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총 사태와 양육자의 권리 행사

2019.03.13
©정치하는엄마들 Facebook
“갑자기 공사를 한다며 개학을 연기하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다른 유치원 모두 파업을 하니 함께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그나마 양심적인 걸까요?”

지난달 말이었다. 개학을 코앞에 두고 유치원에서 돌연 개학을 연기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불안해하는 목소리가 일부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도 회원들의 제보가 잇달았다.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사립유치원 중심 단체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대규모 집회를 통해 유치원 공공성 강화 정책에 대놓고 반발하고 나선 시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유총은 법제화돼 시행령이 발효되는 에듀파인 도입 거부 등을 내세우며 무기한 개학을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준법투쟁’이라는 허위 사실과 교육부 조사보다 훨씬 많은 유치원들이 개학 연기에 동참할 것이라는 으름장도 더해졌다. 아이들의 교육권을 서슴없이 침해하는 동시에 양육자들을 협박하는 행위였다. 교육자로 치부됐던 이들이 말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교육대란’, ‘워킹맘 어쩌나’ 등 불안을 부채질했다. 전국 곳곳에서 일방적인 개학 연기 통보를 받은 곳들이 나타났다. 교육부의 조사 결과를 보고서야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개학 연기 대상임을 알게 된 경우가 있는가 하면 울산지역에서는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에 기습적으로 개학연기를 통보하는 행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은 한유총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양육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셌기 때문이다. 여론에 힘입은 교육 당국의 단호한 대응과 싸늘한 민심 앞에서 결국 개학 연기는 하루 만에 철회됐다. 그리고 서울시교육청은 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법인 설립 허가 취소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민법 제 38조에 따르면 공익을 행하는 행위를 한 법인에 대해 주무관청은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 한유총이 반복적으로 집단 휴원과 집단 폐원을 선포하고 소속 유치원들이 담합해 온라인 유치원 접수 추첨 시스템인 처음학교로 참여를 거부하는 등 일련의 행위들이 공익을 해를 가했다는 판단이다. 청문 절차를 거쳐 법인 자격을 잃으면 한유총은 공익법인으로서 정부의 각종 정책 교섭과 대화 상대로 참여할 수 없다. 지난 1995년 설립한 이래 유아교육 분야에서 독보적인 권한을 행사해 온 한유총은 이제 허울만 남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의무는 이행하지 않으면서 일방적으로 권리를 주장해 온 집단의 결과였다.

이를 이끌어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동안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시간 속에서 돌봄을 이행해야 하는 양육자들에게 사립유치원에 집중된 유아교육 환경에서 문제를 제기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비유됐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면 온 가족이 나서 줄을 서거나 추첨을 거쳐야만 했으니 내 아이를 보낼 수 있음에 감지덕지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다. 여기에는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를 등한시해 온 정부의 책임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은 한유총의 존재와 영향력, 입법 로비 등을 알리고 사회적 공분을 토대로 변화의 동력을 끌어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국무조정실이 유치원 감사 내용을 알리면서도 정작 중요한 해당 기관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겠다고, 양육자의 알 권리보다 유치원 사업자의 영업권을 우선하는 행태에 부당함을 느낀 엄마들의 행동이 시작이었다.

행정소송을 통해 비리 명단 공개를 촉구해 유아교육 정상화를 위한 움직임에 물꼬를 텄다. 그리고 정치하는엄마들은 이번 불법 휴원과 관련해 한유총과 소속 유치원들을 다시금 고발했다. 공정거래법과 유아교육법, 아동복지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하루 만에 개학 연기, 즉 불법 휴원을 철회했다고 해서 그들이 입힌 피해와 위법 행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유총의 집단 행동은 사업자 단체의 부당한 공동행위로, 공정거래법 제 26조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행정조치 할 수 있다.

“혼자 살겠다고 단체를 배신할 때 배신의 대가가 얼마나 쓴지 알게 될 것입니다. 서로 총질 안 하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한유총의 한 간부가 개학 연기와 관련해 지역 유치원 원장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이들에게서 아이들에 대한 고려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헌법이 보장한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와 ‘아동에 관한 모든 활동에 있어 아동의 최선의 이익이 고려돼야 한다’는 유엔 아동권리협약 내용은 이들 앞에 무용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자신들이 다니던 기관에서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 놀이하고 싶은 아이들은 그저 주어진 상황을 직면해야 했다. 때문에 정치하는엄마들은 비단 유아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자본’과 ‘사적이익’ 추구에 좌우되지 않고 헌법적 가치와 법률에 의해 운영되고 있음을 아이들을 비롯한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문제가 분명하다면 개인이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작동해야 함이 당연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의 아득함을 '문제의식을 지닌 개인들이 모여 함께 움직이면 변화는 찾아온다'는 희망으로 치환하고자 했다.

양육자 단체가 부재하고, 아니 존재한대도 정책 방향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환경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은 학부모 이전에 부모이고, 또한 양육자이며 사회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인식하고자 했다. '엄마만 빼고 다 정치한다'는 명제는 단체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기도 하다. 실제로 한유총은 오랜 기간 정치를 해 왔다. 정부의 국공립 유치원 확충 방안에 연이어 집단 휴원을 불사하고 관련 공청회를 무력으로 무산시키는 일을 자행했음에도 이 단체가 굳건할 수 있었던 데는 정치권의 비호가 따랐기 때문이다.

정치는 육아의 최전선이었다. 잠투정하는 아이를 어르는 일이나 이유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 못지않게 정치와 제도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체득하는 일은 중요했다. 너무나 상식적인 유치원 3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는 장면을 목도했다. 양육자들은 더 이상 버티지만은 않겠다며 스스로 변화했다. 물줄기를 바꾸고자 노력해 온 이들에 의해 변화는 시작됐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만들어 낸 집단모성, 사회적모성의 실현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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