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① 세상을 발 밑에 둔 여자

2019.02.26
그룹 마마무의 멤버 화사는 못하는 것이 없다. 지난 1월 30일 MBC ‘라디오 스타’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그에 대해 소개한 것처럼 “노래, 메이크업, 곱창, 무대의상, 그냥 뭐만 했다하면 실검장악”이더니, 최근 발표한 솔로곡 ‘멍청이’는 음원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멍청이’에서 화사는 후렴구가 나오기 전까지 점점 박자가 빨라지는 곡의 전개를 ‘욕심이 널 / 밀어 / 내니까 / 내가 늦더라도 / 기다 / 리지마’처럼 보컬과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소화한다. 무대 위에서는 옷 위에 다시 비닐 옷을 입는 등 누구나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시도를 한다. 다재다능한데다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오는 순간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줄 줄 안다. 그러니 화사에게 시선을 떼기 어렵다.

‘멍청이’는 화사의 현재다. 대중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됐을 때, 이 스타는 다시 한 번 화제가 될 수 밖에 없는 순간들을 만들어낸다. ‘멍청이’에서 그는 남자를 ‘가녀린 심청이’, ‘나 밖에 모르는 사나이’라 부르고, 남자들은 높은 곳에 있는 그를 올려다 보거나, 그의 관심을 받아내려 애쓴다. 남자 스타들이 흔히 ‘나쁜 남자’의 캐릭터로 보여주곤 하던, 오만하며 압도적인 스타의 모습이다. 여성 뮤지션이 바지를 입고 다리를 벌린 채 앉아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광경이기도 하다. 이런 순간마다 화사는 자신의 지지자를 만들어낸다. 마마무는 ‘음오아예’에서 남성을 주 타겟으로 한해 섹시함이나 귀여움을 어필하는 대신 수트를 입고 에너지 넘치는 공연으로 여성 팬들이 점점 늘어났다. MBC ‘나혼자산다’에서 화사는 곱창과 김부각을 맛있게 먹으며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는 이 방송에서 단 한 번도 직접 요리를 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다시 출연한 ‘나혼자산다’에서도 그는 먹은 그릇에 물만 받아 놓은 채 설거지는 뒤로 미뤘다.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왜 그랬는지 설명할 이유도 없다. 화사는 미디어 상에서 여자 연예인에게 주어지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고, 그때마다 더 인기를 얻는다. 화사는 ‘라디오스타’에서 데뷔 초 못생겼다는 이유로 일부 팬들에게 탈퇴하라는 압력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여자 연예인, 특히 걸그룹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의 피해자였던 그는, 그 시선들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인기를 얻었다.

그 점에서 화사는 자신의 퍼포먼스와 그에 대한 대중, 특히 여성들의 반응이 결합한 현상이자 상징이다. 그의 행동이 경계를 넓히면 여성들이 호응하고, 다시 그것이 화사에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만든다. 한국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음원서비스 멜론에서 ‘멍청이’의 지난 23일 일간 이용자 수는 657,107명이고, 이 중 57.4%가 여성이다. 이날 일간 이용자수 1위일 뿐만 아니라, 일간차트 10위까지의 곡들 중 여성 청취 비율이 가장 높다. 이 날 화사는 한국 여성이 가장 많이 듣는 노래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멍청이’는 화사가 내놓은 결과물 중 가장 직설적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여성을 보여준다. ‘멍청이’에서 그는 높은 곳에서 남자를 내려다 보는 권력자이자, 남자의 관심에 신경쓰지 않는 여자다. 이것은 단지 여자가 남자에게 허용된 것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도입부부터 후렴구의 멜로디를 반복하고 변주하는 ’멍청이’가 한 곡으로 완결될 수 있는 것은 보컬리스트로서 화사의 역량 때문이다. 그는 남자를 ‘가녀린 심청이’라고 부를 때는 오만하게 느껴질 만큼 가사를 툭툭 내뱉듯 부르고, 후반부 곡의 클라이막스에서는 호방하게 목소리를 질러 버린다. 그동안 인기 여성 뮤지션이 대중의 반응 때문에 쉽게 할 수 없었던 것을 하자, 지금까지 공개할 수 없었던 능력들이 함께 터져 나온다. 화사는 지금까지 많은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에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이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날수록 더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다.

화사 외에도 선미는 지난해 ‘주인공’과 ‘사이렌’으로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여정을 선보였다. 청하는 ‘벌써 12시’를 통해 연애의 주도권을 자신의 것으로 가져온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여성이 남자를 유혹하거나 남자에게 매달리지 않아도 수많은 이야기가 가능하고, 그것이 음악 산업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는다. 세 여성 뮤지션만 해도, 댄스 음악의 범주 안에서 각각 다른 메시지와 스타일을 완성도 높게 보여줬다. 그리고 대중, 특히 여성은 이들에게 호응을 보낸다. 화사를 비롯한 최근 여성 뮤지션들의 성공은 한국 음악 산업에 새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나쁜 남자’ 캐릭터는 대부분 여성을 유혹하는 메시지를 던진다. 반면 화사와 같은 여성 뮤지션들은 남자 댄서 사이에 팔을 걸치고 서서, 카메라를 똑바로 보며, 무엇이든 해도 되는 여성의 당당함과 해방감을 표현한다. 바로 지금,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여성에게 더 매력적인가. 시대는 그렇게 바뀌었다. 화사가 솔로로 음원차트 1위를 하는 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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