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책 추천을 요청하기 전에

2019.02.25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심심치 않게 받는다. 업이 업이니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책을 읽고 싶기는 한데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몰라 막막하니, 매주 유튜브에서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묻는 것이다. 그런데 대개 답하기가 쉽지 않다. 그 질문들이 질문자 본인의 성향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을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마주하면 묻고 싶은 게 많아진다. 고등학생이시라면, 보통 어떤 책을 읽으세요? 언제 주로 읽으세요? 중학생 때 책을 많이 읽으셨나요? 어떤 장르의 책을 많이 읽으셨어요? 책을 읽은 지, 혹은 읽지 않은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주변에 도서관이나 서점이 있나요? 어떤 과목을 좋아하고, 어떤 과목을 싫어하세요?

‘고등학생을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는 ‘고등학생에게 맞는 수준과 내용의 책이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잠깐만 생각해봐도 전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혹은 전세계의 모든 10대가 같은 수준과 내용의 책을 읽을 리가 없다. 책을 많이 읽은 고등학생도 있고,평생 한 권도 제대로 읽지 않은 고등학생도, 한 가지 장르만 읽는 고등학생도 있다. 그 모든 결을 무시하고‘고등학생’이라는 이름으로 환원하는 순간 책을 추천하기란 매우 어려워진다. 저 ‘고등학생’의 자리에 다른 무엇이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취준생’, ‘20대’, ‘퇴사자’, ‘자존감이 낮은 사람’, ‘꿈을 찾고 싶은 사람’ 등등. 게다가 모두에게 내밀 수 있는 마법같은 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정답이 있으면 좋으련만, 책이란 그런 물건이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정답인 책이 다른 이에게는 그렇지 않기도 하다. 독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대로 독서 결심이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시도해볼 수 있다. 독서가 아무리 개인적인 경험이라고 해도 사회적으로 합의된 좋은 책들이 있고, 독서 과정이 제각기 다르다고 해도 비슷한 길을 걸어가본 사람들이 있다. 여기, 몇 가지 경우에 대한 경로를 제시해봤다.

—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 그 작가의 다른 책들을 섭렵해보자. 그 작가가 낸 책을 모조리 다 읽어보자. 다 읽었다면, 그 작가가 추천사를 쓴 책을 읽어보자. 추천사를 쓴 책이 없다면 그 작가의 인터뷰를 찾아보자.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언급한 책을 찾아서 읽어보자. 언급한 책을 다 읽었다면 그 책들에서 다시 시작하자. 같은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서점에서 그 작가의 책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책도 읽어보자. 조금씩 조금씩 그렇게 넓혀가보자.

— 새로운 학문에 대해 알고 싶다면: 새로운 학문에 입문하는 것이므로 입문서를 읽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보통 ‘쉽게 읽는’이나 ‘쉬운’, ‘입문자를 위한’, ‘처음 읽는’ 등의 문구가 붙어 있다. 입문서를 읽되, 3권 이상 읽기를 권하고 싶다. 3권의 저자가 각각 다른 국가에서 공부한 사람이면 더욱 좋다. 여러가지 관점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설명 방식을 접할 수 있어 좋다.

— 배경지식이 전혀 없다면
: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자. 일단 가서 직접 보는 게 좋다. 서점과 도서관을 돌며 흥미로워 보이는 책을 집어들고, 훑어보자. 몇 장 읽어보기도 하자. 탐색을 하다가 괜찮아 보이는 한 권을 골라 읽기 시작해보자. 서서 읽을 만큼 흥미진진하다면 도서 대출을 하거나 구매를 하자. 다 읽었는데 만족스럽다면 위의 ‘좋아하는 책이 있다면’으로 가서 새로운 독서를 시작해보자. 서점이나 도서관 한 바퀴를 돌았는데 도저히 손이 가는 책이 없다면, 눈 딱 감고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에 도전해보자. 유튜브, 팟캐스트, 신문 서평(한 해를 마무리하며 발표하는 ‘올해의 책’ 목록도 좋다) 등 참고할 자료는 많다. 가이드를 한번 믿어보자.

여기에 더하여 몇 가지 당부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첫째, 읽는 책에서 반드시 교훈을 끌어내겠다는 강박을 버리자. 생산적인 독서만을 독서라고 여기는 순간 독서는 하기 싫은 무엇이 되어버린다.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고, 일단 재미있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보자. 둘째, 그 어떤 책이든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강박을 버리자. 읽다가 힘들면 다른 책에 도전해보고, 그 책도 다 읽지 못하겠다면 또 다른 책에 도전해보자. 셋째, 책이 있는 곳에 가자. 가능하다면 온라인 서점보다 오프라인 서점과 도서관에 가자. 다이소를 구경하듯 찬찬히 둘러보고, 만져보자. 책을 사거나 빌리지 않아도 좋다. 그저 표지와 두께, 질감, 그림, 사진을 구경해보자.

책을 고르고, 실패하고, 다시 다른 책을 고르고, 서점을 돌아다니는 모든 과정까지가 독서 경험이라고 믿는다. 자신을 위한 책을 고르는 요령은 이 경험이 축적되면서 비로소 생겨난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토록 많은 책들 속에서 나를 위해 반짝이는 책들을 찾는 그날까지, 읽고 덮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반대로 유혹당하면서 계속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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