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명석의 This is it

청하의 성장

2019.01.16
청하가 솔로 데뷔곡 ‘Why don’t you know’에서 신곡 ‘벌써 12시’에 이르는 과정은 누군가와의 연애담처럼 보인다. ‘내 맘이 안 보일까봐 close to me’, ‘네 맘을 모르겠어 더 close to u’(‘Why don’t you know’)라며 상대방에 대한 마음으로 안절부절하던 그는 결국 ‘심장이 훅 내려앉게 달콤해’, ‘나를 꼭 더 안아줘’(‘Roller Coaster’)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상대방과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너의 Deep brown eyes’를 보며 ‘네가 왜 좋을까 생각했어’라며 더 구체적으로 서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곡의 제목은 직설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Love U’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상대방의 마음도 알지 못해 안절부절하던 그는 ‘벌써 12시’에서 ‘아쉬워 벌써 12시 / 어떡해 벌써 12시네 / 보내주기 싫은 걸’이라며 상대에게 마음을 쏟아붓는다.

노래 속 연애의 변화는 무대 위 청하의 변화와 이어진다. 청량한 분위기의 ‘Why don’t you know’의 후렴구에서 댄서들과 기차 놀이하듯 줄을 선 채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던 그는 ‘Roller Coaster’의 후렴구에서는 가운데 서서 춤을 추되 귀여운 동작들을 보여줬다. 반면 ‘벌써 12시’에서는 강하고 절도있거나, 몸을 조금씩 흔들면서 앞으로 걸어나오는 스웨그가 있는 동작들로 바뀌었다. ‘Roller Coaster’에서 입던 핫팬츠와 크롭탑도 정장 스타일이나 롱부츠를 활용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Roller Coaster’에서 댄서들과 똑같이 누워 다리를 강조하는 도입부를 보여주던 청하는 ‘벌써 12시’에서 누워 있는 댄서들 위로 군림하는 듯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청량'에서 ‘걸크러시’ 콘셉트로의 변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사이 청하의 마음은 누군가를 좋아해도 제대로 표현조차 하지 못했던 것에서 밤 12시가 넘어도 ‘보내주기 싫은’ 것으로 바뀌었다. 갑자기 콘셉트만 변한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갖는 마음의 변화가 그 사람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의 변화로 이어졌다.

‘벌써 12시’에서 청하는 ‘늦으면 더 늦어지면 어쩌면 다 놓아버릴지 몰라’라며 좀처럼 자제가 안 되는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표현은 결국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벌써 12시’에서 청하는 자신만만하다. 아마도 관계의 중심이 그에게 옮겨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12시’라는 일종의 선을 넘는 것에 여전히 조심스럽다. 처음 만났을 때는 상대의 마음이 어떤지 몰라 안절부절하던 사람이었다. 관계가 변하며 마음가짐이 달라져도, 근본적인 성격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을 멋지게 유혹하고도 싶다. 여성 가수에게 '청순', '섹시', '걸크러시' 등이 콘셉트의 의미로 쓰일 때, 청하는 그 단어들을 마음의 표현 방식으로 이해하며 그 사이를 오가는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며 선명하게 표현한다.

청하는 Mnet ‘프로듀스 101’에서 춤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결성된 걸그룹 I.O.I에서도 춤을 잘추는 것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솔로로 데뷔하며 춤의 테크닉을 강조하거나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세우는 캐릭터를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사랑의 시작부터 가장 좋을 때에 이르는 연애담 속에서 노래마다 어울리는 캐릭터를 표현했다. 그 사이 청량한 분위기 속에 설렘을 노래하던 가수는 ‘벌써 12시’의 후렴구에서 낮은 목소리로 상대를 유혹한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이래도 될까 싶은 망설임이 함께 있다. 그는 여성의 연애 감정에 따른 미묘한 변화를 댄스 가수의 퍼포먼스로 보여주면서, 갈수록 복합적인 감정들을 한 무대 위에서 보여준다. 그 결과 청하는 폭 넓은 콘셉트를 소화하면서도, 일관성있게 자신의 캐릭터를 유지한다. 자신의 현재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곡 선택과 그것을 어울리는 방식으로 소화시킨 프로듀싱의 결과다.

선미는 여성이자 스타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을 ‘가시나’, ‘주인공’, ‘사이렌’으로 보여줬다. 특히 ‘사이렌’은 여성 뮤지션이 댄스 음악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완벽한 답이었고, 2018년 한국 대중음악 산업의 가장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 이것은 정체성을 깨닫고 자신을 드러낸 슈퍼 히어로의 등장과도 같은 충격이었다. 반면 청하는 선미를 동경하는 동시에 자신의 연애 때문에 마음이 복잡한 여성들의 심리를 무대 위에 올렸다. 지금의 음원 차트가 증명하듯, 그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한국 대중음악 산업에서 여성의 여러가지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이 조금 더 더 다양해졌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더 많아졌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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