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파티’, 다시 나로 돌아가는 시간

2019.01.17
tvN ‘아모르파티’의 구성은 꽤나 익숙하다. 이별이나 사별로 홀로 살고 있는 60-70대를 ‘싱혼’이라 칭하고 이들이 모여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들의 연예인 자녀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이를 지켜본다. 여행지에서 가이드 역할을 하는 박지윤과 손동운, 스튜디오에서 진행을 하는 강호동을 제외하면 제작진의 개입이랄 것도 거의 없다. 이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해온 관찰 예능의 전형적 형태다. 하지만 ‘아모르파티’에서 관찰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 다르다. 자녀들에게 부모가 아닌 부모의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1화에서 허지웅은 “우리 엄마만 알았지. 김현주라는 사람은 잘 모른다”고 단언했다. 다른 출연자들 역시 부모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며 ‘언제나 나와 함께 있는 사진만 봤지, 저렇게 혼자 찍힌 사진을 보니까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대부분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장 가까이에 존재했던 인간이고, 그를 부모가 아닌 타인으로 지켜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스튜디오에 모인 자녀들은 이 낯선 모습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들은 승선 갈라 디너를 위해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부모들이 차례로 등장하자 쑥스러워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허지웅과 이청아는 크루즈 위에서 영화 ‘타이타닉’의 유명한 포즈를 따라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아모르파티’에서 여행은 부모가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도록 만드는 장치다. 누군가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닌 각각의 개인으로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점차 관계를 맺어가고, 그 과정에서 자녀들조차도 몰랐던 모습들이 드러난다. 발만 보고도 자신의 아버지를 알아본 이청아에게도, 아버지가 여태껏 단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하휘동에게도 이는 새로운 경험이다. ‘아모르파티’는 얼핏 혼자가 된 노인들에게 친구 또는 연인을 만들어주는 프로그램처럼 보이지만, 사실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관계를 뛰어넘어 부모와 자녀가 새롭게 서로를 마주하는 과정에 가깝다.

일본 아리타 도자기마을에서 기뻐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던 허지웅은 도자기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이별한 후 노점상까지 하며 자녀들을 먹여 살렸던 어머니의 유일한 숨구멍’이었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하휘동은 여행을 즐기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차를 끌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이별 후 일에만 매달렸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아차렸다. 부모는 자녀에게는 미처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 옛날 부모의 나이가 된 자녀는 이제야 몰랐던 부모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4화에서 나르샤의 어머니는 5-6년 전부터 겨우 행복하게 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녀의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사회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시기. 반면 부모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약해진다. 즉, 남은 인생을 더 이상 누군가의 부모가 아닌 자신으로서 살아가야 할 때가 온다.

그 시기에 어린 시절 할 수 없었던 공부를 하며 보람을 느끼는 나르샤 어머니의 사례도 있지만, 암수술을 하면서 자녀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했던 배윤정의 어머니나 하휘동의 아버지 같은 사례도 적지 않다. 노화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까지 결정해야 한다. 그 시점에 주목한 ‘아모르파티’는 새로운 환경과 자극, 그리고 관계를 통해 오랜 시간 스스로를 가둬두었던 사람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배윤정의 어머니는 인공관절 수술을 한 뒤 넘어지는 것을 두려워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비오는 날 등산을 하거나 카트를 타고 낯선 도쿄의 도로를 질주하게 됐다.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사람들과의 관계마저 피했던 허지웅의 어머니는 뭐든 배우려고 하는 나르샤의 엄마에게 좋은 자극을 받았다며 고마움을 표현했고, 여행 초반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하휘동의 아버지는 언제나 밝고 적극적인 이청하의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아 여성들에게 꽃을 선물하거나 무반주에 춤을 출 정도로 달라졌다. ‘아모르파티’는 ‘싱혼의 청춘 찾기’를 내세웠지만, 역설적이게도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은 청춘들만의 몫이 아님을 보여준다.

비슷한 포맷의 SBS ‘미운 우리 새끼’는 부모의 영향력 밖의 자녀에게 어떻게든 관여하고 싶은 부모세대의 욕망을 담아냈다. 이 프로그램은 성인이 된 자녀를 여전히 철없는 아이로 보는 시각과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녀를 어떻게든 정상가정에 넣고자하는 바람을 숨기지 않았다. 반면 ‘아모르파티’는 배우자와의 이별 또는 자녀의 독립으로 해체되기 시작한 가정 속에서 부모마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누군가에게는 고여서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노년의 삶도, 사실은 얼마든지 새롭고 즐거울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지난 13일 방송된 ‘아모르파티’ 6화에서 1기 싱혼들은 무사히 여행을 마쳤고, MC 강호동은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어머니, 아버지 대신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이들의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목록

SPECIAL

image 한국, 광고, 혐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