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마블│③ 브리 라슨을 ‘캡틴 마블’로 만들어온 시간들

2019.03.12
지난 6일 개봉한 ‘캡틴 마블’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첫 여성 히어로 솔로 무비다. 영화에서 주인공 캐럴 댄버스는 여성이자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캡틴 마블로 거듭나는데 이를 연기한 브리 라슨 역시 이전부터 성폭력 문제 및 영화계 내 인종 성비 불균형에 대해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배우이다. 브리 라슨이 캡틴 마블을 연기하기까지 그가 보여준 행보들을 정리해보았다.

배우, 가수, 감독까지 1인 3역의 창작자

브리 라슨은 6세부터 배우가 되기를 꿈꿨다. 아메리칸 컨저버토리 시어터에 최연소 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8세부터 각종 시트콤의 고정 배역과 영화 단역을 연기하며 일찍부터 커리어를 쌓았다. 하지만 캐스팅을 통해 선택받아야만 하는 배우의 삶은 어린 브리 라슨에게도 녹록지 않았고, 이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동력이 됐다. 11세부터 기타를 치며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던 그는 15세 때 영화 ‘피터 팬’의 캐스팅에 실패한 심정을 담은 곡 ‘Invisible girl’을 녹음해 온라인에 업로드했다. 이를 계기로 2005년 앨범 ‘Finally Out of P.E’를 발매하며 가수로 데뷔했고, 음반의 절반이 넘는 수록곡의 공동작업에 참여했다. 하지만 음반 판매량은 3,500여 장에 그쳤고, 브리 라슨은 2010년 마이스페이스 계정을 통해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나는 내 노래를 모두 쓰고 싶었지만 그들은 그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기타를 연주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내가 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하이힐을 신기를 원했다.” 브리 라슨은 연기뿐만 아니라 영화 연출에도 두각을 보였는데, 직접 시나리오를 집필하고 연출한 단편영화 ‘디 암’이 2012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코미디 스토리텔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유니콘 스토어’를 통해 감독으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는 오랜 경력의 베테랑 배우이자, 자신의 이야기와 관점을 꾸준히 고민해온 콘텐츠 창작자이기도 하다.

‘룸’으로 오스카를 받다

2015년은 브리 라슨이 배우로서 평생에 걸쳐 쌓아온 역량을 폭발시킨 시기였다. 엠마 도노휴의 동명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룸’에서 브리 라슨은 7년간의 감금과 성폭행으로 모든 것을 잃은 스물 넷의 엄마 조이를 연기했다. 당시 그는 방에 갇혀 지내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한 달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캐스팅 이후부터 선크림을 바르며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창백한 피부를 표현했다. 또한 근육을 빼고 지방을 12%까지 감량해 인물의 현실감을 높이고, 감금으로 인한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전문가와 상담하며 조이의 입장에서 납치 전후로 나누어 일기를 쓰기도 했다. 이처럼 연기에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 노력 끝에 그는 27세의 나이로 제88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이외에도 제73회 골든글로브, 제21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제20회 배우조합상 여우주연상 등을 휩쓸었다. 명배우들이 몇 번씩 도전하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0대에 받았다는 점에서는 이른 성공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전까지 그는 매번 캐스팅에 어려움을 겪으며 수많은 단역을 거쳤고, 여러 번 배우를 그만두기를 고민했었다. 스스로 “인기 있는 여자 역을 맡을 만큼 예쁘지도 않았고, 형편없는 여자 역을 맡을 만큼 형편없는 여자도 아니었다”(‘hollywood reporter’)라고 회고했을 정도. 그러나 그는 인디영화 ‘숏 텀 12’에서 복잡한 주인공 그레이스를 연기하며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룸’에서 특정 이미지로 정의될 수 없는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했다. 캡틴 마블이 그랬던 것처럼, 브리 라슨은 어떤 상황에서든 좌절하지 않고 일어났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다

2015년 ‘룸’ 촬영을 위해 다수의 성폭력 피해자들을 만난 이후, 브리 라슨은 꾸준히 성폭력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왔다. 2016년 브리 라슨이 ‘룸’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던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당시, 가수 레이디 가가는 학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더 헌팅 그라운드’의 ost인 ‘Till it happens to you’ 공연을 펼쳤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레이디 가가의 무대에 함께 올라와 ‘네 잘못이 아니야’, ‘생존자’와 같은 문구를 팔에 표시한 채 서로의 손을 잡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당시 브리 라슨은 퍼포먼스가 끝난 후 무대에 올랐던 피해자들을 한 명 한 명 끌어안으며 연대를 표하는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반면 그는 제 8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시상에 나섰을 때 ‘맨체스터 바이 더 씨’의 케이시 애플렉을 수상자로 호명하고 상을 전달한 후,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동안 뒤로 물러서서 박수를 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당시 케이시 애플렉은 2명의 여성 영화 스태프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추후 그는 이 모습이 의도적이었음을 밝히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대에서 내가 했던 일 자체가 일종의 발언이라고 생각한다.”(‘vanity fair’)

평론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 제기와 가짜뉴스 논란

2018년 브리 라슨은 크리스탈+루시 어워드에서 영화 ‘시간의 주름’을 언급하며 평론계 내 성별 및 인종 다양성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인용한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 애넌버그 포용정책연구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로튼토마토에서 2017년 흥행 상위 100개 영화를 평가한 비평가 중 백인 여성의 비중은 25% 이하이고, 유색 여성의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그가 “나는 백인 남성이 ‘시간의 주름’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다. 나는 유색인종 여성, 혼혈 여성이 그 영화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싶다”라고 발언한 이유다. 이 발언에 앞서 그는 “백인 남성이 싫다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문제 제기가 특정 그룹에 대한 배제보다 다양성 확보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브리 라슨은 백인 남성이 그녀의 슈퍼히어로 영화(‘캡틴 마블’)을 평가하기를 원치 않는다”(‘Washington Examiner’)는 헤드라인의 기사가 등장하면서, 그의 당시 발언은 뒤늦게 논란이 됐다. 올해 2월 ‘캡틴 마블’의 개봉을 앞두고 마리끌레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앞으로의 언론 시사회는 더 포괄적으로 진행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유색 여성들은) 다른 이들과 같은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들렸다”라고 밝힌 인터뷰와 당시 발언이 합쳐지면서, 그가 ‘캡틴 마블’에 대한 백인 남성들의 평가 자체를 거부한다는 가짜 뉴스로 왜곡된 것. 이에 브리 라슨은 폭스5와의 TV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제가 지향하는 것은 더 많은 좌석을 테이블에 확보하는 겁니다.” 그는 백인 남성을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고 마리끌레르와의 인터뷰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포용을 강조했었다. 그럼에도 맥락 및 팩트체크도 없이 그의 발언이 소비됐고, 소수자에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가 특정 기득권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됐다.

‘캡틴 마블’ 캐스팅을 둘러싼 논란과 흥행

브리 라슨은 2016년 ‘캡틴 마블’의 캐럴 댄버스 역에 캐스팅된 이후 다양한 논란에 시달려왔다. 외모가 충분히 예쁘지 않거나 코믹스 속 캐럴 댄버스의 모습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스캐스팅 논란에 휩싸였고, ‘캡틴 마블’에 대해 “거대한 페미니즘 영화의 일부”(‘USA TODAY’)라 인터뷰한 사실이 알려지며 영화를 왜곡한다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 특히 브리 라슨은 인스타그램에 올린 스탠 리의 추모글에 옷과 신발을 자랑하는 듯한 사진을 함께 업로드해 비판을 받았고, 이에 사진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그가 두 차례 성추행 관련 논란에 휘말렸던 스탠 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스탠 리의 성추행 여부에 대해서는 후속 보도가 없어 확인이 불가능하고, 고인에 대한 브리 라슨의 태도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정도 언행이 불매 운동이나 영화에 대한 평점 테러로 이어질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여성 히어로를 연기하는 배우의 외모가 품평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남성 배우라면 좀처럼 겪지 않는 일이다. 또한 ‘캡틴 마블’이 “거대한 페미니즘 영화”라는 브리 라슨의 발언은 “젊은 여성들에게 이해와 자신감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라고 개인적인 출연 동기를 설명하는 말에 불과했고, 이는 ‘캡틴 마블’의 감독 애너 보든이 “(캡틴 마블은) 단지 페미니스트 영화일 뿐만 아니라 휴머니스트 영화이기도 하다”라 밝힌 취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말 브리 라슨의 모든 언행이 가짜뉴스까지 만들어서 영화 관람을 막아야할 정도인 것인가. 어쨌든, ‘캡틴 마블’은 한국에서 개봉 5일만에 관객 300만 명을 돌파했고(10일 기준), 북미에서도 2019년 최고 오프닝 수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성적으로 대상화되지 않은 여성 캐릭터와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슈퍼히어로 영화도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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