 해외 스케줄을 관리한다. 수현이라는 배우가 가진 열정과 지성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할리우드 배우’라는 수식어를 갖기 전, 수현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2005년 ‘한중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1위를 수상했지만, 바로 연예계로 뛰어들지는 않았다. 데뷔작인 2006년 SBS ‘게임의 여왕’과 2010년 KBS ‘도망자 Plan.B’ 사이에는 4년이라는 적지 않은 공백이 존재한다. 그 후 본격적으로 배우로서의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국내에서 크게 주목받은 적은 없었다. 그의 존재감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15년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헬렌 조 역할에 캐스팅되면서부터다. 얼핏 특별한 행운을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수현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보면 이는 결코 우연히 아니다. 착실하게 언론인의 꿈을 키워가던 학생이 배우가 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배우가 된 후 그의 고민은 더욱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수현은 여러 번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연기 활동 외에도 ‘그 여자의 방’이라는 책을 번역하는 등 다른 배우들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그리고 해외 활동의 시작이자,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르코 폴로’에 출연했을 당시 수현의 나이는 서른 살이었다. 그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해외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당시 같은 소속사였던 다니엘 헤니가 오디션에 참가하는 걸 보고 나도 도전하게 됐다”, “한국에서 했던 역할과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한국 여성 배우에게는 어떠한 전환점처럼 여겨지는 나이에 그는 과감히 도전을 선택했다. 수현이 ‘마블의 신데렐라’가 되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시간들에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공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이후에도 ‘다크타워: 희망의 탑’,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 등 굵직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했다. 이것은 단순히 한국의 배우가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신기한 현상’이 아니라 수현의 결단력과 용기, 그리고 끈기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수현의 모습은 그동안의 여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결정했기에, 참을 수 없는 외로움마저 오롯이 감당해야했던 시간들은 그를 한층 더 차분하고 성숙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숨 돌릴 틈도 없이 이 배우의 앞에는 또 다른 숙제가 놓여있다.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에서 그가 연기한 ‘내기니’는 동양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강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수현은 “그런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있다는 게 긍정적인 것 같다. 아시아 배우로서 내가 맡는 역할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다(‘헤럴드POP’)”고 말했다. 그는 지난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산드라 오가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했던 일을 언급하며 “나도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어떤 의미로든 기여하고 싶다(‘데이즈드 코리아’)”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자기 앞에 놓인 벽을 훌쩍 뛰어넘어 성장한 배우가 그보다 높고 견고한 벽을 넘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용감한 여성의 여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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