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세먼지 마스크 연대기

2019.03.11
나는 어렸을 때부터 호흡기가 안 좋아 어머니 등에 업혀 일 년 넘게 병원에 다녔다. 모두 민낯을 드러내며 문제없이 다닐 때부터 미세먼지 마스크를 찾아 썼다. 이제 사람들 사이에서도 매일 뜨는 기사와 뿌연 안개로 미세먼지가 보이는 듯하다. 여러분도 알게 될 건강하지만 불편한 미세먼지 마스크의 세계를 미리 엿볼 수 있도록 그간 써온 제품의 연대기를 공개한다.

1기. 가장 보통의 KF80-99 미세먼지 마스크 (300 - 1,200원 대)

흔히 접할 수 있고 약국에서 살 수 있는 마스크다. 많은 이에게 첫 미세먼지 마스크의 경험을 끔찍하게 남긴 마스크이기도 하다. KF가 높아질수록 더 미세한 먼지를 거를 수 있지만, 그만큼 호흡도 힘들어진다. KF99가 가장 좋지만 숨쉬기 어려워 94로 간을 보다 80까지 타협하는 이유다. 그래도 호흡은 편하지 않고, 마스크 안에는 습기가 차고, 아무리 꽉 고정해도 안경에 김이 서리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 내 얼굴이 이상한 걸까? 일회용이라는 것도 걸린다. 미세먼지 시대에 새로 생긴 고정비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2기. 샤오미 미세먼지 마스크 Purely(25,000원 ~ 30,000원 대), Airpop(10,000원 ~ 17,000대)
처음엔 1세대인 퓨어리(Purely)를 썼다. 천 마스크에 교체할 수 있는 속 마스크와 필터, 팬으로 구성돼 있다. 이걸 쓰고 알았다. 내 얼굴이 이상한 거구나. 마스크 밑으로 수염이 자꾸 삐져나왔다. 얼굴에 밀착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팬은 양날의 검이다. 가뜩이나 충전할 게 한 가득인데 이제 마스크까지 충전해야 한다니. 회전의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데 숨쉬기 편하게 쓰려면 소음이 거슬리고 강도를 낮추면 숨쉬는 게 어렵다. 속 마스크와 필터만 교체하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지만 천 마스크는 하관 전용 사우나를 달고 다니는 기분이다. 거기에 무거움도 감수해야 한다.

에어팝(Airpop)은 극세사 외피 마스크와 내피 필터로 구성돼 있다. 이 제품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다. 마스크와 입 사이에 공간이 있는 게 얼마나 쾌적한지. 다행히 내 얼굴에도 착용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입이 튀어나오는 디자인을 불호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원래 앞서 나가는 건 박해받는 일 아닌가. 이제는 길거리에서 에어팝을 쓰고 다니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볼 수 있게 됐다. 가끔 콧잔등에 필터가 고정되지 않아 안경에 김이 서리는 걸 제외하고는 별 불편함 없이 만족하며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외피를 잃어버렸다. 아직 집에 내피 필터가 한 뭉치 남아 있지만 이미 나는 에어팝으로 만족할 수 없는 몸이 됐다. 더 뛰어나고 기괴한 마스크를 찾기 시작했다.

3기. 3M을 믿어요 1급 방진마스크 8922 (1,600원 ~ 2,000원 대)
미세먼지 마스크에도 프로의 세계가 있다. 바로 방진 마스크. 우리가 고작 출퇴근길에 미세먼지 마스크 끼는 거로 엄살 피울 때 누군가는 작업 환경 때문에 온종일 마스크를 끼고 일한다. 프로가 쓰는 마스크가 바로 3M 1급 방진 마스크다. 그 중 하나인 8999는 에어팝처럼 입과 마스크 사이에 공간이 있다. 전면엔 더운 공기를 빠르게 배출해 준다는 3M 쿨플로우 배기밸브가 달려 있다. 호흡도 편하고 습기도 잘 차지 않는다. 방진 마스크라니, 쓰고만 있어도 든든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귀에 걸던 전의 마스크와 달리 머리 뒤로 헤드밴드를 넘겨 플라스틱 고리로 연결해 주는 방식이다. 플라스틱 고리 분실을 신경 쓸 필요는 있다. 마스크는 총 8시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일반 마스크보다 가격이 비싸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면 고정비를 감당할 수 없다. 근데 잠깐 사용하고 벗어 두면 그 안에 다시 미세먼지가 들어가 소용없는 게 아닐까. 실제로 벗어둔 방진 마스크를 다시 사용하면 자꾸 코가 간지러웠다. 주문한 100매를 다 쓰며 새로운 미세먼지 마스크의 세계를 찾아 헤맸다.

4기. 매드맥스의 세계로 GVS 면체마스크 P100 (33,000원 ~ 38,000원 대)
방진마스크의 시대는 가라. 이제 면체마스크의 시대다. 전이라면 웃음거리였겠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이해할 이가 있을 것 같다. 확실히 2기 때부터 썼던 마스크들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더 따갑긴 하다. 내가 ‘관종’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드디어 끝판왕을 찾은 것 같다. 스모그의 나라 영국 제품인 것부터 믿음이 간다. 대형 사이즈가 따로 있다. 설마 서양 사람 기준이라 안 맞는 건 아니겠지, 걱정했는데 딱 맞는다. P100은 필터 교체형 마스크다. 출퇴근용이라면 3달 정도 필터를 쓸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안에 배는 입냄새로 더 빨리 교체할 가능성이 크지만. 사이즈가 딱 맞는 하드케이스를 따로 구입할 수 있다. 8999 때의 찝찝함이 해결됐다. 지금껏 썼던 마스크 중 가장 숨쉬기 편하다. 말을 하며 걷는 건 좀 힘들지만,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 정도는 문제없다. 안경에 김도 서리지 않는다. 얼굴에 정말 꽉 밀착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크게 얼굴에 압박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다만 밀착을 위해 헤어밴드 두 개를 머리 뒤로 넘겨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어렵다. 거기에 헤어스타일이 망가질 가능성도 있다. 울프커트 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면 이 마스크는 피하는 게 좋을 것이다. 제품을 벗기도 쉽지 않다. 에어팟을 낀 채로 제품을 한 번에 벗으려다 에어팟이 로켓처럼 튀어 올라 황급히 주워야 할 수도 있다. 경험담이다. 그래서 어지간한 경우엔 한 번 착용하면 잘 벗지 않는다. 그래도 큰 불편함은 없다는 게 제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하지만 슬슬 날이 더워질 때가 걱정된다. 아무리 좋은 마스크를 쓰더라도 맑은 공기를 직접 느끼는것 만큼 쾌적하고 편하진 않으니까.

*필터 교체형 마스크의 모든 가격은 기본 필터 포함 가격입니다.




목록

SPECIAL

image 여성, 감독, 전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