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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지키며 살기 어렵죠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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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에서는 자꾸만 자존감을 지키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지키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신줏단지 모시듯 금고에라도 넣어놔야 하는 건가. 어떤 날에는 자존감이 괜찮은 것처럼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꽤 근사하다. 그러나 또 어떤 날에는 보잘것없는 성취로 너무 기뻐했던 거 같아 부끄럽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 같아 불안하고, 남들이 이런 나를 우습게 볼까 위축된다. 악플이라도 받은 날이면 그런 마음은 더 심해진다. ‘이런 애도 책을 내냐? 지겹다’, ‘심리학 석사만 졸업한 네가 심리학 들먹일 자격이 있냐?’, ‘또라이네’, ‘인성 교육이 필요한 사람 같다’ 등등. 무례한 말을 마주한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내 자존감에 상처를 준 그들이 너무 미워서, 겨우 그런 것들로 상처 받는 내가 미워서. 그러다가도 또 며칠이 지나면 ‘아니 못난 건 그 새끼들인데, 내가 왜 고통을 받지? 난 괜찮은 인간이다! 와하하!’하고 회복하고는 아기처럼 잠드는 밤이 다시 온다. 이렇게 흔들리는 나의 자존감은 잘 지켜지고 있는 게 맞을까?

툭 치면 휘청거리는 자존감으로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다보니 자꾸만 자존감 얘기를 꺼내는 세상을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게 된다. 왜 자꾸 자존감을 지키라고 하지? 지키지 못하면 누가 흠집 내고 상처 줄 것처럼. 자소서 100개 냈는데 최종면접에서 떨어져서 자존감이 무너지면, 그게 취준생 탓일까? 상사에게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기분이 나쁘면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걸까?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서 성공한 걸까, 성공해서 자존감이 높은 걸까? 돈을 못 벌어서, 학력이 낮아서, 능력이 없어서, 외모가 별로라서. 수없이 많은 평가 기준을 만들어놓고 하나라도 기준에 못 미치면 조롱하는 사회에서,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건 능력이 아니라 운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존엄성과 다양한 가치를 그다지 존중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변해야 할 것은 개인의 자존감이 아니라 그 문화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세상은 너무 천천히 변하고 나는 당장의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이다. 자존감이 무너지는 게 내 탓이 아닐 때에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나의 몫이다. 그래서 요새는 내 안의 부정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올 때 싸우지 않고 다정하게 대하기를 연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쓰는 책도, 하는 사업도 다 너무 구리고 망할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예전에는 ‘이렇게 부정적이라니! 왜 스스로를 비하해! 이 한심하고 자존감 낮은 인간아!’라고 스스로에게 화를 냈다. 혹은 ‘아냐! 내가 얼마나 잘났는데! 책도 잘 팔렸고, 사업도 나름 괜찮다고!’라고 반박의 증거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다그치고 반박해도 이런 생각은 자꾸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 나는 반박하기를 멈추고 그냥 인정해보기로 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럴 수 있지.’ 그렇게 나를 다독이고 숨을 한번 고르자, 마음 속에서 아주 솔직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너무 불안해. SNS 작가로서는 한물 간 거 같고, 사업은 초보라 뭐부터 할지도 모르겠어. 인정 받고 싶은데, 그럴 수 없을 거 같아 좌절스러워.’ 나는 차마 그 무른 마음들을 비난하거나 다그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힘들 수밖에 없었겠다.’하고 위로를 건네보았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늘 잘나지 못하더라도, 완벽한 자존감이 없어 때로 흔들리더라도, 다시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흔들리는 자존감을 제자리로 다시 돌려놓는 작업은 근력 운동과 비슷하다. 끊임없는 반복이 필요하다. 혼자 하기 어려울 때는 심리상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추천한다. 작년부터 48회째 심리상담을 받고 있는데, 상담을 통해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되게 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왜 눈이 세 개냐? 이상하다!”라고 비난하면 예전에는 ‘진짜 내 눈이 세 개처럼 보이나?’하고 불안했다. 상담실 안에서 전문가는 거울처럼 나를 비춰줬다. 왜곡된 모습 없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눈이 두 개였다. 누가 밖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건 변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실제로 눈이 세 개라고 해도 뭐 어쩔 건가?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걸 아는 것만으로도 사는 게 한결 편안해졌다.

물론 편안해지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이 글에는 내가 이 악물고 울었던 수많은 밤들과, 불안함에 차가워졌던 손, 밥을 먹다가,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 그림일기를 그리면서, 친구와 대화를 하다가 문득문득 스스로를 다잡고 믿어야 했던 시간들이 생략되어 있다. ‘결국 네가 못나고 열등감 있으니 그렇게 정신승리 하려고 하는 거 아냐?’라는 말들에 부딪쳐야 했던 순간들도 수도 없이 많았다. 아주 깊이 무너지는 순간에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늘 믿어야 했다. 울면서도, 나는 다시 또 돌아갈 거라고. 언제고, 어디서든, 어떻게든 다시 돌아와서 스스로를 믿어 내고야 말 거라고 다짐해야 했다. 그러니 누군가 나에게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고 한다면, 나도 그렇다고, 나도 정말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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