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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페미니스트들의 모임

2019.01.28
©Shutterstock
는 결혼하고, 출산한 후에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 가정의 차별적인 환경에 의해, 누군가는 직장 내 성차별에 의해, 누군가는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과 같은 사회적 이슈를 통해 페미니스트가 되지만 나의 경우는 학교나 회사를 다니면서는 이렇다 할 장벽을 경험하지 못했다. 차별이 있었지만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적당히 잘 살았다.(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운이 좋았다.)

그러나, 결혼 생활에서 마주하는 부당함과 억압은 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결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그 어느 시절보다 절실하게 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여자니까’, ‘엄마니까’, ‘아내니까’, ‘며느리니까’ 감당하고 참아야하는 일들이 관습과 통념이라는 대의에 의해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화목하고 평화로운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의 인내, 양보, 희생, 침묵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했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포기하면서 ‘역할’로 사는 삶이 시작됐다.

충분한 인정이나 위상도 없다. 사회적으로 기혼, 출산 여성에게 쌓여가는 차별과 혐오의 장벽은 높고 견고하다. ‘경력단절 여성’, 제3의 성이라 불리는 ‘아줌마’, 도로 위의 폭탄 ‘김여사’, 전업주부를 ‘동네에 남아도는 아줌마’를 줄여 ‘동남아’라고 비하하고, 남편이 고생해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커피나 마시는 ‘맘충’이라고 무시한다. 엄마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이게 다 무슨 말인지. 결혼과 출산을 선택함과 동시에 ‘무능’과 ‘혐오’가 반드시 따라온다는 사실에 허무했다. 남편과 나의 삶은 명백히 달랐다. 남편도 아빠의 역할을 하며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능해지거나 혐오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왜 벌레가 되었을까? 왜 무능해졌을까? 혼자서 생존이 불가능한 아이를 돌봤을 뿐인데 왜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내가 무능해진 책임은 육아를 선택한 나에게 있나? 그 선택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교사나 공무원처럼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했던 나를 탓해야 하나? 남편이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이유로 남편과 남편 집안을 우선하며 낮은 자세로 살아야만 하나? 돌봄 노동은 왜 임금 노동만큼 충분히 존중받을 수 없나? 엄마라면, 엄마니까 희생은 당연한가? 질문이 쌓여만 갔다.

결혼 전에는 한 ‘사람’이었지만, 결혼 후에는 철저하게 한 ‘여성’으로 존재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성별이 삶을 결정한다. 그 삶은 제한된 범위에서 최소한의 선택만이 가능한 삶이라 숨이 막혔다. 그때 내게 희생자나 조력자가 아닌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준 게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차별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을 직시하며 슬프기도 했지만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는 것이 유익하고 통쾌하고 즐거웠다. 여성주의 언어를 통해 내가 느끼는 불합리와 분노에 대해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풀리지 않는 답답함을 마주해야 했다.

일상에서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의 ‘역할’에 숨이 막혔는데, 페미니스트 모임에서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육아 고민은 꾹꾹 눌러두고 그들과 별개의 존재인 ‘나’의 성장에 집중해야 페미니스트답게 보였다. 결혼하고,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복잡하고 다양해서 단편적으로 말하기 어려웠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그러니까 비혼, 비출산, 탈혼이 답이야”라는 말을 했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여성은 기존 가부장 질서를 견고히 하는 ‘가부장제 부역자(혹은 배신자)’로 부르기도 했다.

비혼, 비출산의 뜻을 가진 이들을 존중하고 지지하지만 이미 결혼했고, 출산한 나와는 결이 달랐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사람들과 깊이 있는 논의는 어려웠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결혼과 출산을 후회해봐야 달라질 것은 없기에 “비혼, 비출산이 답이다”는 말은 공허하고 아팠다. 내가 엄마 페미니즘 탐구모임 ‘부너미’를 만든 이유다.

부너미는 결혼하고 출산한 상황에서부터 시작한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의 정체성 그대로의 나에서부터 더 나은 삶을 위해 질문한다. 가부장제의 구조 속에서 기혼, 출산 여성들이 어떤 고민을 마주하게 되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어떤 전략과 노하우를 찾고 있는지 공유하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우리 사회에 페미니스트 엄마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더 많은 엄마들이 ‘역할’이 아닌 한 ‘사람’으로 유쾌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우리 사회가 “비혼, 비출산, 탈혼이 답이다”라는 말이 아닌 다른 대안도 상상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엄마들이 느끼는 부당함과 답답함이 언어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우린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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