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라거펠트 이후의 샤넬

2019.03.07
2019년 2월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샤넬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실 샤넬은 기업의 소유와 경영, 디자이너가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는 패션 브랜드 중에서 드물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1909년 런칭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브랜드를 이끌어 가는 디렉터는 지금까지 가브리엘 코코 샤넬과 칼 라거펠트 두 명밖에 없었다.

코코 샤넬이야 창업자니까 그렇다 쳐도 이런 안정은 칼 라거펠트 덕분이다. 코코 샤넬은 여성의 활동을 억압하던 코르셋을 치워 버린 플래퍼 드레스, 양손을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 2.55 가방 등을 선보였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샤넬이라고 하면 머리에 떠올리는 이미지는 칼 라거펠트 이후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하자면 코코 샤넬의 정신과 칼 라거펠트의 현대화다.

아무튼 칼 라거펠트가 세상을 떠나면서 샤넬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최근 하이 패션은 매우 큰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다. 여성, 성소수자, 이민자, 서로 다른 문화 등 다양성은 가장 큰 이슈다. 게다가 오랫동안 유럽의 복식과 규정은 하이 패션 중심이었는데 스트리트 패션과 함께 이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거대한 주요 브랜드들이 속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교체하고 브랜드의 주요 고객을 바꾸고 있다. 샤넬도 그저 과거에 만족하고 있을 게 아니라면 분명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일단 샤넬은 칼 라거펠트의 부고를 발표하고 몇 시간 뒤 곧바로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로 버지니 비아르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만약의 사태에 대한 준비는 이미 끝나 있다는 듯한 움직임이다. 버지니 비아르는 1987년 샤넬의 인턴으로 들어갔다가 칼 라거펠트를 만나면서 이후 30년이 넘게 함께 일해 왔다. 버지니 비아르는 칼 라거펠트가 자신에게도, 샤넬에게도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왔을 정도로 지금까지 샤넬을 함께 이끌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사실 벌써 몇 년째 오트 쿠튀르나 레디 투 웨어 컬렉션에서 전면에 노출되고 있었기 때문에 후임자로 임명될 거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버지니 비아르의 임명 후 며칠이 지난 다음 또 한 명의 아티스틱 디렉터를 발표했는데 바로 에릭 프룬더다. 에릭 프룬더는 칼 라거펠트가 샤넬에 들어간 해인 1983년부터 함께 일해왔다. 버지니 비아르보다 함께 일해 온 기간은 더 길다. 에릭 프룬더는 샤넬의 이미지 디렉터로, 옷을 선보이는 컬렉션 외에 광고 캠페인이나 사진, 출판 프로젝트, 이벤트 등의 이미지를 책임져 왔다.

이렇게 보면 샤넬은 이 변화의 시기에 상대적으로 안정을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칼 라거펠트가 해 왔던 컬렉션 제작과 브랜드가 내놓는 이미지라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분야의 일을 30년 넘도록 함께해 온 각 부분의 최측근 두 명이 그대로 이어 받았다. 즉 최종 책임자가 칼 라거펠트에서 버지니 비아르와 에릭 프룬더로 바뀐 정도인데 물론 이 변화는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특히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다시 여성이 되었다는 점은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칼 라거펠트는 1980년 이후 시대의 변화에 맞춰 브랜드의 리브랜딩에 성공했지만 다양성과 여성 인권을 중심으로 한 최근의 새로운 변화에는 영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여성 디렉터의 임명은 예컨대 컬렉션의 옷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이미지를 새롭게 환기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옷에 대해 생각해 보면 버지니 비아르는 사실 칼 라거펠트의 오른팔을 자처해 왔고 자신이 패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이야기해 왔을 뿐 자신만의 패션이 무엇인지, 자신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보여준 적이 없다. 드디어 버지니 비아르 본인이 샤넬이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 만의 패션이 무엇인지를 전면에 드러낼 시간이 왔다. 과연 이 새로운 샤넬이 지금 세상의 변화에 부응하고 지금의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지켜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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