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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와 넷플릭스로 영화보기

2019.01.07
*인터랙티브 영화를 보는 사람을 관객으로만 부르기에는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광의적으로 이용자(user)라는 말로 대체했습니다.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가 공개한 ‘블랙 미러: 밴더스내치’(이하 ‘밴더스내치’)는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내러티브가 바뀌는 인터랙티브 영화다. 그리고 넷플릭스에 관한 메타영화이기도 하다. ‘밴더스내치’는 넷플릭스의 신기술을 자랑하는 데 숨김이 없는데, 실제로 넷플릭스가 인터랙티브 기술을 개발한 뒤 어떤 콘텐츠와 잘 어울릴지 고민한 끝에 ‘블랙 미러’ 제작진에게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84년을 배경으로 한 ‘밴더스내치’는 비디오 게임 ‘덕후’인 10대 프로그래머 스테판(핀 화이트헤드 분)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비디오 게임 ‘밴더스내치’를 개발해나가는 이야기다. 스테판은 자신이 존경하는 개발자 콜린 리트먼(윌 폴터 분)의 성공작을 연달아 내놓은 마커소프트사로부터 게임 출시를 약속받아 아마추어에서 프로의 세계로 진입하고자 고군분투한다. 집에 틀어박혀 게임 개발에 몰두하는 그는 소설에 걸맞은 심오한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다 무언가에 의해 조종받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히는데,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서 스테판을 조종하는 실체는 넷플릭스라고 폭로되는 내러티브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랙티브 영화를 경험하기로 마음먹은 이용자는 스테판의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아침 식사로 어떤 시리얼을 먹을 것인지와 같은 간단한 선택에서부터 시작해 살인을 저지를지 말지 결정하기까지 한다. 선택에 주어진 시간은 약 10초. 이용자는 그야말로 내친김에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선택에 따라 10분 만에 엔딩에 도달하는 짧은 내러티브가 있고, 2시간가량 이어지는 선택의 길도 있다. 엔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러티브의 주요 누빔점이 되는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내릴 수도 있다.

10초 안에 내러티브를 결정하는 것이 촉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용자가 넷플릭스에서 어떤 콘텐츠를 볼지 결정하는 시간은 그보다 더 짧다. 넷플릭스는 2014년에 이용자들이 하나의 섬네일을 보고 평균 1.8초 만에 시청할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내용의 통계를 발표한 적 있다. 홈페이지 메인을 훑어볼 때는 평균 90초 동안, 10~20개의 제목을 보고, 그 중 3개 정도는 감독과 줄거리에 대한 정보까지 살펴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끌리는 콘텐츠가 없다면 이용자는 넷플릭스 시청 자체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다른 취미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해버린다. 즉, 넷플릭스 접속 창을 꺼버리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선택받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추천 영화와 드라마의 더미는 이용자가 지난번에 접속해 시청한 것과 직접 검색한 것, 그리고 비슷한 성향의 다른 이용자가 본 것 등을 단자로 하여 조합된 알고리즘의 결과물이다.

스테판은 자신의 심리상담사인 헤인즈 박사(앨리스 로우 분)에게 넷플릭스라는 미래의 플랫폼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박사는 “그렇다면 시나리오가 훨씬 재밌어야 하지 않나?”라며 “오락용이라면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야지. 액션도 조금 넣지 않았을까.”라고 논박한다. 이때 시청자에게 주어진 스테판의 대답으로는 ‘그렇죠’와 ‘당연하죠!’가 있으나 어느 것을 택하든 영화는 스테판과 헤인즈 박사가 싸우는 액션 장르로 비화한다. 여기까지 내러티브를 진행시킨 이용자라면 액션 장르를 좋아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알고 보면 장르야말로 넷플릭스가 오랫동안 세밀하게 가다듬은 알고리즘의 한 축이라는 점에서 이는 완벽하게 자기반영적인 내러티브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는 이용자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67,000개의 얼터 장르(Alt Genre·Alternative Genre)를 분류해 놓았고, 이용자 당신을 그 중 하나에 속하도록 구별해놓았다. 그리고 같은 얼터 장르를 선호하는 이용자들이 시청한 콘텐츠를 당신에게 추천하고, 여기에서 도출된 결과를 다시 반영하는 머신러닝을 통해 알고리즘을 정교화하고 있다. 이를 테면, ‘매드맨’이나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 경우에는 ‘Visually-Striking Nostalgic Dramas’로 분류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Visually-Striking Nostalgic Dramas’는 넷플릭스가 실제로 구별해서 명명한 얼터 장르 중에 하나다.

‘밴더스내치’는 인터랙티브 영화로서 자유도가 높다는 환상을 줄 뿐 결국에는 몇몇 주요한 엔딩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폐쇄적인 이야기에 그친다. 이러한 폐쇄성은 넷플릭스라는 유료 플랫폼의 본질이기도 하다. 넷플릭스의 수익은 결국 멤버십을 유지하는 이용자, 새로운 가입자, 해지했다가 돌아온 재가입자의 합으로 결정된다. 넷플릭스가 ‘몰아보기’와 ‘추천 알고리즘’이란 울타리 안에서 이용자의 경험을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넷플릭스는 지난해 여름에 별점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없애버렸다. 별점은 넷플릭스 창립 초기부터 있었던 시스템으로 '넷플릭스 별 다섯 개'란 수식어는 작품성 보증서와 같았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폐쇄를 발표하며 별 개수에 따라 세분화된 평가가 개인화된 알고리즘을 짜는 데 유의미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늘면서 까다로운 이용자들이 매긴 별점이 다른 이용자에게도 노출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제거해 버렸다는 지적도 있다. 대신 넷플릭스는 엄지손가락 모양으로 ‘좋아요’와 ‘나빠요’만 평할 수 있는 피드백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쯤 되면 ‘밴더스내치’에서 신작 게임을 별점 매기는 텔레비전 쇼가 왜 그토록 우스꽝스럽고 짜증났는지 이해가 간다.

‘밴더스내치’에서 자유도가 높다고 느꼈던 순간들은 오히려 영화의 초반부였다. 즉, 어느 것을 선택하든 주요 내러티브로 진입하는 데 본질적이지 않아 다시 선택하도록 강요받지 않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선택들은 리와인드 장면에서도 살아남아 처음부터 완전히 재시작하지 않는 한 끝까지 나의 선택으로 머문다. 스테판이 집을 나서서 타커소프트사로 이동 중에 어떤 음악을 들을 것인지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스테판은 신스팝 밴드인 톰슨 트윈스와 당대 인기곡을 조합한 ‘NOW’ 카세트테이프를 양손에 쥐고 있다. 이용자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영화는 그 음악이 덧입혀진 채로 그럴듯하게 진행된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이란 가장 명확한 감각도 불확정적이고 언제든 다른 방식으로 조합될 수도 있다는 게 영화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이자 가능성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밴더스내치’에서 빛나는 장면들은 영화의 오랜 속성인 ‘조합 가능성’을 이처럼 슬쩍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스테판이 헤인즈 박사에게 유년 시절 어머니와의 일에 대해 회상하는 장면은 갑작스럽게 4:3 화면비로 전환된다. 또 과거라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체화하듯 그레인(필름의 거친 입자)이 덧입혀지기도 한다. 그러다 회상이 중단되면 4K로 촬영한 쇼트가 곧바로 맞붙는데, 일상처럼 소비하는 4K 화면이 이때에는 생경하고 이질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을 뛰어넘는 데에는 충격이 필요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말이다. 이는 영화의 변화상과 현재를 감지하게 하는 소중한 몽타주이며, 어떤 선택을 하든 파괴적인 내러티브로 치닫는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작업보다 값진 것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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