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스플레인

‘마틸다’의 이야기

2019.02.11
이미 소설과 영화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마틸다’는 2010년, 영국에서 뮤지컬로 제작됐다. 미국 전역과 호주, 캐나다, 필리핀을 거쳐 지난해 9월 한국 무대에 올랐던 이 뮤지컬은 지난 10일 한국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올렸다. 뮤지컬 ‘마틸다’가 소설이나 영화와 가장 다른 내용은 마틸다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자신의 아이가 특별한 능력을 타고났다고 믿는 극성스러운 부모들이 흔한 세상에서, 아이의 재능은 커녕 양육에도 관심이 없는 부모를 가진 마틸다가 스스로 글을 익히고, 생존 방식을 체득해가는 것은 같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실질적인 성장을 하고,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도서관 선생님에게 하며, 현실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뮤지컬에만 있다.

마틸다의 부모인 웜우드 부부는 마틸다가 좋아하는 책에 전혀 흥미가 없고, 이야기에 놀라운 재능을 가진 마틸다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마틸다의 학교 크럼첸홀의 교장인 트런치불도 이야기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고 현실 원칙을 비정하게 내세우며, 자신의 한계를 알고 그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승리의 방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다 해도, ‘마틸다’에는 여러 화자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마틸다와 친구들은 등교 첫 날, 학교 교문을 처음으로 통과하면서 상급생들에게 앞으로 닥칠 끔찍한 학교생활과 악명 높은 트런치불의 체력 단련 시간 이야기를 듣는다. 마틸다는 행복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도서관 사서 펠프스 선생님 앞에서 자기 부모와의 관계를 꾸며내고, 트런치불은 국가대표 올림픽 챔피언이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반복한다. 또한 마틸다가 현실에서 채집한 단어들로 지어내 세 번에 걸쳐 들려주는 탈출 마술사와 공중 곡예사의 이야기가 있고, 도서관에서는 끝내 이야기하지 못하고 홀로 남은 자신의 방에서 발견하게 된 그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도 있다. 이 모든 이야기에서 어디까지가 꾸며낸 이야기이고, 어디서부터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인지, 관객들은 극이 끝날 때까지 좀처럼 파악하기 어렵다.

그 중 마틸다가 만들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가 처한 현실과 욕망의 반영이면서, 새롭게 써내려가는 자신만의 세계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다툼에서 시작된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탈출 마술사와 공중 곡예사는 각자 위대한 재능과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면서 서로 무척 사랑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 이 욕망은 쉽게 실현되지 않는다. 주인공의 욕망의 실현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공중 곡예사의 언니의 비정한 현실 원칙이다. 현실에서 가져온 마틸다의 이야기는 극이 진행될수록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는 현실을 만들어낸다. 처음에는 어른들의 언어가 마틸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지만, 극 중반을 지나면서는 마틸다의 언어가 이야기 밖으로 나가 현실의 어른들에게 도달한다. 마틸다는 처음으로 자신을 진실한 눈으로 바라봐준 허니 선생님에게 자신의 초능력과 부모와의 관계를 고백한다. 그 후 초대를 받아 허니의 집에 들어서자 마자 내뱉은 말은 "선생님, 가난해요?”였다. 부모가 무관심할지언정 가난은 경험해본 적은 없는 아이가, 책에서만 보던 가난을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어른이 처한 현실로 마주해 맥락에 맞는 단어로 표현한 순간이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허니선생님의 이야기는 마틸다가 처음 내뱉은 “선생님, 가난해요?” 라는 말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마틸다가 허니 선생님의 진실한 눈 앞에서 가상의 부모 이야기에서 벗어나 제 부모의 비정함을 고발하듯, 허니도 마틸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고백하고, 그제서야 용기를 내어 그 안온한 환상에서 빠져나올 마음을 먹게 된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실존의 감각을 자극하며 그것이 현실인지, 그저 이야기인지 알 수 없게 되어 현실과 이야기가 강렬하게 겹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마치 펠프스 선생님이 마틸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온 감각을 동원하여 몰입해 다른 세계에 가 있다 커튼콜이 올라가며 '이건 그냥 이야기에요'라고 외치는 순간이 되어서야 그것이 극이고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는 일이 자주 있고, 그렇게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마틸다’에는 10세 내외의 어린 배우들이 출연하는데, 그들은 아직 이야기 이상의 세계를 경험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이 역할에 더욱 적합하다. 이것은 현실과 이야기가 중첩되어 양쪽을 모두 실존의 감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이 남아있는 어린 배우들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원한다고 해도 어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아이들은 말하고 어른들은 듣는다. 어른들은 이 어린 배우들이 어렴풋한 인상을 갖고 전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의 현상을 재해석하고 반성할 기회를 갖는다. 문장은 커녕 ABC도 제대로 읽을 줄 몰랐던 아이들이 허니 선생님의 상냥한 안내로 글을 깨우치고, 최종적으로는 칠판에 적힌 문장을 스스로 읽게 되는 과정을 통해 학교의 악을 몰아내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서 비영어권 최초로 ‘마틸다’가 무대에 오른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왕이 문자를 만들어 백성들이 글을 읽고 정보를 얻어 스스로의 인생을 꾸려나갈 힘을 갖기를 바란 역사를 가진 이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문맹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어른들이 해야할 질문은 단순히 읽는 것에 끝나지 않고, 이것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쓸까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그동안 없었던 새 이야기를 써가는 것이 다음 세대의 과제다. ‘마틸다’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젠 이 기억을 소환하는 것으로만 재생할 수 있는 성장기 아이들의 공연이었다. 이 기억은 어떻게 남아 이야기의 재료가 될까. 비슷한 연배의 영어권 친구들은 최초로 대극장에서 관람한 극이 ‘라이온킹’이라고 말하곤 했다. 내 아이가 인생 최초로 경험한 뮤지컬은 ‘마틸다'다. ‘라이온킹’이 인생 최초의 뮤지컬인 세대와, ‘마틸다’가 최초의 뮤지컬인 세대는 아마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쓸 것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2019년 대한민국에 ‘마틸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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