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캐슬│① 한서진이 가진 것

2019.01.15
JTBC ‘스카이캐슬’의 가상의 연합주택 ‘스카이캐슬’은 주남대의 대학병원 및 로스쿨의 정교수들만이 입주할 수 있다. 거주자들은 이곳을 “돈이 많다고 해서 들어올 수 없”다며 자랑스러워 하고, “대대손손 스카이캐슬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란다. 주남대 의대 교수 강준상(정준호)의 부인 한서진(염정아)이 딸 강예서(김혜윤)의 서울의대 입학에 인생 전체를 거는 이유다. 강준상은 스카이 캐슬의 현재 입주권을 받았고, 한서진은 자식들을 교육시켜 미래의 스카이캐슬 입주권을 받을 수 있는 신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강예서를 통해 ‘3대째 의사가문’을 완성시키려는 시어머니 윤여사(정애리)를 만족시키고, 스카이캐슬의 주민으로 남을 수 있다. 그는 남편과 시어머니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도축업자의 딸 곽미향이 아닌 시드니 뱅크 은행장 딸 한서진으로 속인 채 살고 있다. 시어머니 마음에 들지 못하면 그는 당장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스카이캐슬 바깥으로 쫓겨난다. 스카이캐슬은 그에게 커다란 집, 화려한 파티, 의대 교수 아내라는 신분을 준다. 그러나 한서진은 그 어느 것도 온전히 가질 수 없다.

주남대 로스쿨 교수 차민혁(김병철)은 두 아들 차서준(김동희)과 차기준(조병규)에게 피라미드 조각상을 보여주며 세상은 신분사회라고 주장한다. 피라미드의 맨 위, 대통령이 되지 못한 그는 자식들에게 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한다고 다그친다. 성에 들어왔지만 성의 주인일 수는 없는 사람들. 스카이캐슬의 입주권도, ’3대째 의사가문’같은 사회적 신분도 모두 자식의 대학 입학을 통해서만 물려줄 수 있는 위치. 그 중에서도 남자만이 교수가 된 곳에서 입주권을 직접 따낼 수 없었던 여자들. 그 중에서도 부모에게 스카이캐슬의 입주에 필요한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한서진. 여당 국회의원의 딸이자 교육학 박사를 수료한 노승혜(윤세아), 청담동 출신으로 부유한 친정이 있는 진진희(오나라)는 교수 남편이 아니라도 부모가 물려준 사회적, 경제적 신분이 있다. 한서진의 고교 동창이기도 한 이수임(이태란)은 그와 남편 황치영(최원영) 모두 신분에 집착하지 않는다. 한서진의 신분은 주남대 의대 교수의 부인, 서울의대를 다니는 딸의 어머니일 때만 보장받는다. 주체적으로 보이는 그의 욕망, 더 나아가서는 스카이캐슬 여성들의 욕망은 역설적으로 여자는 직접 입주권을 받을 수 없는 이 성의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의 결과다.

차민혁이 피라미드의 맨 위를 이야기할 때, 피라미드 바닥에 있던 한서진은 중간보다 조금 위라도 머물기 위해 발버둥친다. 둘째 딸 강예빈(이지원)이 학업 스트레스로 절도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성적만 잘 나오면 된다는 생각에 묵인할 정도다. 그러나 한서진이 스카이캐슬의 누구보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그가 스카이캐슬에 단 한 평의 지분도 갖지 못했다는 증거다. 노승혜는 가난한 집 출신의 남편 차민혁과 자식 교육에 대해 대립할 수 있다. 스카이캐슬에서도 한서진이 가장 절박한 상황에 몰려 있다. 한서진이 자식을 몰아붙이는 데에 대한 명분인 “경쟁사회”는 사실상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한서진이야말로 단 한 번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경쟁사회에 놓여 있다. ‘스카이캐슬’은 신분, 가부장제, 여성의 문제를 한서진을 통해 집약시킨다.

12년 전 방영한 MBC ‘하얀거탑’에서 의대 교수 장준혁(김명민)은 가난한 집 아들로 태어나, 더 높은 곳을 욕망하며 악행을 저질렀다. 한서진은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자신의 것이 아닌 모든 것을 욕망하며 점점 더 많은 죄를 짓는다. 한국 드라마에서 신분에 대한 끝없는 욕망으로 파멸에 이르는 주인공은 많았다. 다만 그들은 거의 모두 남자였다. 한서진은 여성으로서 욕망을 위해 싸우고, 권모술수를 쓰며, 그리하여 극적인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의사가 될 수 없다. 한서진이 마치 넷플릭스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의 등장인물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내도, 그는 자식 교육의 영역 바깥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여성이 작품 전체를 능동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한국 사회의 많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익숙한 이야기로 풀되, 주인공을 바꾸었다. 시청자들은 지금 익숙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본 적은 없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러나 ‘스카이캐슬’은 한국 드라마의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가 일어나고, 사람이 죽는 와중에도 ‘스카이 캐슬’은 회마다 옛 시트콤에 가까운 코미디를 만들어낸다. 한서진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 강예서를 달랠 때는 마치 과거 홈드라마 같은 경쾌한 톤을 유지하기도 한다. 접신했다 해도 좋을 염정아의 연기력과 최대한 일관된 톤을 유지하는 연출이 아니라면 ‘스카이 캐슬’은 종종 시퀀스마다 전혀 다른 드라마가 될 수도 있었다. 이질적인 장르들의 단순한 연결은 진진희의 가족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진진희는 가정교육에 신경쓰기는 하지만, 한서진처럼 절박하거나 노승혜나 이수임 같이 나름의 철학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코믹한 분위기 속에서 자식, 남편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는 스카이 캐슬의 혜택을 누린다. 이것이야말로 ‘스카이 캐슬’이 만들어내는 가장 강력한 판타지다. 한서진처럼 극단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스카이캐슬이 약속하는 것들을 포기할 수도 없다. 진진희는 경쟁사회 속에서 한서진처럼 살지 않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는다.

‘스카이캐슬’은 한서진을 통해 경쟁으로 유지되는 신분사회의 문제들을 건드린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선부터는 한서진을 통해 그것을 개인의 선택 차원으로 바꾼다. 입시 코디네이터 (김서형)은 한서진에게 강예서의 서울의대 입학을 위해 무엇이든 “감수”하겠냐고 물어본다. 머리카락, 옷, 신발을 모두 검은색으로 맞춘 김주영은 마치 한서진을 유혹하는 악마처럼 보인다. ‘스카이캐슬'의 모든 사건의 시작인 이명주(김정난)의 자살은 아들 박영재(송건희)와의 갈등이 이유였다. 김주영은 여기에 책임이 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그에게 학생과 학부모는 고객이지만, 정작 고객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분노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도록 만든다. 그의 역할이 두드러질수록 ‘스카이캐슬’은 구조 속의 개인보다 악마와 같은 개인에 의해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한 개인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로 바뀐다. 김주영이 “내가 아니라 이명주 씨의 욕망이 이명주 씨를 죽였다”고 말하는 것은, 바꿔 말하면 내가 아니라 체제에 순응하는 당신들의 욕망이 문제라는 것과 같다. 다시 바꿔 말하면, 체제의 모순보다 이를 알면서도 욕망하는 천박한 인간이 문제다. 그렇다면, ‘스카이캐슬’을 보고 입시 코디네이터를 찾아 다니는 사람들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뿐일까.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닐 것이다. ‘스카이캐슬’은 한서진을 통해 모두 체제의 부역자이며 수혜자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인간을 부역자이자 수혜자로 만드는 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점점 희미해진다. 대신 걷잡을 수 없는 욕망만큼 사람끼리 싸우고, 죽이는 자극적인 순간들이 더욱 많아진다. 강렬한 자극이 시청자를 붙잡아둘수록 이야기는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고, 미스터리를 통한 궁금증에 의지하게 된다. ‘스카이캐슬’은 이데올로기 안의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데올로기 바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인간의 숭고함은 없다. 그것이 현실의 인간이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드라마의 역할일 수도 있다. 다만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아쉬움 또한 남는다. 겹겹이 쌓인 체제로 만들어낸 성을 벗어나기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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