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형에게 기회를│② 김서형 활용법

2019.02.19
JTBC ‘스카이캐슬’에서 김서형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절제해야하는 역할이었지만, 충격적일만큼 압도적인 연기를 보여줬다. 그동안 주로 악역 아니면 ‘차도녀’ 역할을 맡아왔던 배우가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호연에도 불구하고 김서형은 ‘너무 강한 이미지 때문에 다음 배역이 없을까봐’ 걱정한다. 이는 SBS ‘아내의 유혹’이 끝난 후 그가 실제 겪은 일이며 그 자체로 한국 여성 배우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김서형이 지금껏 보여준 모습들을 바탕으로 그에게 어울릴만한 역할들을 구상해보았다. 훌륭한 배우인 만큼, 당연하게도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았다. 이것이 단지 상상만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전문직으로 살아가는 김서형

‘아내의 유혹’에서의 호연으로 얻게 된 ‘악녀’ 이미지 외에 김서형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단연 전문직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출연작을 살펴보면 과장을 조금 보태 안 해 본 직업이 없을 정도다. 그 중에는 기자, 병원 이사장, 로펌 대표, 정당 대변인 등 흥미로운 직업도 많았지만 주로 조연이었기 때문에 표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JTBC ‘스카이 캐슬’에서 보여주었듯이 김서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접할 일이 없는 직업의 인물마저도 설득력 있게 표현해내는 배우다. 그런 그가 전문직 여성의 삶을 그린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는 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 MBC ‘하얀거탑’은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저마다의 욕망을 가진 의사들이 충돌하는 모습을 그려내며 ‘전문직 드라마’의 새 장을 열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기억할 만한 여성 의사 캐릭터는 없었다. 현실에는 얼마든지 드라마에 영감을 줄만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모두가 반대했던 외과의사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인물이나 여성 동료와 환자의 권익을 위해 여자의사회를 조직한 인물들처럼. 아예 여성들이 주축이 되는 산부인과를 배경으로 현실을 반영한 휴먼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특히 젊은 여성은 몰라도 중년 여성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면에서 꼭 보고 싶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김서형

김서형은 ‘스카이 캐슬’에서 가장 인상적인 본인의 연기에 대해 “집에서 한서진(염정아)을 기다리는 장면을 보고 ‘김서형이 어디 있지?’라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얼굴에 한껏 드리워진 그림자와 슈베르트의 ‘마왕’이 어우러져 위압적인 분위기를 내던 이 장면과 더불어, 명상실에서 학생들을 세뇌하고 결국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는 장면들은 단순한 ‘악인’을 뛰어넘어 김서형만이 가지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습들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다. 김서형에게 어울리는 것은 당연히 아나스타샤가 아니라 크리스찬 그레이 역이다. 원작에서 그레이 캐릭터는 남성이지만, 마성의 매력은 물론 재력까지 겸비한 여성 캐릭터로 재해석하는 것도 신선하고 즐거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관객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유머코드로 ‘스카이 캐슬’의 명상실 장면을 패러디할 수도 있다. 또 다른 리메이크 희망작은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여성 범죄 액션 영화인 ‘오션스8’이다. 개봉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판 가상 캐스팅’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는 화제작으로 김서형이 출연한다면 산드라 블록이 연기했던 데비 오션이나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했던 루 역할이 어울릴 듯하다. 사실 ‘오션스 8’의 어떤 역할이든 김서형은 자신의 색깔대로 잘 소화해 낼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영화 자체가 만들어지기 힘든 한국의 현실이다.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김서형

JTBC ‘아는 형님’에서 김서형은 그 동안 좀처럼 보여줄 기회가 없었던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마음껏 보여줬다. ‘노래방에 가고 싶어서 회식 때 끝까지 자리를 지킨다’는 일화나 음악이 살짝 나오기만 해도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춤을 추는 모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기에 큰 웃음을 자아냈다. 이런 김서형의 반전 매력은 시트콤에 제격이다. 실제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서형은 2012년 MBC 시트콤 ‘엄마가 뭐길래’에서 남편의 부도로 친정집에 얹혀살지만 소녀감성을 잃지 않는 박서형을 연기한 바 있다. 이는 실제 김서형의 모습과도 닮은 점이 있는데 바로 차가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순수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일본 NTV ‘호타루의 빛’이나 일본 TBS ‘너는 펫’의 주인공처럼 겉으로 보기엔 완벽하지만 사실은 ‘건어물녀’이거나 마음 약한 면모를 가진 인물로, 남몰래 노래와 춤을 즐기는 설정을 더해보면 어떨까. 집안에 ‘비밀의 방’을 마련하여 완벽한 방음시스템과 노래방 설비를 갖추어놓는다면 배우에게도 최고의 근무 환경이 될 터다. 한발 더 나아가 ‘왕년에 전설의 아이돌이었던 대형 기획사 사장님’ 같은 캐릭터를 맡아도 특유의 끼와 현역 아이돌 못지않은 외모로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을뿐더러, 숨겨둔 가무솜씨를 뽐낼 기회가 될 것이다.

민주화운동을 하는 김서형

일제강점기나 민주화운동처럼 한국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은 자주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작품들에서 여성의 역할은 아주 작거나 그마저도 지워지기 십상이었다. 물론 당시 사회에서 여성들이 설 자리가 적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럼에도 여성들은 서로 연대해서 부당한 시대에 저항해왔다. 역사의 현장에 남성들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당연히 여성이 주축이 되는 시대물도 나올 수 있다. 특히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대 지식인 역할에 김서형의 고전적인 외모와 특유의 카리스마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1987’에서 하정우나 이희준이 보여준 것처럼, 누군가의 희생을 헛되게 만들지 않기 위해 흰 셔츠를 걷은 채 바쁘게 뛰어다니는 김서형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민주화운동의 주체인 학생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영역에서 이들을 지원하는 어른의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성들의 민주화운동은 한 번도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앞으로 이러한 작품의 탄생을 기대해 볼만하지 않을까.

한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 김서형

김서형은 ‘아는 형님’에서 영화 ‘악녀’로 칸영화제에 갔을 당시 삭발을 하고 싶었고 그 이유에 대해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좋아해서’라고 밝혔다. 결국 삭발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투블럭 헤어에 과감하게 복근을 드러낸 슈트 정장으로 화제를 모았다. 한국의 배우로서는 드물게도 젠더리스한 매력을 보여준 것이다. 젠더리스는 몇 해 전부터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관통하는 키워드고, 크리스틴 스튜어트 역시 이러한 매력으로 샤넬을 비롯한 하이패션 브랜드의 뮤즈가 됐다. 김서형이 가진 젠더리스하고 패셔너블한 이미지를 잘 활용하면, 크리스틴 스튜어트처럼 인상적인 광고를 찍을 수도 있을 것이다. 중성적인 느낌의 향수나 지적인 이미지를 강조해줄 아이웨어 광고도 좋겠다. ‘여자가 보는 멋진 여자’라는 이미지에 기반한 광고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선견지명이 있던 한 제약회사에서는 이미 멋진 선배 김서형이 두통에 시달리는 후배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붙은 진통제를 건네는 광고를 만들기도 했다. 그야말로 ‘김서형이 다 할 테니’ 모델로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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