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ZY, 블랙핑크, CLC, (여자)아이들의 노래 속 여성상

2019.02.25
이제 K-POP에서 ‘걸크러시’는 하나의 유행이라기 보다 가장 인기있는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작년부터 청순하거나 섹시함을 강조하던 걸그룹들 대신 당당하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내세우는 팀들이 연이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올해는 JYP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IZTY가 스스로를 ‘다르다’고 강조하며 당당하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앞세워 데뷔,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이 외치는 ‘다르다’, 또는 ‘강하다’란 의미는 무엇일까. 최근 걸크러시적인 면모를 강조하며 활동 중인 걸그룹들의 가사를 통해 그들이 표현하는 여성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ITZY(있지), 좌충우돌하는 10대

JYP 엔터테인먼트의 새 걸그룹 ITZY는 데뷔곡 ‘달라달라’에서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애들과 난 달라’라고 말한다. ‘외모만 보고 내가 날라리 같대요’라는 평가는 거부하는 대신 스스로를 ‘I’m bad’라 정의하고, ‘철들 생각’이 없으며 ‘내 맘대로 살’ 것이니 ‘말리지 마’라고 반항을 선언한다. 같은 소속사의 걸그룹 미스A가 데뷔 곡 ‘Bad girl good girl’에서 ‘나 같은 여잔 처음’이라고 했던 것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그때 미스A는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라며 타인, 특히 남자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했다. 반면 ITZY는 남들과 다른 자기 자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더 자신만만해 보인다. 다만 이들은 ‘예쁘기만 하고 매력은 없는’ 이들과 어떻게 다른지, 혹은 어떻게 ‘맘대로 살’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또한 후반부에서는 ‘고개를 들고 네 꿈을 쫓아’라며 약간은 교육적으로까지 보이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이 다른지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하면서 남들과 다르다고 외치는 좌충우돌의 에너지는 10대의 특징이기도 하다. 또한 무대 위에서 멤버 예지가 손을 뒤로 짚고 앞으로 나오는 역동적인 동작이나 ‘bad bad I’m sorry I’m bad’에서 유나와 채령의 독무에 이어 무릎을 꿇고 손을 앞으로 뻗는 안무는 가사가 미처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무대의 에너지로 채워넣기도 한다. 지금 10대 소녀의 시선을 멈추게 할 에너지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라면, 그 의도는 분명하게 전달됐다고 할 수 있겠다.

블랙핑크, ‘나쁜 여자’의 사랑

블랙핑크의 ‘붐바야’에서 리사는 ‘middle finger up F U pay me’라는 표현을 쓴다. 이런 비속어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걸그룹은 흔치 않을 뿐더러, 그것을 공격적인 태도라기 보다는 자신감 넘치는 ‘잘 나가는 여자’의 캐릭터로 보여주는 것은 블랙핑크의 특징이다. 그들은 ‘붐바야’에서 ‘모든 남자들은 코피가 팡팡팡’ 터지게 만들 수 있다 말하고, ‘원할 땐 대놓고 뺏’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한다. 여기에 데뷔 초부터 그들을 패셔니스타로 만든 화려한 의상, 과감한 퍼포먼스 등이 더해지면서 그들은 압도적인 이미지의 걸그룹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동시에 ‘예쁘장’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고, ‘가녀린 몸매 속 감춰진 volume’처럼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미적 기준을 강조한다. 타인의 주목을 즐기고 이를 과시하는 자신만만함을 가졌지만 ‘춤추는 불빛’ 아래에서 ‘끝을 모르게 빨리 달리고’ 싶어하고, ‘오늘은 너와 나 젊음을 gamble’이라며 현재의 즐거움을 말하면서도 사랑에 대해 간절함을 품고 있다. ‘휘파람’에서도 ‘모든 남자들이 날 매일 check out’이라 말하는 자신감은 ‘이대로 지나치지 마요’라는 애원으로 이어지고, '불장난'에서는 ‘내 전부를 너란 세상에 다 던지고 싶다’고 말하며, ‘마지막처럼’에서도 ‘마지막처럼, 내일이 없는 것처럼’ 상대에게 사랑받기를 바란다. ‘붐바야’에서 블랙핑크는 ‘middle finger up’을 말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빠’를 외치기도 한다. 화려하고 세보이지만 마음 속에는 남자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고, 신파적으로 보일 만큼 여린 부분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걸크러시’를 내세우면서 이성애자 남성 팬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전략이지만, 동시에 이것이 아직 블랙핑크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겠다.

CLC, 주도권을 찾고 싶은 여성

SBS MTV ‘더쇼’에서 신곡 ‘No’로 첫 1위에 오르기 이전까지, CLC는 일관성이 부족해 보일 만큼 다양한 콘셉트를 거쳤다. ‘PePe’나 ‘아니야’, ‘예뻐지게’에서는 발랄하고 귀여운 여성상을 표현했고, ‘어디야?’에서는 'Crystal Clear'의 줄임말인 그룹명처럼 맑고 청순해보이는 콘셉트를 시도했다. 반면 어둡고 진한 화장과 강한 안무를 강조했던 ‘도깨비’에서는 사랑하는 상대에게 ‘당장 날 데려가’라는 절박한 심정을 ‘금 나와라와라 은 나와라와라 뚝딱’이라는 독특한 언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확실하게 나를 보여’주기 위해서 ‘향수’나 ‘Black dress’를 스스로 골랐음을 강조하던 ‘Black dress’를 거쳐, 이제 CLC는 ‘내가 나일 수 있’기 위해서 ‘Red lip’과 ‘Earrings’, ‘High heels’나 ‘Handbag’으로 상징되는 ‘뻔한’ 것들에 ‘No’를 외친다. ‘도깨비’와 ‘Black dress’가 ‘걸크러쉬’ 콘셉트처럼 강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상대에게 선택받고 싶은 욕망을 표현했다면, ‘No’에서는 ‘난 너를 위해 바꾸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선택의 주도권이 상대가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말한다. 다만 ‘No’에서 나열된 장신구에 대한 거부는 결국 ‘내게 제일 어울릴 Lipstick’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멋대로 망쳐봐 내가 제일 나일 수 있게’라는 가사와 달리 '미친 나'의 앞에는 '예쁘다'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고 자아를 지키려는 여성상의 등장은 유의미하다. 다만 타자의 시선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못했다는 점은 아쉽고, 선언적인 가사의 내용이 어떻게 퍼포먼스를 통해 구체화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더욱 필요해 보인다.

(여자)아이들, 할 말은 하는 여성

(여자)아이들의 데뷔곡 ‘LATATA’는 ‘기나긴’ 밤을 ‘너와’ 보내겠다는 유혹의 반복으로 시작된다. 이는 소연의 랩 파트에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나를 머금고 취해도’ 된다는 구애와 ‘Muah Muah Muah’라는 스킨십의 표현으로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내게 널 갇히게’ 하기 위해, 즉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주도하기 위해서 ‘널 위한’ 노래와 춤을 춘다고 말한다. 걸그룹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섹슈얼한 맥락을 직설적인 화법으로 표현하지만, 상대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별 앞에서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은 ‘한(一)’에서 ‘마치 무슨 약을 먹은 마냥 변했다’는 직관적인 표현으로 연인의 변심을 묘사하고, ‘넌 세상 제일 못됐다’는 정제되지 않은 원망까지 외친다. 그리고 간결하고 명확하게 선언한다. ‘널 잊으리라’고. ‘너’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지만, 가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나’의 시선이 노래의 중심이다. (여자)아이들은 여성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 무언가를 때려부술 것 같은 역동적인 모습을 무대 위에서 연출하거나 ‘나쁜 여자’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이나 이별과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철저히 그들의 시선과 언어로 이야기하면서 '할 말은 하는' 여성상을 보여준다. 정체성에 대한 선언보다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말하는 법을 다듬어 나간다. 흔히 이해되는 ‘걸크러시’ 콘셉트와는 다소 다르지만, 바로 그 차이가 (여자)아이들의 독특함이 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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