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의 아쉬운 영리함

2019.01.24
*영화 ‘그린 북’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그린 북’의 줄거리는 새롭지 않다. 백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가 명망있는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의 운전기사가 되어 그의 미국 남부 콘서트 투어에 동행한다. 사회적 배경과 인종이 다른 두 사람이 우정을 쌓으며 차이를 극복한다는 내용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나 ‘언터처블:1%의 우정’ 등에 이미 있었던 설정이다. 다만 ‘그린 북’은 여러 면에서 흑인에 대한 스테레오타입과 다른 셜리를 통해 익숙한 주제의식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명망있는 피아니스트이며 심리학 박사인 셜리는 학식과 교양, 경제적 부를 동시에 쥔 흑인이다. 백인 중에서도 비주류인 이탈리아계 이민자인 토니는 편지의 맞춤법을 틀릴 만큼 교양이 부족하며 셜리의 운전사로 일한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양복을 입어볼 수 없거나, 화장실 이용을 거부 당하거나, 단지 피부색을 이유로 조롱받는 차별은 오롯이 셜리의 몫이다. ‘인종을 이유로 차별을 당한다’는 명제를 ‘개인의 재능이나 사회적 지위로 차별을 피할 수 없다’는 명제로 구체화하면서, ‘그린 북’은 주제의식을 좀 더 발전시킨다.

이처럼 정치적 올바름(Poilitical Correctness)을 주제로 하는 영화는 항상 상업성과의 균형에 대한 과제를 안는다. ‘그린 북’은 교훈적인 줄거리를 보다 흥미롭게 전달하기 위해 로드 무비와 버디 무비, 그리고 코미디의 형식을 조합한다. 남부 투어 목적지에 도달할 때마다 셜리가 바에서 폭행과 조롱을 당하거나, 화장실 사용을 거부당하는 등의 사건들이 이어진다. 토니가 그런 차별을 지켜보고 함께 해결하며 점차 셜리와 가까워지는 과정도 묘사된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의도한 장면들이 함께 그려진다. 토니의 행동에 정색하는 셜리의 모습이나, 토니의 편지를 셜리가 고쳐주는 장면 등 웃음을 의도한 장면들이 주제가 주는 지루함이나 긴장감을 완화시킨다. 피터 패럴리 감독은 1990년대 코미디 영화로 성공한 경력을 증명하듯 인종차별을 소재로 한 영화에 코미디의 요소를 배치, 문제의식을 지루하지 않게 전달한다. 정치적 올바름과 상업성 사이의 균형을 찾는 영리함은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 이어졌다. ‘그린 북’은 제22회 할리우드 영화제 각본상, 전미비평가 위원회 시상식(NBR AWARDS) 작품상, 제43회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 제 72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및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제 30회 미국 프로듀서 조합상(PGA) 등을 휩쓸었다. 이미 ‘그린 북’의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및 수상 여부에도 이목이 몰린 상태다.

그러나 ‘그린 북’에서 토니는 켄터키 주에 들어서자 프라이드 치킨을 구입하며 셜리에게 먹으라 강요한다.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즐기지 않던 셜리는 우아하게 사양하다 치킨 맛을 본 뒤 두 번째 조각을 받아들고, 이후 치킨 뼈를 바깥으로 함께 던지는 토니와 셜리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은 지배 계급이 버린 날개와 발, 목 부위를 흑인 노예들이 주워와 기름에 튀겨 만들어진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차별의 당사자가 아닌 토니는 차별의 당사자인 셜리에게 치킨을 먹기를 강요하며 "당신네 사람들은 캔터키 프라이드 치킨에 옥수수 좋아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이처럼 차별에 무지한 토니의 발언은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싶다는 선의로 희석되며 웃음을 유발하고, 그의 발언으로 인한 두 사람의 긴장감은 치킨의 맛에 대한 유대감으로 해소된다. 파티장에서 자신에게 제공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보고 불편한 미소를 지어야 하는 셜리와 달리, 토니는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단순히 맛으로서 즐길 수 있고 “나는 이탈리아인들이 스파게티나 피자 좋아한다고 해도 기분 나쁘지 않던데”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토니의 경제적 수준이나 사회적 배경과 무관하게 그가 백인으로서 쥐는 문화적 권력이다. ‘그린 북’은 영화가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웃음을 조합하면서 문화적 권력의 차이를 개인의 문제로 단순화하고, 이를 개인의 유대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처럼 묘사한다.

영화 초기의 토니는 집에 방문한 흑인 수리공들이 마신 물컵을 버릴 정도로 차별적인 인식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고, 흑인 대중음악을 잘 알지 못하는 셜리에게 “당신네 음악”이라 말하기도 한다. 영화는 이런 토니의 모습이 차별적이라는 지점을 묵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학식과 교양을 갖춘 셜리 역시 비슷한 한계를 가진 인물로 묘사된다. 셜리는 토니에게 교양있는 말투를 쓰라 말하고, 그의 발음을 교정하라 요구하며, 심지어 ‘발레롱가’라는 성이 발음하기 어려우니 ‘발레’로 줄이자고 제안하기도 한다. 이는 토니의 이탈리아계 정체성에 대한 셜리의 편견을 드러내는 장치다. 백인과 흑인이라는 각자의 정체성과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의 편견이 동등하게 놓이면서, 영화의 초점은 자연히 “우리 모두에게 극복할 편견이 있다”는 평등주의적 시각으로 회귀한다. 이는 연대의 장치로서는 유효하지만, 흑인이 약자로서 경험하는 사회적 편견의 맥락은 자연히 희석된다. 토니의 편견과 셜리의 편견이 비슷한 위치에 놓이고, 토니가 그런 셜리를 각종 위기에서 구하며 그에게 면죄부가 주어진다. 반면 셜리에게 물리적·정신적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토니와는 다른 백인으로서 악마화된다. 여기에 1962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적용되면서 인종차별은 ‘일부’의 이야기이자 머나먼 과거처럼 묘사된다.

그린 북’에는 놀라운 수상 실적과 함께 다양한 논란이 따라붙었다. 영화 속 주인공 토니 발레롱가의 아들이며 각본가인 닉 발레롱가는 지난 2015년 트럼프의 무슬림 혐오 발언에 동의하는 트윗을 올렸다가 계정을 삭제하며 사과했고, 피터 패럴리 감독은 과거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촬영장에서 자신의 성기를 노출했던 사실이 밝혀지며 논란이 됐다. 심지어 주연 배우인 비고 모텐슨은 ‘그린북’의 줄거리를 소개하며 ‘검둥이(Nigger)’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영화 관계자들이 영화의 주제와 배치되는 언행을 보이는 모습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그들이 가진 의도를 의심하게 하는 지표일수는 있지만, 논란의 엄중함과 별개로 영화 외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유족들이 이 영화에 대해 “그린북은 전부 거짓말”이라며 문제를 제기한 부분만큼은 영화의 주제의식과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다. 유족들은 영화에서처럼 두 사람이 깊은 우정을 쌓은 사이가 아니었고, 심지어 셜리가 30년 전 영화화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음(inspired by a true story)’이라는 자막을 첫 화면에 띄운 영화가 무조건 사실 그대로를 묘사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러나 돈 셜리의 목소리가 삭제된 채 닉 발레롱가의 대본만으로 제작되면서, ‘그린 북’은 결과적으로 백인의 시각만으로 흑인과 백인의 유대를 그린다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됐다. 몇몇 의미있는 장면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된 한계들로 인해 ‘그린 북’은 적당히 즐길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린 북’에 대해 “우리나라(미국)가 그 어느 때보다도 분열된 시대에 이 영화는 구원의 가능성을 제공한다”(‘Rollingstone’)는 평과, “역사적인 인종차별을 영화로 만들 때 현실을 회피하려는 할리우드의 불행한 경향을 보여준다”(‘Vox’)는 상반된 평이 공존한다. 정치적 올바름을 주제로 하는 영화가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불화의 역사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대중적인 각광을 얻는 것만으로도 유의미할 수 있다. ‘그린 북’의 등장은 ‘문라이트’나 ‘셰이프 오브 워터’ 같은 영화들이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고, ‘블랙 팬서’나 ‘오션스 8’처럼 영화계에서 소외됐던 흑인과 여성의 서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점차 시장에 등장하는 흐름의 일부이기도 하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그린 북'이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받을 때 피터 패럴리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대화이고, 사람들을 그들의 차이로 판단하지 않으며 우리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원한다. 우리는 모두 사랑과 행복, 그리고 동등하게 대해지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린 북’에는 단순히 공통점을 찾는 것을 넘어 서로가 가진 차이가 결코 동등하지 않다는 사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린 북’이 영리함만이 아닌, 조금 더 예리한 영화였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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