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이하늬의 도약

2019.02.20
*영화 ‘극한직업’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자 형사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형사 5명이 있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영화 ‘극한직업’ 제작보고회에서 이하늬가 한 말이다. 그가 연기한 장 형사는 ‘극한직업’의 마약반 팀원 5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강조되는 건 성별과 무관하게 형사이자 한 인간으로서 그가 가진 개성이다. 화장기 없는 얼굴과 부스스한 머리카락, 그리고 거침없는 걸음걸이로 표현된 그의 모습은 코미디 속에서도 형사의 고단함을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장 형사는 마약범을 검거하기 위해 로프에 매달리거나 볼살이 흔들릴 정도로 다급하게 뛰어가고, 거리낌없이 비속어를 내뱉거나 남성 팀원들을 윽박지르기도 한다. 특히 영화 후반부에서 그가 러닝타임 내내 가장 뛰어난 싸움 실력을 보여주던 이무배(신하균)의 심복 선희(장진희)와 맞붙는 장면은 액션 시퀀스의 화룡점정이다. 그간 미디어에서 아름답거나 섹시하거나 조력자로 묘사되던 여성의 클리세와 거리가 먼 캐릭터를 소화하면서, 이하늬는 그간 좀처럼 보여줄 수 없었던 자신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하늬는 미스코리아 출신이고, 2007년 미스 유니버스에서 4위에 오른 일은 당시 큰 화제였다. 하지만 미인대회 출신, 그리고 화려한 이미지의 외모는 그가 배우로서 극복해야 할 벽이기도 했다. 그는 MBC ‘파스타’에서 성공에 대한 욕망 때문에 옛 연인을 곤경에 빠트렸던 스타 셰프였고, MBC ‘불굴의 며느리'나 채널A ‘불후의 명작’, 영화 ‘연가시’에서 자기주장이 뚜렷한 도시 여성을 연기했다. 그러나 이하늬는 꾸준히 연기를 계속했고, 2014년 ‘타짜-신의 손’에서 허당인 것 같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우 사장을 연기하면서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다만 극 중 대길(최승현)을 유혹하는 우 사장은 개성이 분명하지면서도 팜 파탈로서의 매력적인 외양이 두드러졌다. 그만큼 제작사들은 그의 외모가 가진 강점에 주목했고, 이하늬는 단지 ‘hey 모두들 안녕 내가 누군지 아늬’를 외쳐도 얄밉지 않을 만큼의 매력을 갖춘 여성의 이미지로만 굳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골 이장, 우주항공연구원, 악당의 조력자처럼 전형성을 벗어나는 캐릭터에 계속 도전했고, 2017년 MBC ‘역적: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악녀나 요부로 묘사됐던 장녹수를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여성으로 재해석하며 호평을 받았다. 그런 시간들을 거친 끝에, 이하늬는 ‘극한직업’에서 자신의 매력과 장점들을 보다 폭 넓게 펼쳐 보인다.

이하늬는 2017년 인터뷰에서 카메라 감독에게 “연기하지 말고 그냥 좋은 시집 가라”는 말을 듣고 상처를 받았던 일화를 털어놓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란 사람이 이렇게 보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열정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이구나, 연기를 토해내야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았다.”(뉴스1) 그리고 그의 열정을 증명하는 선택지의 하나로, 이하늬는 ‘극한직업’에서 자신의 출발점이자 강점이기도 했던 외모에 대한 기준을 잠시 내려놓았다. ‘극한직업’ 제작보고회에서 그는 모니터링을 하다 자신의 모습에 놀란 일화를 전하며 “‘은퇴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했을 정도의 간극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다소 낯설고 멀게 느껴졌던 모습을 소화하면서 배우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됐다. 은퇴가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하늬답게, 이하늬스럽게, 스스로 생각하는 삶을 잘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다”(스타뉴스)고 말했던 그의 바람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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