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반’이 달린 길은 어디서 잘못된 걸까

2019.02.11
* ‘뺑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명량’을 넘느냐 마느냐. ‘극한직업’의 지칠 줄 모르는 흥행 가도에는 사실 경쟁작의 부진이 큰 역할을 했다. 문화의 날 개봉해 설 연휴 특수를 길게 누렸음에도 손익분기점 320만 명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뺑반’ 얘기다. 상업영화의 패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정확성을 확보하기에 태생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 작품에서 최근 한국 영화계의 양면적인 입장이 읽힌다는 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뺑반’의 도입부는 이러하다. 광역수사대 내사과 소속 은시연(공효진) 경위는 JC 모터스의 정재철(조정석) 의장의 비리를 파헤치던 중 과잉 수사 논란으로 뺑소니 전담반, 줄여서 ‘뺑반’으로 좌천된다. 이 조직은 만삭의 교통계장 우선영(전혜진), 사건 분석에 천재적인 감각을 가진 듯한 서민재(류준열) 순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연과 민재가 처음으로 함께 나간 현장에서 레커차 기사 한동수(김기범), 구급대원 여정(박예영) 등도 만나게 된다. 매뉴얼 없이 감으로 추리하는 서민재, 그를 전폭적으로 신뢰하는 뺑반의 수사 방식은 은시연을 당황시킨다. 새로운 세계에 발을 내디딘 외부인과 내부인이 서로의 영향을 주고받는 성장 서사. 그리고 절대 악인을 응징하는 범죄 액션 영화의 쾌감. 또 ‘베테랑’, ‘범죄도시’ 류의 경찰 범죄 액션 영화냐 싶지만 은시연과 우선영, 여기에 더해 우선영의 경찰대 동기이자 현 내사과 과장 윤지현(염정아)으로 이어지는 여성 경찰들의 관계나 ‘뺑소니 전담반’이라는 미개척 소재는 경쟁력이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한국적 ‘카 액션’도 기대 포인트가 된다.

그런데 ‘뺑반’은 어느 순간부터 서민재의 이야기로 돌변한다. 원래도 운전 천재였고 현재도 뺑반 에이스이며 앞으로도 비범할 서민재에게는 마약 운반책이자 폭주족이었다는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 자신을 아버지처럼 보듬어준 서정채(이성민)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서정채의 죽음 이후 스스로 뼈를 부러뜨려 수갑을 풀고 자동차로 몸을 던지는 패기까지 보여준 그가 정재철을 죽이느냐 마느냐 기로에 서는 게 ‘뺑반’의 주 갈등이 된다. 순경 정직을 당한 후 시골에 내려가 있는 ‘재야의 은둔 고수’ 서민재를 찾아간 은시연이 “니가 꼭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너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는 마지막 신에 이르면, 이렇게까지 하는 데도 ‘뺑반’이 서민재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겠냐고 확인 사살을 하나 싶을 정도다. 극의 중심 인물이 옮겨가는 스토리텔링이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이런 선택을 한 각본이라면 처음 극을 여는 ‘관찰자’ 은시연과 뺑반 시스템에 대한 소개는 좀 더 짧게 치고 갔어야 한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나면 이 부분은 결과적으로 군더더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민재의 이야기는 딱히 독창적이지도 흥미롭지도 않다. 영화는 서민재가 “아버지가 싫어하니까” 어차피 처음부터 사람을 죽일 이가 못 된다고 묘사한다. 갱생 이후 내내 완벽했던 캐릭터가 사실상 정해진 결말로 나아가는 플롯의 승부수는 흐릿하다. 또한 그의 대립각에는 갱생하지 않은 남자 정재철이 있는데, 차압 딱지가 붙고 부모가 자살했다는 과거사부터 비뚤어진 폭력성을 반복적으로 늘어놓으며 시간을 할애한다. 이러한 두 남자의 맞대결을 향해 질주하는 전개는 한국 영화에서 빈번하게 봤던 그림이다. 은시연도 JC 모터스 기술 이사를 취조한 내용(이는 순경인 서민재가 진행한다)을 녹음해 윤지현에게 넘기거나 정채절의 비리가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해 경찰청장을 몰락시키는 등 몇 가지 일을 했지만, 큰 줄기에서 이는 전부 두 남자의 대결을 위한 보조다. 경찰 주요 보직에 여성들을 배치한 접근이나 뺑반 및 주변 시스템 묘사가 훨씬 신선한 아이템이라, 이쪽으로 상상력을 발휘했다면 더 근사한 이야기가 나왔으리라는 아쉬움을 떨칠 수 없다.

최근 한국 영화계는 아무리 스타 배우가 나와도 관객이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흥행에 참패하고(‘마약왕’, ‘PMC: 더 벙커’ 등), 유명 감독이라도 예외는 없었으며(김지운 감독의 ‘인랑’, 이준익 감독의 ‘변산’, 연상호 감독의 ‘염력’ 등), 흥행 불모지로 치부됐던 호러(‘곤지암’)나 로맨스(‘너의 결혼식’)가 뜻밖의 성공을 거두기도 하는 이변이 벌어지고 있다. 스타를 기용한 대규모 프로젝트일수록 제작자들이 예산을 감당하기 위해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요즘 시대 관객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신선한 기획이 돋보이는 ‘완벽한 타인’이나 눈물 코드 없이 코미디만을 밀어붙인 ‘극한직업’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 ‘뺑반’은 모험과 안전한 길을 모두 포기하지 않은 사례다. 뺑소니 전담반과 카 액션, 여성 경찰 캐릭터가 한국 영화의 새로운 시도였다면, 경찰과 범죄자 두 남자의 대결로 이어지는 클라이맥스가 후자다. 영화는 전자가 후자를 빛내는 장식이 되는 길을 선택했고, 솔깃했던 설정도 그나마 매력을 발산하지 못하게 만들 만큼 궁합이 좋지 않다. 가령 ‘뺑반’의 여성 캐릭터들은 이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고, 정말 설정만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 2019년에 두 여성이 맞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어떤 관객에게는 신선할 수도 있겠지만, 이 신에서마저 은시연과 여정은 서민재의 과거를 구구절절 대사로 풀어주는 기능에 그친다. 뺑소니 전담반과 그 주변 인물들의 관계는? 두 남자의 카 체이싱 대결을 위해 구급대원과 레커차 기사가 눈물을 흘리며 도로를 막는 일을 도와달라고 무전을 보내는 역할이 정말 최선이었을까.

본의 아니게 ‘뺑반’이 업계에 주는 미덕이 있다면, 모험과 안전이라는 변수를 어떻게 설정하고 배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창작자들이 눈여겨볼 사례가 됐다는 것일 테다. 공교롭게도 매체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따르면 ‘뺑반’은 “뺑소니 전담반을 다룬 신선한 소재와 통쾌한 전개, 시원한 카 액션과 매력 넘치는 캐릭터 조합이 더해져 기대를 높이”며 “뺑반부터 비공식 전문가들까지, 뺑반 패밀리의 놓칠 수 없는 팀워크가 폭발적인 시너지로 풍성한 재미를 전하”고“개성 넘치는 여성 캐릭터들이 펼칠 강렬한 활약으로 더욱 기대를 모으”는 영화다. 마케팅은 요즘 시대 관객에게 ‘신선한 소재’나 ‘놓칠 수 없는 팀워크’, ‘개성 넘치는 여성 캐릭터’를 내세우지만, 보수적인 결론을 향해 질주한 결과물은 시장에서 어느 정도 주효했나. ‘뺑반’이 선택한 길은 정말로 ‘안전’했을까. 아무쪼록 이런 식으로 기대와 실망을 함께 안겨주는 작품은 올해 ‘뺑반’이 마지막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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