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정수, 김보연, 박준금의 연기 130년

2019.02.22
tvN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은 평균 연령 62세, 연기 경력 도합 130년인 중견 여성 배우들의 할리우드 도전기를 그린다. 현재 박정수, 김보연, 박준금은 주로 엄마 역할을 연기하곤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배우들이다. 다만, 여느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삶의 전환점 이후에 놀랄 만큼 비슷한 일들을 겪었을 뿐이다. 그래서 이것은 단지 특별한 세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기도 하다. 데뷔 때부터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일과 삶을 돌아보았다.

박정수의 47년

19살에 데뷔해 3년 만에 은퇴, 그리고 30대 중반에 연예계 복귀. 박정수는 신인배우로서 짧은 활동을 마치고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당시로서는 여성 배우가 결혼을 하며 은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다시 연예계로 돌아왔을 때 박정수에게 주어지는 배역은 한정적이었다. MBC ‘사랑이 뭐길래’는 김수현 작가의 작품으로 ‘대발이 아버지’를 유행시키며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그가 연기했던 정숙은 남녀 주인공 엄마의 친구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연기를 쉬었던 박정수에게는 이마저도 ‘터닝 포인트’라고 꼽을 만큼(OBS 경인TV ‘독특한 연예뉴스’) 감사한 역할이었다. 그가 중견연기자로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시트콤의 대가, 김병욱 감독을 만나면서부터다. SBS ‘LA 아리랑’은 LA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현지 교포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었고, 가정적이면서도 자기주장이 확실한 교포 캐릭터는 박정수 스스로가 “그 배역은 그냥 나였어. 정말 행복했어요(‘여성조선’)”라고 회상할 만큼 그에게 딱 맞는 옷이었다. 이후에도 박정수는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SBS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쌓아갔다. 특히 MBC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그가 박해미의 엄마 역할로 특별출연했던 일은 김병욱 감독의 개성 있는 여성캐릭터의 원형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 화려하고 도회적인 외모와 상반되는 유쾌한 캐릭터로 사랑받았지만, 사실 그는 사극에도 잘 어울리는 배우다. 그 대표적인 것이 MBC ‘대장금’의 용신 역으로 궁 안의 상궁들과 나인들을 총괄하는 제조상궁답게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많이 맡았던 역할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엄마였다. tvN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에서 박정수는 이에 대해 “(공채 탤런트 동기인) 고두심이 착한 엄마라면 나는 악독한 엄마 전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보연의 45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데뷔해 1976년 영화 ‘진짜 진짜 미안해’와 ‘진짜 진짜 잊지마’를 흥행시키며 스타가 됐다. 데뷔 초 하이틴 영화의 히로인 역할을 도맡았지만, 연기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배우였고 가수로 여러 장의 음반을 내며 높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부터 30대까지의 시기는 한국 영화의 전성기기도 했고, 그래서 김보연은 누구보다 많은 영화에 출연할 수 있었다. 특히 영화 ‘바람 불어 좋은 날’, ‘꼬방동네 사람들’은 배우로써 그가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실력과 인기를 두루 갖춘 배우였음에도 김보연은 20대 중반 돌연 미국 유학을 선택해 약 1년 6개월 동안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다. 그 이유는 재벌과의 스캔들 때문이었는데, 이에 대해 김보연은 “그 상황을 견디기가 힘들어 은퇴까지 생각하고 유학을 갔었다(KBS ‘승승장구’)”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유학에서 돌아와 1987년 영화 ‘안녕하세요 하나님’으로 복귀했고 1988년에는 결혼을 했다. 후에 “결혼을 하면 스캔들이 없어질까 싶어 순간적으로 결정했다(MBC ‘추억이 빛나는 밤에’)”고 말했을 정도니, 당시 여성 배우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추측할 수 있다. 김보연이 주연에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쯤의 일이다. “현재는 남자 배우들이 영화를 이끌어가지만 당시에는 여자 배우가 주인공이었다(‘bnt 뉴스’)”는 그의 설명처럼 1980년대는 여성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1990년대로 접어들며 김보연의 필모그래피에도 영화보다는 드라마의 비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이틴 스타에서 조연이 됐음에도 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경력이 끊긴 것은 1997년 자녀들의 유학 문제로 한국을 떠나게 되면서 부터다. 2001년 다시 드라마로 복귀한 후 40대 중반이 된 김보연에게 주어지는 역할은 엄마뿐이었다. 그나마 영화 ‘형사’나 KBS 드라마 ‘황진이’ 등의 사극에서 그는 엄마 역할에서 잠시 벗어나 특유의 매혹적인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에서 김보연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메릴 스트립이 선보였던 절제된 감정연기에 도전했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실력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충분히 느껴지는 대사처리와 순식간에 몰입하는 표정. 그가 어떤 배우인지 잠시나마 드러났던 순간이다.

박준금의 38년

박준금은 데뷔일화 자체가 남다르다. 그의 데뷔작은 1982년 KBS 드라마 ‘순애’로 배우 원미경이 주연을 맡아 연기하다가 도중에 하차하며 박준금이 대신하게 된 것.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였던 그가 주연을 맡았음에도 드라마는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박준금은 KBS ‘사모곡’, ‘토지’ 등 굵직한 작품에 출연하며 인기를 끌게 됐다. 하지만 1994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에서 잠정 은퇴했고, 그 후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였다. 그는 2011년 출연한 MBC ‘라디오 스타’에서 은퇴했던 이유에 대해 “워낙 준비 없이 배우가 됐었고 인기가 모래성같이 느껴졌다”고 밝혔다. 또한 당시의 일화들만 봐도 연예계에 오래 머물 수 없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그가 26살 때 6개월 방송출연정지 처분을 받았던 사건이다. 술을 따르라는 감독의 뺨을 내려쳤다는 것(KBS ‘시간을 달리는 TV’). 당시 남성 감독이 여성 배우를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박준금은 참지 않고 맞섰다고 한다. 40대 중반이 되어서 다시 연예계로 복귀한 후에는 주로 부잣집 사모님 역할을 맡았고, 2010년에 비로소 그가 ‘배우로서 제 2의 인생을 살게 해준 작품(‘연합뉴스’)’이라고 말하는 SBS ‘시크릿 가든’을 만났다. 여기서 그가 연기한 문분홍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여주인공을 핍박하는 악독한 엄마 역할이었지만, 박준금의 개성과 어우러지며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가 됐다. 그의 열연 덕분에 한동안 문분홍을 흉내 내는 다른 연예인들의 모습이 화제가 됐을 정도. 그 인기에 힘입어 2011년에는 SBS ‘일요일이 좋다-김연아의 키스 & 크라이’에서 피겨 스케이팅에 도전하며 무용 전공자다운 내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결코 만만치 않지만, 어쩐지 귀여운 이미지는 박준금의 트레이드마크로 ‘할리우드에서 아침을’에서 PR 영상을 촬영할 때도 다른 출연자들과는 달리 화려한 드레스를 입거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한 장면을 연기하기도 했다. 과연 할리우드에서는 그에게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역할을 만날 수 있을까. 단지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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