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널리티

전혜진, 배우가 세계를 넓힐 때

2019.02.13
*영화 ‘뺑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뺑반’에서 전혜진이 연기하는 우선영은 만삭의 임산부다. 동시에 그는 뺑반(뺑소니 전담반)을 이끄는 경찰 계장이기도 하다. 편안한 차림으로 태연하게 업무를 보던 우선영은 자신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은시연(공효진)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왜? 임신한 경찰 처음 봐?” 이는 은시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던 관객에게도 뜨끔한 한마디였다. 화려한 액션씬은 없지만, 우선영은 결정적인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부하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가 방탄유리를 사이에 두고 과거 경찰대 동기였지만 현재는 상반되는 입장의 윤지현(염정아)을 말만으로 여유롭게 제압하는 장면은 영화 속 어떤 장면보다 인상적이다. 드물게도 한국영화 속에서, 서로 다른 카리스마를 지닌 여성 리더들이 맞부딪친다.

그동안 전혜진은 영화 속에서 유난히 경찰 역할을 자주 맡았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테러대응센터의 팀장 박정민 역을 시작으로 ‘불한당’에서는 자신의 목표를 위해 동료마저 희생시키는 경찰청 팀장 천인숙을 연기했고, ‘희생부활자’에서는 프로파일러에 가까운 엘리트 형사 이수현으로 변신했다. 직업은 같은 경찰이지만 전혜진은 배역마다 조금씩 다른 결을 보여줬고, 이번 우선영 역도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도전이었다.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자신의 배역에 대해 “이전에는 성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경찰이었다면 우선영은 정반대되는 모습에 끌렸다. (우선영처럼) 리더십 있고 정의로운 사람이 선배나 상관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단지 경찰로서는 보기 드문 만삭의 외형뿐 아니라 우선영만의 특징에 집중했고, 덕분에 전혜진은 또 다시 새로운 경찰을 연기하게 됐다. 이는 영화든 드라마든 여성 배우에게 주어지는 배역이 한정적이고, 또 반복적인 상황에서 배우로서 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과거에도 전혜진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역할보다는 작은 역할들을 주로 맡았지만, 그럼에도 비중과 상관없이 언제나 자신만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배우였다. 그가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4년 KBS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7세 지능을 가진 윤서영을 연기하면서부터고, 결혼과 육아로 몇 년 간 활동을 접었다가 연기를 계속해야겠다고 다짐한 것은 ‘마지막 작품이라고 까지 생각했던’(‘오마이뉴스’) 영화 ‘사도’에서 가장 힘없고 초라한 영빈을 연기한 이후의 일이다. 큰 배역이 아니더라도, 어떤 배우는 그 속에서 특별한 무언가를 찾아낸다. 또한 그 과정은 다름 아닌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2017년과 2018년은 전혜진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해였다. 영화 ‘불한당’으로 팬덤의 환호를 받기도 했으며, JTBC ‘미스티’에서 모처럼 드라마 주연을 맡아 좋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미스티’가 끝나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로서는 소화할 역할을 더 확장하고 싶은 바람이 있고,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나이 드는 과정을 기록처럼 남기고 싶다”(‘그라치아’)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2019년 그의 첫 영화 ‘뺑반’에서 전혜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또 한 발자국 자신의 세계를 넓혔다. 항상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라는 이유 외에도, 전혜진이라는 여성을 기꺼이 응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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